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

타르쵸 앞에서 세월호 추모기도
천년고찰 혜원사 유채꽃밭 감동
先師 위법망구 정신 깊이 새겨

천년고찰 혜원사. 진광 스님의 스케치다.

간쯔에서 성도로 돌아가는 길, 고갯마루에 잠시 내렸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오색의 타르쵸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이곳에서 2014년 세월호 침몰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노란천에 추모의 글을 적어 매달며 그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못다핀 꽃과 같은 그 어린 영혼들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는 고통과 슬픔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빈다.

그런데 한 비구니 스님이 서럽게 눈물 흘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보니 순례 중 속가 모친께서 돌아가셨는데 워낙 오지인지라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나 비통하고 황망할까 싶어 필자도 모친의 극락왕생을 함께 빌며 그 마음을 함께 나누어 보았다. 아마도 좋은 곳에 가셨으리라 믿는다.

아무래도 올 적 보다는 마음이 편해서인지 즐겁고 행복한 모습들이다. 버스 안에서는 이번 순례에 대한 감상과 서원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모두 이번 순례를 통해 새로운 신심과 원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노라고 말한다. 이런 모진 환경 속에서도 삶과 수행을 이어가는 티베트 스님과 불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찬탄과 감사를 표현했다.

운문사 일진 스님의 애창곡으로 우리 순례 주제가이기도 한 길옥윤 작사 작곡의 ‘순례자’라는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은 꿈 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갯길// 꿈꾸는 바다에 별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발길에/ 단풍이 깊어가네// 멀고 먼 하늘과 뜬 구름/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일진 스님의 진솔하고 청아한 노랫소리에 하얀 설산과 장대한 장강 상류의 물결이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환희로 가슴을 물들인다.

돌아오는 길에 혜원사(慧遠寺)에 들렀다. 이곳은 1729년에 건축된 궁전식 사원으로 7세 달라이라마 깰상갸초(格桑嘉措)의 피난처이다. 또한 1838년 11세 달라이라마 캐둡갸초(凱珠嘉措)가 출생한 곳도 이 근처이다. 사원 입구에는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지천으로 널려있다. 온통 황금빛으로 장엄하는 유채꽃의 향연앞에 마치 정토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입구 양편에는 티베트 불탑인 초르텐이 설산을 배경으로 100여 개 넘게 장엄하게 자리한다. 입구를 지나면 7세 달라이라마의 피난 행궁인 라오덴(老殿)이 장엄히 서 있다.

라싸의 포탈라궁에 비하면 아주 소박하고 아담하며 한산하기만 하다. 초록 기와를 배경으로 티베트 사원의 상징인 법륜과 사슴 한 쌍이 황금빛으로 장엄히 자리한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너른 마당의 지천으로 피어 만발한 야생화풀꽃의 향연이다. 그야말로 꽃대궐이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기만 하다.

라오덴 꽃대궐 계단에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는데, 활짝 웃는 모습이 꽃보다 훨씬 싱그럽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진실로 맞는가보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천상의 미소와 행복의 순간을 보았노라! 실로 행복의 충격과 전율에 젖어 행복하였네라!

간쯔에서 리탕, 캉딩, 루딩을 거쳐 돌아오는 길은 동티베트의 자연과 옛 차마고도의 길을 느낄 수 있는 실로 꿈결처럼 아름답고 마음이 행복한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순간의 꽃과 같은 작지만 소중한 의미의 깨달음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영원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디어 성도(成都)로 돌아왔다. 실로 다사다난하고 험난한 고난의 대장정이었지만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정말로 가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지도법사 정우 스님의 자비와 대중 스님들의 덕화로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할 수 있었다. 마오쩌뚱(毛澤東)의 말처럼 “난관이 있는 곳에 가야할 길이 있다”라고 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어이 동티베트 순례를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날에는 제갈공명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를 돌아보고는 시내에 위치한 대자사(大慈寺)로 향했다. 이곳의 진영각(眞影閣)에 신라 정중무상(淨衆無相) 선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천년이 지나도록 이국의 선사 진영을 모셔오고 있는 것이 실로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다.

정중무상 선사의 진영에 향을 살라 참례하고는 스님의 선법과 덕화를 숭앙하며 찬탄하였다. 그리고는 소동파의 친필인 ‘대웅보전’ 현판이 걸린 대웅전에 들어 이번 순레의 화향식과 함께 추모제를 봉행하였다.

신라 정중무상 선사와 티베트 제자인 바세와 세르난을 비롯해 수많은 해동 천축구법승과 대당유학승, 그리고 구산선문을 이룬 선사들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그들의 위법망구의 구도열과 행화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조계종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할진대 선지식들의 뜻을 이어받아 한국불교를 중흥시킬 책임이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앞서간 선사(先師)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리는 일이 곧 한국불교의 새로운 길과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이번 순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과 수행에서 새로운 신심과 원력으로 저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마오쩌둥의 “이것은 단지 만리장정의 첫 걸음일 따름이다.(這只是萬里長征的第一步)”라는 말처럼, 이제 새로운 나의 첫 발자국과 시작일 따름이다. 이 길 위에서 모두가 진실되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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