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된 禪, ‘조사선’ 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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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 견해 가미된 禪 ‘조사선’
마조선사 개조로 보는 견해 多
일인전승서 다인전승으로 변화
할·방 등 사용… 禪機시대 열려

중국 호남성 남악 형산의 ‘선원(禪源)’ 표지석. 선의 근원지라는 뜻으로, 조사선 개조로 여겨지는 마조도일 선사가 깨달은 곳이다.

우리나라 선(禪)은 간화선이다. 하지만 이는 화두를 드는 방법상의 수행법이요, 이론은 조사선이다. 곧 실천은 간화선이지만, 이론적인 근간은 조사선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조사선 사상을 생략하고, 간화선만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간화선을 언급하기 전에 이전부터의 사상인 조사선부터 보기로 하자. 

조사선은 무엇인가? 조사선은 대략 8~11세기에 발달했는데, 대체로 이 당시의 선을 선기(禪機)의 시대라고 한다. 본격적인 동아시아 선의 태동으로서 이때 정립된 선이 근자에까지 이른다. 당대 선기의 시대를 지나 문자선(송고문학)이 발달했고, 이 문자선에서 공안선으로, 다시 공안선에서 간화선으로 발전된 것이다[조사선→문자선→공안선→간화선]. 한편 간화선이 태동하기 전, 기존의 선은 묵조선인데, 이 또한 조사선의 연장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하기로 한다.  

조사선의 정의와 개조
조사선은 인도 선에 중국의 문화·종교(특히 노장사상)와 결합이 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적인 토양으로 변이된 선이다. 그런데 참고로 초기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라고 하면서 불교 역사를 시대별로 나눈 것도 후대 학자들이 정한 것에 불과하다. 즉 선종사에서 조사선에 관한 언급도 그러하다. 어느 시대부터 조사선이 시작되었고, 조사선에 관해 정의를 내리는 것 또한 칼로 자르듯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인도 선이 전래된 후 중국화된 선으로 정립되기 전까지를 여래선이라고 하고, 이후 중국적인 견해와 사상이 가미된 선을 조사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조사선의 개조(開祖)를 누구로 볼 것인가? 보리달마·육조혜능·마조도일 등 누가 개조인가에 대해 학자들마다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로 보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선종 역사에 조사선을 내세우면서 이전인 여래선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이분법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혜능을 여래선 쪽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 조계종 종명(宗名)은 혜능을 의미하는데 한국선까지 폄훼하는 느낌이다. 이에 여래선이라고 하는 체계가 있었기에 조사선이 나올 수 있는, 선종사의 한 흐름에 불과함을 밝혀둔다.  

조사선 형성 동기 및 사회 배경  
첫째, 안사의 난(755~763)으로 당나라의 태평성대가 흔들리고 정치·경제·군사·외교·사상·문화·종교까지도 변화되었다. 종래의 문벌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문화 대신에 혁신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즉 피폐된 사회 분위기에서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신뢰감을 회복시키는 사상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둘째, 선이 어느 정도 중국인들에게 인식되어질 무렵 당시 학자나 문인들이 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무엇보다도 출가 수행자들을 인도하기 위한 적합한 방편이 필요했다.  

셋째, 선이 자연적으로 중국 문화와의 결합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도교와의 결합이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기 이전, 기원전 2세기에 형성된 도교는 중국인과 사회에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넷째, 마조가 활동하기 이전 무렵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문화가 최고조로 번성했고, 불교학도 발달이 최고조였다. 그런데 이후 불교학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상으로의 변이가 필요했던 것으로 추론된다. 이전의 장안과 낙양을 무대로 펼쳤던 기존의 법상종·화엄종·정토종에 비해, 조사선은 강남의 곡창지대를 무대로 선이 전개되었다.   

네 가지 요인 가운데, 조사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첫째와 둘째가 간접적인 요인이라면, 셋째와 넷째는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선의 특질 및 전개
그렇다면 이렇게 발전된 조사선이 어떤 특색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첫째, 선의 사법자(嗣法者)가 많아졌다. 달마 이후 혜능에 이르기까지 한 스승이 한 제자만을 선택한 일대일인(一代一人)의 부촉(付囑)이었다. 중국 초기 선종의 선사들에게서 많은 전등사서(傳燈史書)가 편찬되었는데, 두비의 〈전법보기〉, 정각의 〈능가사자기〉, 무주(無住)의 〈역대법보기〉 등 여러 전등사서에 자신의 법 계보를 세우며 자파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그러다 마조와 석두 이후, 조사선 시대에는 한 스승이 여러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일대다인(一代多人)의 부촉 시대가 되었다. 수행자는 구도를 위해 깨달은 스승을 찾아 다녔고, 스승도 자기 제자만이 아닌 자신을 찾은 구도자들을 깨우치는데 역점을 두었다. 마조 문하에 수많은 제자들의 기록이 후대에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그 당시 선사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제자일지라도, 자신과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서로 다른 선사들에게 보냄으로써 제자들의 심인을 깨우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런 데서 5가 7종의 선풍이 풍미하는 시대가 초래되었다. 

