62. 닦음의 길 2

한국불교는 누가 뭐라 해도 선(禪)이 그 중심에 놓여있다. 물론 선교회통(禪敎會通)의 전통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지만,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선으로 향해있다. 우리나라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역시 선종의 다른 이름이다. 해마다 두 번에 걸쳐 행하고 있는 안거(安居) 기간에는 전국의 선원에서 눈 푸른 납자들이 선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특히 화두를 드는 간화선(看話禪)이 오랫동안 대세를 이루어왔다.

그래서인지 싯다르타가 화두를 타파하고 깨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간화선은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苑, 1089~1163)가 개발한 수행법으로 이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인물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다. 그 후 지금까지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붓다 당시에는 간화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싯다르타가 이런 수행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붓다를 위대한 깨침으로 이끈 수행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8정도 가운데 정념(正念)으로 알려진 위빠사나(Vipassana)다.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집을 나온 싯다르타는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선정과 고행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당시 유행했던 두 수행은 몸과 마음이 분리된 실천이었다. 그는 수행하는 동안 몸 따로 마음 따로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처절하게 해왔던 고행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진리를 깨치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보리수 아래 앉았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조금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위빠사나 수행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붓다는 자신을 깨침으로 인도한 수행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염처경(念處經)〉에서 위빠사나를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건지며, 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도 이 법에 의해 최상의 열반을 얻었고, 현재와 미래의 부처도 이 법으로 열반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붓다에게 위빠사나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수행법이 남방으로부터 소개된 것은 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소승선(小乘禪)이란 이름으로 그 가치가 절하되고 있었다. 근기가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행하는 열등한 수행법이라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신앙의 대상인 붓다의 수행법을 불자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간화선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위빠사나를 이렇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자칫 붓다보다 대혜종고를 우선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이다. 이는 불교 역사에 대한 무지와 간화선 제일주의가 낳은 자기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그를 깨침으로 이끈 위빠사나는 재평가 되어야 한다.

이 수행법의 요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觀) 데 있다. 그래서 관법(觀法)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떠한 왜곡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라는 실상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고통 속에 빠트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붓다는 강조한다. 왜 그럴까? 바로 걱정과 두려움, 공포 등은 본래 영원하지 않으며(無常), 그 실체 또한 본래 없기(無我) 때문이다. 대승에서는 이를 공(空)이란 용어로 재해석하였다. 〈반야심경〉에서 이러한 공의 지혜를 깨치면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붓다는 분명 위빠사나를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붓다가 직접 걷고 중생들을 위해 닦아놓은 위대한 길을 우리는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소홀히 취급하고 말았다. 이제 참회하는 마음으로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붓다의 수행법을 보아야 한다. 다음 호에서는 그 원리와 실존적 의미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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