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불교 ‘화엄학’으로 통하다

동아시아 화엄학 전개 조망
원효·의상 등 신라승려 연구
〈석마하연론〉 신라성립 주장
화엄 통한 교류사 확인 의미

한국과 중국, 일본 불교가 화엄교학을 통해 활발한 교류를 전개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라 화엄학’이 미친 지대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학술서가 발간됐다. 

일본 고마자와 대학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사진) 교수의 〈화엄사상의 연구〉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발간됐다. 번역은 김천학 동국대 HK교수가 맡았다. 

화엄교학은 천태교학과 함께 중국불교의 이론을 대표하는 교학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화엄교학이 중국불교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며, 그 영향력은 지역을 넘어 현대 사상계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나 화엄교학에 관한 대다수의 연구는 사종법계설을 비롯한 전통적인 교학에 근거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사종법계설에 의한 구분이 정착되기 이전 화엄교학의 본래의 모습이나 화엄교학의 성립 사정 자체를 해명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시이 교수의 〈화엄사상의 연구〉는 동아시아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조망하고, 의상과 원효 등 신라의 승려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라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동아시아 불교사의 지형을 새로 그리는 등 화엄사상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입당하여 화엄종 2대 조사 지엄에게 사사하고, 동문의 후배인 법장 스님과 친교를 거듭했던 의상 스님이나, 또 신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원효 스님이 중국의 법장 스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단적인 예다. 이는 화엄교학이 당시 동아시아 사상 교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진=토이비토 닷컴 캡쳐

책에서 주목할 점도 이 부분이다. 이시이 교수는 신라불교를 하나의 조그마한 흐름으로 인식했던 종래 학자들의 연구와 달리 매우 역동적인 흐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실제 저자는 〈화엄사상의 연구〉에서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 원효, 의상 스님의 화엄사상에 대해 폭 넓게 기술한다. 

저자는 제3장 ‘신라의 화엄사상’에서 의상에게 영향을 미친 지론교학의 중요성을 서술하고, 원효 화쟁의 근거를 찾았다. 특히 원효 저술의 저작 순서를 추정한 것은 원효 사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의상의 ‘법계도’의 배치는 독특하지만, 그 구성에는 중국 시적(詩的) 연원이 있다는 사실과 이이상즉설(理理相卽說) 역시 초기 중국불교와 지엄에게 그 사상적 연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제4장에서는 중국 화엄종 3대 조사인 법장의 화엄사상이 지엄과 의상, 원효의 사상적 영향 하에 구성됐으며, 신라 위찬설이 주장됐던 〈석마하연론〉에 대해 ‘신라성립설’을 주장하고 있다. 제5장은 앞선 주장들을 심화해 〈석마하연론〉의 성립 배경을 고찰하며 원효, 의상, 법장의 영향을 확인했다. 

이시이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지론종의 화엄 관련 문헌에 주목하였고, 그것이 의상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 덕분에 법장 작(作)으로 전해져 왔던 〈화엄경문답〉은 의상과 제자의 문답임을 지적할 수 있었다”면서 “원효 저작의 성립 순서를 추정한 것은 본서에 정리한 논문이 최초일 것이다. 〈석마하연론〉이 신라 성립임을 논증하는 등 한국불교 연구에 일정 부분 공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역자인 김천학 교수는 “이시이 교수는 중국과 신라, 신라와 중국 간의 상호 사상적 교류를 거쳐 일본의 초기 화엄이 성립됐다고 본다”면서 “향후 중국과 신라불교의 상호 영향 관계를 면밀히 밝히고, 신라에서 일본으로의 불교사상적 영향과 일본적 수용의 특성을 밝혀야 하는 사상사·인문학적 과제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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