둘째, 청규 확립으로 선종의 독립과 일상성의 종교화로 전환되었다. 청규는 청정(淸淨) 대해중(大海衆)의 ‘청(淸)’ 글자와 승려가 지켜야할 규구준승(規矩準繩)의 ‘규(規)’ 글자를 따서 청규라고 하였다. 즉 선종이 율원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선종교단 자체 내에서 필요했던 조직적인 규칙들을 체계화하여 성문화시킨 규칙이다. 〈전등록〉에 실린 ‘선문규식’을 통해서 청규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덕(德)있는 스승을 장로(長老)로 삼아 방장(方丈)에 거주케 하고 유마거사의 방과 같이 할 것이요, 개인의 침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법당(法堂)만을 세워, 생불(生佛)로 추대된 장로로 하여금 법당에서 법을 설하게 한다. 법당이라는 명칭은 인도에서부터 있었지만, 중국 선종은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입당(入堂)하여 법납의 차례에 따라 앉고, 긴 평상과 선방을 설치하여 도구를 걸어두며 누울 때는 반드시 평상에 비스듬히 기댄다.” 

또한 그 외 모든 대중이 평등하게 작업하는 보청법(普請法, 대중이 평등하게 노동에 참여하는 것)이나 재죽(齋粥, 선원의 특유한 승당 안에서 생활양식의 모든 규범과 의식 절차)을 제정하였다. 실은 보청법으로 인해 노동과 선을 하나로 보는 일상성의 선이 확립되고, 자급자족의 생활에서 일상성의 종교로 변화한 조사선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셋째, 어록이 출현하고 발전되었고 넷째, 선기의 시대가 열렸다. 조사선의 특징은 바로 선기(禪機)이다. 조사선 시대의 선지식들은 어떤 특수한 문답이나 할(喝)·방(棒) 등을 사용함으로서 선기의 시대가 열렸다. 즉 그때그때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자유 자재한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방편이 활용되었다. 마조의 어떤 설법이나 행동은 제자들의 도를 깨우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런 방편의 활용을 앙산(仰山, 807∼883)은 잡화포(雜貨鋪)라고 하였다. 어떤 물건이든 다 파는 잡화포라는 말은 제자들의 근기에 맞추어 제자를 지도한다는 뜻이다. 마조의 다양한 접화 방법이 후대에 공안으로 형성되는 기원이 되었다. 조사선 시대에 스승이 제자를 제접하는 선기의 활용은 다음과 같다.  

△언어적 표현= ① 스승과 제자와의 일상적인 대화(問答商量)에서 스승이 제자를 깨우치게 하고자 말했던 어구(語句) 후대에 이를 선문답이라고 하였다. ②선사들이 오도송(悟道頌)·게송(偈頌)·열반송(涅槃頌) 등을 시구로 표현하였다. ③방장이나 사찰의 주지가 법상에 올라가 대중들에게 설한 상당설법(上堂說法)이나 시중법문(示衆法門)한 강의식 표현이다. ④양구(良久)인데, 제자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⑤법을 설하기 이전이나 중간, 후에 큰 소리를 지르는 할(喝) 등이다.  

△동작과 행위= ①권(拳, 주먹을 쥐는 것) ②타착(打着, 사람의 몸을 손으로 치는 것) ③타괵(打뱷, 후려갈기는 것) ④파비(把鼻, 코를 잡는 것) ⑤취이(吹耳, 귀에 대고 소근 대는 것)     ⑥전수(展手, 손바닥을 펴는 것) ⑦박수(拍手, 손뼉 치는 것) ⑧토설(吐舌, 혀를 내미는 것) ⑨수지(竪指, 손가락을 세움) ⑩단지(斷指, 손가락을 자르는 것) ⑪탄지(彈指, 손가락을 튕기는 것) ⑫의세(擬勢, 어떤 형태를 취하는 것) ⑬작무(作舞, 춤을 추는 행위) 등이다.
 
△주변 사물 사용= ①방(棒, 몽둥이로 때리는 행위) ②참묘(斬猫, 고양이를 베는 것) ③흔상(軀狀, 평상을 뒤집어엎음) ④고주(敲柱, 기둥을 두드리는 것) ⑤참사(斬蛇, 뱀을 베는 것) ⑥분경(焚經, 경전을 불사르는 것) ⑦분불(焚佛, 불상을 불사르는 것) ⑧불자(拂子)를 세움 등이다.  

불자(拂子)는 먼지를 털거나 모기, 파리를 잡는 일상적 도구이자 개인 생활용품이었다. 이러한 생활도구가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 선종에서는 번뇌를 털어 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법구(法具)이다. 선사들이 불자를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후대에는 종승(宗乘)의 상징적인 의미로 발전되었다. 이와 같은 선문답이나 할(喝)·방(棒)·불(拂)·권(拳) 등이 조사선 시대에 적극 활용되었다. 

마조가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할을 하셨던 최초의 선사이다. 이후 방망이를 가장 많이 쓰셨던 대표적인 선사가 덕산 선감(782∼865)이며, 소리를 지른 선사에는 임제(?∼867), 손가락을 들어보였던 천용(天龍)과 구지(俱瀜) 선사이다. 후대로 가면서 이런 행위나 할·방 등이 일반화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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