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공덕의 땅, 바간

미얀마 주축 버마족의 뿌리
바간 왕조에서 찾을 수 있어
테라와다 불교 받아들이면서
자비로운 통치자 되려 노력

바간 왕조의 제2대 왕 짠싯타가 건립한 아난다사원. 미얀마 역사에 전륜성왕으로 기록된 짠싯타왕은 제1대 왕 아노야타를 이어 아리불교의 폐해를 뿌리 뽑고, 각종 불사를 마쳤다.

2019년도 우리나라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미얀마의 바간(Bagan)이 등재되었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바간은 오래전부터 자부심의 원천(源泉)이자, 삶을 마감하기 전 반드시 여행하는 곳이다. 그리고 미얀마 불교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미얀마는 135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버마족이 68%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 버마족의 뿌리는 바간 왕조에서 찾을 수 있다. 바간 왕조를 이룬 티베트-버마족은 중국 남조의 부용(附庸)민족으로 윈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중국 남조가 멸망하면서 티베트-버마족은 미얀마의 중부지대로 이동하여 바간이라는 왕조를 세웠다.

바간 왕조의 첫 번째 왕인 아노야타(Anawrahta)는 전략적인 전술로 영토를 넓혀갔다. 미얀마 남쪽지역에서 오랫동안 몬(Mon)족이 유지해온 따톤(Thaton) 왕국을 침략하여 이라와디강(Irrawaddy)의 삼각주를 지배하게 되었다. 몬족은 당시 문화적으로 굉장히 발전한 나라였다. 따톤 왕국은 200년경의 인도의 아소카(Asoka)왕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다. 또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과 문학의 수준이 높았다. 바간 왕조는 따톤 왕국의 발전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전쟁에 능했던 바간 왕조의 명성은 그들의 수도인 바간이라는 이름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바간은 빨리어인 아리마다나 뿌라(Arimaddana Pura)-적군을 물리친 자의 도시라는 뜻의 기원을 두고 있다.

바간 왕조의 명성은 현대 미얀마 군부정권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사용되었다. 쏘마웅(Saw Maung) 장군은 스스로를 바간 왕조 짠싯타(Kyansittha)왕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명분을 찾으려고 했다. 전쟁을 통해 바간 왕조는 티베트-버마족 이외의 몬족을 비롯하여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게 되었다. 당시 바간은 여러 왕국이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고,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고 민심을 아우를 수 있는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다.

아리불교 폐해 뿌리 뽑아
미얀마 바간을 기점으로 점점 세력을 넓혀가던 아노야타왕은 한 가지 깊은 고민이 있었다. 당시 바간 지역에는 아리불교(Ari buddhism)가 성행하고 있었다. 아리불교는 토착신앙과 밀교가 합쳐진 후 불교의 본래 법()이 변질되었다. 30여 명의 아리승()들은 부처의 설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견해를 경전으로 만들어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상당해서 바간 지역의 왕조부터 백성들까지 악행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유리궁연대기>에는 부모를 죽인 사람이라도 아리 경전을 독송하면 그 살인죄를 면할 수 있다. 결혼을 하기 전 신부는 순결의 꽃이라는 의식을 하기 위해 아리승들에게 바쳐져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법(正法)을 찾고 있던 아노야타왕에게 몬족 출신의 신아라한(Shin Arahan) 스님이 나타났다. 신아라한 스님의 설법을 들은 후 크게 감동한 아노야타왕은 바간 왕국에 테라와다 불교를 받아들였다. 신아라한 스님은 아노야타왕에게 불법(佛法)을 제대로 바간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삼장(三藏)을 몬 왕국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이에 아노아탸왕은 몬 왕국에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해서 사절단을 보냈다.

하지만 몬 왕국의 왕은 아노야타왕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노야타왕은 매우 화가 나서 몬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여 이긴 후, 마침내 삼장을 바간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 이후 삼장 필사가 진행되었고 바간 왕국에 있는 모든 사원으로 삼장 필사본이 전해지게 되었다. 경전의 보급화가 이루어지면서 승가(僧伽)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바간 왕국으로 삼장을 가져올 정도로 불심(佛心)이 깊었던 아노야타왕은 불교의 이상적인 지도자인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전륜성왕이 되기 위해 신아라한 스님과 함께 승가를 정비하고 경전을 보급하였으며, 수많은 파고다(Pagoda)를 지었다. 아노야타왕의 불심은 향후 바간 왕조 왕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노야타왕의 불심이 담긴 파고다들은 현재 미얀마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설이 되어 전해진다.

