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정서적 갈증-중독)

7-1 에고의 또 다른 속성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걸 요구하고 아홉을 받아도 하나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열을 다 채우면 만족할까요? 또 다른 불만거리를 찾지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50점을 받아 왔습니다. 엄마는 엄청 화내고 공부하라고 다그쳤지요. 다음 시험에 아이는 80점을 맞았습니다. 엄마는 두 개나 틀렸다고 야단칩니다.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이번엔 90점을 받았지만 또 한 개 틀렸다고 야단칩니다. 아이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100점을 맞았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뛰어가 성적표를 보여줬습니다.

엄마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엄마는 “너네 반에서 몇 명이나 100점 맞았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시무룩해져 대답합니다. “5명이요.”

칭찬을 기대한 아이의 실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이는 야단 맞지 않기 위해 엄마의 눈치를 보고 어떻게 해야 엄마가 좋아할까 예민하게 탐색합니다. 늘 야단 맞을까 봐 불안해 하며 성적표를 고치기 시작하고 거짓말을 시작합니다.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자라면서 강박적인 불안증과 같은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지요. 욕심은 이처럼 끝이 없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거지요.

욕망 성찰, 고통 수반해
‘탐닉’은 정서적 굶주림
멈추고 마음 보면 해결

7-2 이렇게 에고는 무리한 요구를 끊임없이 해대어 자신과 주변을 불편한 상태로 만들고 맙니다. 분노를 삼켜 숨기고 복수할 기회를 엿봅니다. 자신의 욕망을 남에게 투사하며 자식에게 투사하고 배우자에게 투사합니다. 기대에 못미치면 엄청난 분노를 자신에게, 남에게, 자식에게 뿜어냅니다. 그것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표현 못하고 억압해둔 분노의 감정까지 합쳐 폭발합니다. 실패 없이 쭉 성취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실패 없는 성공이 있나요? 완벽하기를 바라지만 이 세상에 완벽이 있나요?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실수하지 않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괜찮아.” “한두 개 틀려도 괜찮아. 좀 더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

이런 격려가 아이에게 필요합니다. 다만 너무 100점과 1등만을 요구하면 또 다른 부담을 지울 수 있습니다.

성숙한 반응은 “와 두 개밖에 안 틀렸네. 잘 했다.” “와, 하나밖에 안 틀렸구나.”

라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격려와 칭찬보다 더 성숙한 반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충분해.” “현재 그걸로 충분해.” “너는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를 얻은 거니까 충분해.” 100점이 아니더라도 그 노력과 그의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자세, 나의 기대와 욕심을 투사하지 않는 반응이지요. 그리고 틀리거나 실수한 부분에 대해 함께 점검하고 어느 부분을 모르고 있는지 복습하여 분명히 알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틀릴 수 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음을 체험하게 하여 실수나 실패에 불안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지요.

7-3 이렇게 성숙한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족하기가 어렵군요.(웃음) 왜일까요? 수양이 부족해서 절제하기 어렵다구요? 수도원이나 동굴에서 고행을 해보지 않아서 안 된다구요? 그것은 인욕이고 인내를 키우는 훈련이지 근본적 해결은 아닙니다. 무소유가 정답이라구요? 모두가 성직자나 수도자가 될 수는 없으니 불가능해 보입니다. 사실 무소유의 본래 뜻은 욕심을 버리는 것, 욕심을 비우는 것이지 물질의 무소유나 물질적 가난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마음이 뭔가를 끊임없이 원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많은 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이 가진 부자도 만족하지 못하면 가진 게 없고 가난합니다. 1억을 가지면 10억을, 10억을 가지면 100억을 바라고, 100억 부자는 1000억 부자를 선망하고 1000억 부자는 재벌을 희구하고 재벌이 되면 이제 몇 번째 재벌이냐를 따집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많이 가져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군요. 그것은 마음의 허기- 불만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만 아래에 숨은 욕망을 성찰해보아야겠군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1~2분).

욕망으로 인해 분노를 느끼고 적대감을 느낀 경험들을 떠올려봅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배우자와 관계에서, 자식들과 관계에서, 친구나 동료 선후배와의 관계에서, 나의 바람과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너졌을 때 그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안아주세요. 그 때 얼마나 아팠는지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아프군요. (충분히 숙고한 후 눈을 뜹니다).

