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함께”… 진정한 수행자의 길

불착·수순, 보살이 가진 공능
자비행을 지혜보다 우선 의미
禪수행의 과정 그려낸 십우도
10번째 ‘입전수수’ 교화 강조
이는 계차 선사 롤모델로 해

중국 사천성 시방현 나한사의 포대화상상. 당나라 말기 선사 계차를 모델로 했다. 초기 십우도의 마지막 도상인 ‘입전수수’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나라 때에 다양한 종파가 형성되었는데, 선종(禪宗)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 대체로 선종은 오롯이 자신의 수행에 집중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사들은 중생을 향해 보살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층이라는 말인가? 답을 직언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록에서 선사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 전후, 수행과 실천의 병행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대승불교는 ‘어떻게 보살의 길을 지향하느냐’를 고민하며, 참 종교로 거듭났다. 초기불교에서 석존에게 국한했던 보살이란 용어가 대승불교로 오면서 ‘자리이타’ 실천을 지향하는 일반 수행자 호칭으로 변모되었다. 곧 대승의 보살은 재가자든 출가자든 구별 없이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이 함께 해탈하도록 이타를 실천하는 수행자이다. 보살의 대표적인 보살행이 육바라밀이고, 이타의 구체적인 행이 서원·행원·발원·회향 사상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 최초로 선사상이 정립될 때, 선사들이 대승경전을 토대로 하였다. 어록이 나오기 이전까지. 이를 감안해 대승불교 경전에 언급된 대승적 의미의 중생구제를 보자.

〈반야경〉에서 보살의 두 가지 공능을 설할 때, 반드시 ‘불착(不着)’과 ‘수순(隨順)’을 들고 있다. 그런데 대승의 보살에게 불착보다 수순할 것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불착이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함이요, 또한 수순이란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중생세계로 돌아와 중생의 뜻에 따르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을 말한다. 이는 보살이 지혜와 자비를 함께 운용하되(悲智雙運) 자비 실천을 지혜의 발현보다 우선함을 의미한다. 

육바라밀도 보시가 제일 먼저 등장하고, 사홍서원에도 ‘중생을 제도한다’는 이타사상이 먼저 등장한다. 〈열반경〉에 “나의 성불을 뒤로 미루고, 남을 먼저 제도한다”라고 하며, 〈화엄경〉에도 “중생제도를 먼저하고, 나의 성불을 뒤로 미룬다(先度衆生後成佛)”고 하였다. 또 〈유마경〉에서는 “선미(禪味)에 탐착해 있는 것은 보살의 속박이요, 방편으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보살의 진정한 해탈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뒤 해탈의 기쁨을 누리며 열반을 선택하지 않고 중생의 권익을 선택했던 것(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임)처럼, 〈유마경〉에서 보살의 진정한 해탈은 바로 자리적(自利的) 선열(禪悅)이 아니라 중생교화를 우선하는 것이 진정한 선자라고 정의한다. 보살 사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유마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일 일체 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에 들어간다. 만일 중생이 병을 여의면, 보살도 병이 없어진다.”        
“보살이 깨끗하지 못한 국토에 태어나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어둠과는 더불어 섞이지 않나니, 다만 중생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 청정치 못한 국토에 태어나는 것이다.”

곧 보살이 깨달았을지라도 중생의 해탈을 위해 중생 속으로 들어가는 동체대비의 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대승불교에 와서는 해탈의 경지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집착 없이 대비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여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고 한다. 이런 사상을 기반으로 선종에서 무심(無心·無住心) 사상을 내세웠는데, 이는 깨달음을 향한 실천적 과정이면서 목적지이다. 

그러면 선수행자의 자비사상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실은 선자의 자비가 강조된 것은 송나라로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선자의 자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표가 십우도이다. 십우도는 선의 구도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목우도와 함께 여러 종류의 십우도가 등장했다. 십우도 가운데 대표가 곽암 선사의 그림과 게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곽암의 십우도가 발전되었고, 우리나라 법당 벽화에도 이 십우도가 가장 많이 그려져 있다. 곽암은 임제종 양기파 승려이고, 법명은 사원(師遠)이며, 대수 원정(大隨元靜, 1065~1135)의 법맥을 받았다. 

십우도는 자신의 마음(번뇌)을 소(牛)에 비유하여 번뇌를 조복 받고 길들여(牧牛),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騎牛歸家), 결국 소도 잊고, 자신도 모두 잊어버리는(忘牛存人) 과정을 지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다음 다시 중생세계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열 가지로 묘사해 놓은 그림이다. 

