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지정예고… 보유자 김경호 원장 인정

불경 보급 목적으로 시작
인쇄 발달하며 수행 정착
서예·회화 접목 종합예술

김경호 원장 첫 보유자로
고려 전통 금니사경 복원
40년간 사경 전승에 힘써

문화재청은 불경을 쓰는 기술을 가진 장인인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하고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을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사진은 김경호 원장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옮겨 적어 널리 전하기 위해 이뤄진 기술이었다.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사경은 공덕을 쌓는 수행이 됐다. 수행이자 예술인 사경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불경을 쓰는 기술을 가진 장인인 사경장(寫經匠)’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고,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을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41일 밝혔다. ‘사경장은 불경(佛經)을 쓰는 사경(寫經)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의미한다.

사경 제작은 크게 필사(筆寫), 변상도(變相圖) 제작, 표지 장엄 세 가지로 구성된다. 세부적으로는 금가루 발색 아교 만들기 종이의 표면 처리와 마름질 잇기 선긋기 경 필사 변상도 그리기 표지 그리기 금니 표면처리 등 10여 가지 공정을 거친다.

사경 제작에는 서예·한문·불교 교리·회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능이 필요하다. 사경이 수행과 예술이 접목된 종합예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경전의 오자·탈자가 없어야 하므로 고도의 집중력과 장기간의 제작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경의 역사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 당시에는 불경을 세상에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제196)’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경 유물이다.

이후 8세기 중엽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스스로 공덕(功德)을 쌓는 수행으로 변화했고,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며 사경은 전성기를 맞았다. 실제 <고려사(高麗史)> 등에 따르면 국가에서 사경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관을 운영하였고, 당시 사경은 국가 최고의 역량을 동원한 당대 문화의 집합체였다.

특히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제235)’ 등 금자(金字은자(銀字) 형식의 사경이 많이 제작되었고, 충렬왕 대에 중국에 수백 명의 사경승(寫經僧)을 파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고려 사경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쇠퇴하였으나, 일부 왕실과 사찰에 의해서 명맥은 유지됐다.

사경장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경호 원장은 지난 40여 년간 사경 작업에 매달려온 장인이다. 1997년 조계종에서 개최한 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2010대한민국 전통사경기능전승자로 선정됐다.

김 원장은 오랜 기간 문헌과 유물을 통해 사경의 재료, 형식, 내용을 연구하고 이를 기술로 승화시켰다. 또한 각종 교육 기관에서 사경 관련 강의를 하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등 사경 전승을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아울러 전통 사경체(寫經體)를 능숙하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변상도 등 그림의 필치가 세밀하고 유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 원장은 사경장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예고는 700년 간 단절됐던 사경을 복원·전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며 첫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찬란한 전통의 사경을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예술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을 예고한 사경장과 보유자로 인정을 예고한 김 원장에 대해서 430일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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