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타 스님 3

 

 

 

 

 

 

 

 

<서신 1>

내게 묻노라 어찌하여 碧山(벽산)에 사느냐고,
웃을 뿐 답하지 않노라
마음은 스스로 平安(평안)하니 산은 깊고 물은 흐르고
각색 초목은 휘어져 있고 이상한 새소리는 사방에 울고
적적하여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데
고요히 앉아 내 마음을 궁구하니
내게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면 무엇인가
별이 고와 꽃들이 아름답듯 집안에 꼬마들 함께 즐거움 가득하려니
일심청정 호지로 언제나 부처님 광명이 충만하기를
희자는 요즘도 자주 오는지
시절 인연에 미루고 이만 줄이며 부디 몸소 튼튼.

 

태백산 도솔암에서 수행 중이실 때 쓰신 글을 보내셨다. 희자 스님은 진주 응석사 총무스님으로 자주 함께 뵈었던 스님이다.
문장 한 줄 한 줄에서 산중 선지식의 마음을 볼 수 있었던 편지다. 경전이나 일반 책의 문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문장이다. 많은 서신이 있었지만 이 서신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한 줄 한 줄 서신을 읽으며 스님의 깊은 마음에 다가가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서신 2>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滿山紅葉(만산홍엽)이 짙어 가는데 고봉정상에 외 소나무는 어떤 바람소리에도 아랑 곳 없거니와 내가 아팠다느니 다쳤다느니 뜬소문이 잘도 난다. 더 젊을 때 같지는 않아도 독야청청은 아닐망정 그 대신 반근착절이 든든하니 아모 염려 없음이라.
꼬마들 잘 크고 가정이 단란하니 그 밖에 무엇을 더 하리요만 사바는 언제나 과연 무상한 것. 일심청정 잠시라도 놓지 말고 재가 수행에 갱가노력 만전을 다하기 바랄 뿐.

                                                                                     태백산 도솔암에서

※가외로 빚지기는 정말 싫은 게 사실이지만 보내주신 약 명초당을 위해 두었다가 겨울에 달여서 우리 용맹정진 때 더불어 공양하겠습니다.

친정아버지와 의논하여 약을 한 재 지어 보내드린 후 답장으로 온 서신이다.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우셨던 스님은 부산 대각사에 법문하러 오실 때면 나를 불러 법문을 듣게 했다. 그때는 내가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그냥 뒷전에 앉아 있는 게 다였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절 마당은 대중으로 가득차서 스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는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일타 스님과 인연이 시작됐다.
얼마 후 대각사 불교청년회에 가입했고 1967년 11월 해인사 수련회에 참가했을 때 다시 스님을 뵈었다. 그때부터 스님을 자주 뵙게 되었고, 인연은 깊어졌다.
1968년 봄에 범어사 보살계 법문하러 오셨을 때에도 보살계가 뭔지도 모르는 내게 계(戒)를 주셨고 행사가 있을 때면 꼭 알려 주셨다. 내가 스님을 깊게 따르다보니 문중 스님들도 자연스레 큰스님 유발상좌로 대해주셨다. 스님이 안 계신 지금도 행사 때마다 문중 스님들을 뵈면 친정에 온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스님이 더욱 그립다.

일타 스님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