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이해의 길 40

지난해 불교계에서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원불교가 제30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 총회를 개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1950년 5월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 세계 불교도들의 단결과 우애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스리랑카 콜롬보에 27개국이 모였는데, 현재는 37개의 나라에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계종을 비롯하여 진각종, 원불교 등 7개 지부가 운영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원불교도 이 단체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원불교는 불교란 말인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원불교가 WFB 총회를 개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원불교는 불교 종단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원불교는 불교인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원불교가 국내에서는 독립적인 종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불교의 한 종파로 인식되고 있다. 영어식 표현인 ‘Won-Buddhism’만 보더라도 누구든 아무런 의심 없이 원불교를 불교의 한 종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의 정체성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원불교가 불교의 한 종파라고 인정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원불교는 그러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교조인 박중빈(朴重彬, 1891-1943) 대종사는 본래 원불교가 아니라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글자 그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모임이란 뜻이다. 그들이 ‘원불교’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종사가 열반한 이후의 일이다. 원불교는 1967년 대한불교총연합회에도 공식적으로 참여했으며, 앞서 언급한 WFB 원불교지부도 설립하였다. 명실상부한 불교의 한 종파였던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원불교는 연합회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불교, 천주교, 개신교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4대 종교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흔히 종교를 구성하는 요소로 교주, 교리, 교단 3가지를 들고 있다. 불교의 경우 붓다(佛)와 가르침(法), 승가(僧) 삼보(三寶)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조계종이나 화엄종, 천태종, 진각종 할 것 없이 모든 종파가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이다. 비록 각 종파의 창시자, 즉 종조(宗祖)는 다르더라도 교주(敎主)는 붓다 한 분이다. 예컨대 대한불교조계종의 경우 종조는 도의국사(道義國師)지만, 교주는 석가모니다. 원불교도 불교의 한 종파로서 소태산 대종사를 종조로 삼고 붓다를 교주로 삼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불교는 이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원불교가 불교의 한 종파로 될 경우 그동안 쌓아온 4대 종교로서의 위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9년 불교계에서 원불교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복귀를 강하게 원했지만, 그들이 수용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이제 원불교는 외형적으로 불교와는 다른 종교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불교의 WFB 총회 개최는 마치 뿌리가 같다고 해서 천주교 국제행사를 개신교에서 여는 것과 같은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원불교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원(圓)을 사상적 특징으로 하는 불교이면서,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불교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불교와 다르다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불교와 원불교의 차이는 화엄불교와 천태불교, 유식불교의 차이처럼 본질적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이다. 원(圓)과 화엄, 천태라는 차이를 갖고 있지만 불교라는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천태, 화엄, 유식은 정삼각형이나 직각삼각형처럼 모양이 다르더라도 삼각형이라는 동일한 본질을 갖고 있는데, 원불교만 사각형으로 불리는 형국이다.

원불교가 불교와는 본질이 다른 소태산 대종사를 교주로 하는 종교라면, 불교라는 이름 대신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종단처럼 원(圓)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불교와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대종사라면 어느 길을 선택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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