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벡의 저서 〈위험사회〉
“사회 발전할수록 위험” 주장
사람 의해 ‘생산된 위험’ 의미

문명 발달… 파국 가져올 수도
코로나19도 인간이 만든 재앙
벡 주장 ‘성찰적 근대화’ 필요

붓다의 가르침에 해답이 존재
연기론 바탕 ‘자비생명공동체’
이 같은 공동체 구현 실천을

온 지구촌이 코로나19로 인해 큰 ‘위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필자가 위험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사용한 것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지은 〈위험사회(Risk Society)〉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6년에 출간된 삼십여 년이 지난 책이지만 저자의 뛰어난 통찰과 예지에 오늘날에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울리히 벡은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 불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2008년 봉은사를 방문하면서 ‘무애거사’라는 법명을 가지기도 했다. 두 번째 방한 다음 해 2015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한국에서 불교식으로 추도식이 있었다. 울리히 벡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지금 인류는 문명의 화산 위에 서 있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이용하거나 인류를 전통적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기술적, 경제적 발전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리히 벡은 사회가 발전될수록 위험사회가 될 것이며, 그 위험은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평준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의 위험은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된 위험’이라는 것이다. 그는 근대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류의 파국을 막기 위하여 ‘문명적 탈바꿈’을 주장하면서 ‘성찰적 근대화’를 주장한다. 

오늘날 코로나19로 겪는 사람의 고통은 결코 자연재난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이 만들어낸 생산된 위험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고통은 벡이 이야기하고 있는 대표적인 위험사회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어쩌랴. 코로나19로 호모사피엔스가 움츠리고 있는 동안 지구별의 환경이 깨끗해졌다니.

과학 기술의 발전과 자연에 대한 조작기술의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인간은 새로운 욕구를 계속 불러일으켰으며, 또한 새로운 욕구 충족은 새로운 욕구 창출의 계기를 만들어 줌으로써 요구 충족과 욕구 창출 사이에는 끊임없는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절벽을 향해 달리는 것이리라. 250여 년간 쌓아 올린 서구의 그 오만한 근대 과학문명이 이번 코로나19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던가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이러한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성찰적 근대화’의 지혜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지혜의 보고는 붓다의 가르침에 가득 담겨있다. 울리히 벡이 불교에 깊은 친화력을 가진 것은 붓다의 지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붓다의 이상에는 생명, 생태 사회의 구현이 있다. 이것은 연기론에서 나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연기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의 상관성’ 또는 ‘의존적 상호발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기론에서 ‘생명평화 자비 공동체 구현’이라는 과제가 등장한다. 

생명평화 자비 공동체는 인간을 비롯하여 동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어깨동무하며 함께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즉 중생 공동체이다. 모든 존재가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하는 것이 중생 공동체이다. 자비는 연민의 윤리를 넘어 우주의 우정이다. 자비는 모든 존재에 대한 평등심에서 출발한다. 

코로나19가 종료한 이후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의 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 논의의 핵심을 보면 바로 ‘붓다 다르마’의 실천으로 귀결된다. ‘붓다 다르마’라는 큰 그릇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붓다의 지혜가 만든 크고 큰 우물의 물을 퍼내야 할 것이다. 제일 먼저 불교인 개개인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자비의 중생 공동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뇌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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