아홉 번째가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인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여여부동(如如不動)한 제법실상(諸法實相) 그대로의 경지인 본 자리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다음 열 번째가 이 원고의 주제인 입전수수(入纏垂手)이다. 마지막 그림인 입전수수는 포대화상과 동자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이다. 후대에는 행각승이 마을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깨달은 뒤에 혼자 깊은 적정세계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 속으로 들어가 중생과 더불어 함께 한다는 의미다. 이 사상은 대승경전에 언급된 사섭법(四攝法) 가운데 하나인 동사섭(同事攝)과 유사하다. 곽암은 입전수수 서문에서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표주박을 들고 저자에 들어가며, 지팡이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술집도 가고, 고깃간도 들어가서 교화를 펼쳐 성불케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술집이나 고깃집이라는 장소이다. 승려가 계율 상 금기할 곳이 술집과 고깃간이다. 하지만 이곳도 중생이 사는 장소이다. 나쁜 업을 지은 지옥 중생도 보살이 구제해야 할 대상이다. 왕족이라고 구제받을 귀한 존재이고, 교도소의 수인이라고 천대해 구제하지 말라는 논리가 아니다. 중생을 섭수(攝授)코자 한다면 어느 곳, 어떤 장소를 분별하지 않고, 가야한다. 곧 수행자가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어 상대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심(無心)히 행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십우도의 입전수수를 기점으로 어록에 유사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벽암록〉에도 ‘손을 드리우다(垂手)’는 단어가 있다. 스승이 제자나 신자를 이끌기 위한 자비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입전수수 동의어로 쓰이는 유명한 문구가 ‘화광동진(和光同塵, 중생과 함께 함)’이다. ‘화광’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인격적 품성이나 재능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음이요, ‘동진’이란 오염된 티끌 세상에 들어가 그들과 동화되어 함께하는 것이다.  

화광동진의 유사한 언어로는 ‘회두토면(灰頭土面)’이다. 회두토면은 ‘머리에 재를 쓰고 안면에 흙을 칠했다’는 뜻이다. 수행을 성취한 후에 되돌려서 대비심을 내어 중생 속으로 들어가 중생을 구제한다. 회두토면은 곧 중생과의 인연에 따라 그 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화현하는 것이다. 〈벽암록〉에서는 세간이든 청정 도량이든 본성을 깨닫는 데는 차별이 없는 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선사가 중생과 더불어 함께한다는 의미로 회두토면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송나라 보제가 지은 〈오등회원〉 권20에서는 ‘회두토면 대수타(니帶水拖泥)’라고 하여 회두토면과 나란히 대수타니를 언급하고 있다. 〈십우도송〉 저자 곽암은 열 번째 입전수수를 설명한 게송에서 ‘말토도회(抹土塗灰)’라고 언급하였다. 곧 “재투성이 흙투성이(얼굴)”이라는 뜻인데, 앞의 대수타니와 동일한 의미다. 이 대수타니와 유사한 단어로 ‘입니입수(入泥入水)’라는 단어도 함께 쓰인다. 진흙에 들어가고 물속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중생세계로 들어가 함께 함을 말한다. 〈서장〉에서 대혜 종고(1089~1163)가 장시랑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전한다. 

“그대가 스스로 얻은 해탈의 경지를 법칙으로 삼아 겨우 이치의 길에 들어서 진흙에 들어가고 물속에 들어가 자비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을 보고, 곧 쓸어 없애고자 하며 종적을 소멸하게 합니다.”

한편 송대의 운문종 선사 자각 종색은 〈좌선의〉 서문에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무릇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먼저 마땅히 대비심을 일으켜 큰 서원을 세우고, 정교하게 삼매를 닦되 중생을 제도해야 할 것이요, 자기 한 몸만을 위해 홀로 해탈을 구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본대로 화광동진·회두토면·말토도회·대수타니·입니입수 등 다양한 보살행 문구가 선어록에 제시되어 있음을 정리해볼 수 있다. 해인사 성철 스님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스님께서 오롯이 수행자의 면목을 보인 것, 그 자체로서 승려들이나 중생들에게 수행자의 정석을 보였으니, 큰 자비를 베푼 셈이다.  

입전수수에 대한 화송(和頌) 마지막에 “미륵의 누각문이 활짝 열어진다”고 하였다. 곧 입전수수의 롤 모델로 포대화상을 염두에 두었는데, 곽암의 십우도에는 행각승(목동)이 포대화상과 마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대화상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미륵부처’라고 한다.

포대화상은 뚱뚱한 몸집에 큰 배를 내밀고, 늘 웃음을 띠고 있으며, 등에 포대를 짊어지고 있는데 중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계차는 늘 길에서 생활하고, 길에서 잠을 청했으며, 중생들과 저자거리에서 함께 했던 보살이다. 이 포대화상은 당나라 말기, 절강성(浙江省) 봉화현(奉化縣)의 승려 계차(契此, ?~917)이다. 계차의 고향인 봉화현은 중국 미륵불교의 발상지이다. 계차 입멸 후 중국인들은 그를 미륵의 화신으로 받들어 희망의 아이콘으로 섬기고 있다. 

근자, 코로나19 전염증으로 전 세계가 뒤숭숭하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이들이 다 그렇지만, 스님들도 경제적으로 곤핍한 처지이다. 그런데도 중생을 향해 팔을 벌려 달려가는 스님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나라가 곤란하고 중생이 힘들 때, 불교는 절대 이기적이지 않았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