아노야타왕은 부처님 치아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Pagoda)·딴찌따웅 파고다(Tant Kyi Taung Pagoda)·러까난다 파고다(Lawka Nanda Pagoda)·뚜인따웅 파고다(Tu Yin Taung Pagoda)를 만들었다. 4개의 파고다에 방문할 때마다 같은 금액을 보시한 후, 한 가지 소원을 간절히 빈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한다. , 정오가 되기 전에 모두 방문해야 한다.

아노야타왕이 부처님 치아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쉐지곤 파고다.

전륜성왕 기록된 제2대 짠싯타왕
짠싯타왕은 아노야타왕이 친애하던 부하였다.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짠싯타왕은 아노야타왕의 아내인 마니싼다(Manisanda) 혹은 킨우(Khin Oo)라고 불리는 왕비와의 사랑이 들통 나서 내쫓기게 되었다. 아노야타왕이 서거한 후 아노야타왕의 아들이 왕좌에 앉았지만 반란이 일어났고 이를 제압하면서 짠싯타왕이 바간 제2대 왕좌에 앉게 되었다.

짠싯타왕은 아노야타왕으로 시작하는 바간 왕조의 명맥을 잇기 위해 쉐지곤 파고다에 공을 들였다. 쉐지곤 파고다는 아노야타왕 때 건축하기 시작해서 짠싯타왕 때 완공되었다. 짠싯타왕은 아노야타왕의 명맥을 얻기 위해 기존의 쉐지곤 파고다보다 조금 더 크게 완성했다.

짠싯타왕은 아노야타왕처럼 전륜성왕이 되고 싶었다. 짠싯타왕의 이런 노력은 비문을 통해서도 여전히 후대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비문에는 짠싯타왕이 빨리어로 ‘Cakkavatti(전륜성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노야타왕의 뒤를 이은 짠싯타왕은 몬족과 버마족의 융합정책을 위해 불교를 활용했다. 버마족의 문화보다 발전한 몬족의 문화를 불교로 포용했다. 또한 버마족이 가질 수 있는 몬족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불교로 극복하였다.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이질감을 같은 종교를 믿는 불교도라는 의식으로 갈등을 최소화한 것이다. 동시에 짠싯타왕은 자신을 불교의 보호자로 자처하여 불교에서 정신적 피안처와 행복감을 느끼는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순수 왕족 혈통은 아니지만 불교를 통해 아노야타왕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왕권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짠싯타왕이 건립한 파고다 중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을 통해서 그의 통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아난다 사원은 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며 완벽한 대칭균형을 보여줄 정도로 완벽하게 지어졌다. 이곳에는 4개의 불상(佛像)이 각각 동서남북에 배치되어 있다. 남쪽에 위치한 불상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부처님의 표정이 다르게 느껴진다. 왕과 귀족들이 앉았던 맨 앞에서 부처님을 바라보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통해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비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백성들이 앉았던 맨 뒤에서 바라보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부처님을 느낄 수 있다.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미소는 힘든 삶에서 시원한 소나기로 느껴질 만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노야타왕과 짠싯타왕은 타락한 아리 불교의 뿌리를 뽑아내고 테라와다 불교의 씨앗을 심어 불법이 살아 숨 쉬는 공덕의 나라 바간 왕국의 기틀을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바간 왕국에는 4500여개의 불탑이 있었지만 수많은 전쟁과 지진으로 인해 현재는 약 2500개가 남아있다.

바간 왕조의 왕들이 수많은 탑을 건립한 것은 자신들의 불심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전륜성왕이 되어 부강한 나라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자비로운 통치를 하고 싶었던 그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그리고 또한 자신들의 공덕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미얀마 바간에 여행을 온다면 수많은 탑을 바라보면서 각 탑을 만든 바간 시대 왕들과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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