7-4 욕망에 대한 성찰과 내면의 상처를 자각하고 보듬는 작업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통찰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고 아픔을 재경험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혼자 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정서적으로 굶주리면 늘 무언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게임, 술, 담배, 음식, 도박, 섹스, 약물에 탐닉하거나, 일중독, 종교 중독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의존 욕구가 자라서도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삶을 지배하는 것이지요. 현재를 살면서 과거의 족쇄에 묶인 것과 같습니다. 과거(상처)라는 감옥이지요. 인간의 유아적 욕망은 자기만 갖고 싶고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지배욕이 됩니다. 신(부모)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를 침탈하고서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욕심이 낳은 재앙이 분노, 증오, 적대감으로 표현됩니다. 수많은 복수도, 부모 형제를 죽이는 패륜 행위도 여기서 비롯되는군요. 이 욕망과 이 증오가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쳐서 사회적 갈등으로 치달아 평화롭지 못한 세상이 됩니다. 최근의 ‘박사방’ ‘n번방’ 사건도 이 범주에 듭니다. 사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도 자연의 오염과 지구의 온난화 때문이고 각종 항생제 등의 약물 남용이 원인이니, 이 또한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과 분노 때문 아닌가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인간에만 국한시키는 덕목이 아니군요. 인간은 자연의 일원이라는 각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7-5 정신분석가 에릭슨(Erickson)이 인생의 발달 과정을 8단계로 나눈 것은 심리치료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각 단계마다 발달 과제(기본적 신뢰, 자율성, 자발성, 근면성 등)가 있는데 이 과제가 성취되지 못하면 그 미해결된 과제는 평생 숙제로 남아 삶을 지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아가 건강한 힘을 갖추려면 충분한 의존(아낌없는 욕구 충족)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 단계를 잘 거쳐야 분리 독립의 단계로 나아갈 힘이 얻어지는데, 기본 욕구가 충족이 안 되면 아이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비참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자긍심 대신 수치감과 열등감에 휩싸인 채 아무 희망이 없고 기댈 곳이 없는 외로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 아픔은 너무 극심해서 무의식 깊이 눌러 묻어 버려야 견딜 수 있습니다. 마침내 자신이 그런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마저 자각 못한 채 나름대로 자신을 위로하는 중독의 상태로 방어하게 되는 것이지요. 게임이나 도박, 알코올에 중독된 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라 중독을 이겨내라’는 주문은 공허하여 작심삼일이 되거나 또 하나의 좌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그 전단계의 세심한 도움이 필요하지요. 전단계란 마음의 상처를 보호하려고 중독의 방법을 선택한 배경을 돌아보고 그 상처를 안아주는 것이지요.

7-6 독점욕은 태생적입니다. 모태로부터 분리된 영아가 엄마를 찾고 독점을 원하는 걸 탓할 수 없지요. 그러나 인간의 인간됨은 과거의 안락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장은 자립과 분리 독립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그리 자란 경험이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날선 고함과 채찍으로 아이를 예속시키고 독점 지배하려 듭니다. 효도라는 미명과 규율이라는 미덕으로 합리화하면 아이의 자율성은 성장하지 못하고 애어른을 만들거나 마마보이로 안주하게 만들지요. 적절한 욕구 좌절과 지연을 견딜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것은 이미 자라면서 겪었던 훈련이기도 합니다. 바로 동생의 출현이고 또래 친구들과의 교유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싸우면서 형제(동지)애를 키우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스스로 터득하며 성장합니다. 한없는 충족 대신 빼앗기는 아픔도 상대방의 만족을 통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공존과 상생을 터득해갑니다. 형제와 싸우며 화합을 터득하고 부모로부터 자립하게 되고 서로의 집착과 기대로 칭칭 얽어매는 족쇄를 느슨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공동체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음을 체득하는 것이지요.

7-7 물질적 탐닉에서 벗어나고 무한 지배욕과 과시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만을 다스리는 길은 욕구에 대한 무한 충족도 아니고 자이나교도처럼 엄격한 무소유나 금욕도 아닙니다. 욕망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불만의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불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만족만 하라는 것은 바른 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실패에 대한 관용, 일류 지향에 대한 반성, 능력보다는 품성에 대한 가치 부여 등이 불만에 대한 중도적 답일 것입니다. 사회적 의식 수준이 그렇게 성숙해지기 전에는 지역 차별, 학벌 차별, 민족 차별, 인종 차별, 종교 차별, 빈부 차별 등으로 불만의 바이러스는 그 전파력을 높여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의식의 성장만이 진정한 해결책이고 그것은 부단한 자기 성찰, 즉 멈추고 호흡을 바라보고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에서 가능합니다. 고통을 존중하고 실패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고 배워나가는 자세로 임한다면 문제는 마침내 해결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