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 출생부터 입적까지 기록
금강경·선문염송 등 강의
보림선원 열고 거사선풍 중흥
새말귀 수행방법론 정립 보급

 

눈을 부릅뜨고 와 귀를 가리고 가다 최운초 지음/ 가을여행 펴냄/ 22,000원

 

 

 

 

 

 

 

 

 

 

“무자화두 다 날아가 버렸어. 그건 빤한 말이라. 있다 해도 돼. 없지 않다 해도 돼. 없지 않음이 아니라 해도 돼. 다 날아가 버려. 빤한 말이라. 그 내용만 알면 말 붙이기 나름입니다.”

“삶을 굴리되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성성하게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거사불교로서, 생활불교로서 생업을 행하며 깨어있는 것이다. 그 방법을 체계화하고 이름붙인 것이 ‘새말귀’다. 그의 수행방법론은 새말귀로 체계화되었다.”

1970년대 보림선원을 열어 거사불교와 선풍을 크게 일으켰던 백봉 김기추 거사의 일대기가 출간됐다. 백봉의 제자 최운초가 지은 〈눈을 부릅뜨고 와 귀를 가리고 가다〉이다.

조선을 억압하는 일제에 저항했고, 교육 및 바른 정치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불교에 입문한 후에는 무자(無字) 화두로 정진했던 백봉의 삶을 12개의 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제1장 ‘눈을 부릅뜨고 오다’는 백봉의 출생과 부산 청년동맹 활동 등을 소개하는 청년기의 기록이다.

1980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백봉은 부산 제2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운동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년간 복역했다. 이후 특급 요시찰 인물로 일제의 감시와 방해를 받으며 지내다 해방을 맞았다.

△제2장 ‘하늘을 날려하나 날개가 꺾이다’에서는 학교를 세운 이야기, 국회의원을 꿈꾸고 자유당에 입당, 그리고 자유당과 함께 침몰한 이야기 등 해방 이후의 백봉을 소개한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이었던 백봉은 굶주린 주민들을 위해 양곡 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 주었고, 군정법령 위반으로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2년을 복역한 후였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던 백봉은 정치에 뜻을 세우고 자유당에 입당했으나 4ㆍ19혁명으로 자유당과 함께 파산하고 부산을 떠났다.

△제3장 ‘불교를 만나다’에서는 불교를 알게 되어 발심하게 된 이야기, 법을 찾아 절에 간 이야기, 무자 화두를 품고 정진한 이야기 등 백봉이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처음엔 화두가 안 잡혀서 애를 먹었어요. 내가 팔자가 나빠! 참말로 나빠! 그래서 ‘이 공부를 해야 되겠다’ 하고 화두를 가졌는데 자꾸 잊어버려 그래서 ‘팔자가 나쁜 내가 화두를 잊어버리고 공부를 안 하면 되겠나?’ 하면서 다시 화두를 잡았지. 한 달 반쯤은 자꾸 놓쳤어요. 두 달 가까이 되니 화두가 슬며시 잡혀, 술자리에 가도 화두가 그대로 붙어 있어. 화두가 잡히니 재미가 나, 〈중략〉 서너 달 되니 화두가 딱 들어붙어서 안 떨어져. 처음에는 화두를 육조 스님의 말씀인 줄 알았어요. 조주 스님의 말씀이란 걸 나중에 알았어요.〈후략〉”

부산을 떠난 후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후일을 도모하던 백봉은 1963년 여름에 불교를 만나게 된다. 백봉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로부터 ‘불교’를 듣게 된다.

△제4장 ‘금강경 강송을 쓰다’부터 마지막 12장 ‘귀를 가리고 가다’까지는 〈금강경 강송〉을 완성하고 〈금강경〉을 강의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보림회가 와해된 이야기, 보림선과 보림삼관, 〈유마경 강론〉 출간, 보림선원 개원, 새말귀 수행방법론으로 거사선풍을 일으킨 이야기, 선문염송 강의, 입적 등 백봉이 한국불교사에 남긴 불사들과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나는 말이지, 내 욕심인지 뭣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집이 전부 절이다.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집집이 출가하자. 가정살림 하더라도 마음 출가하자. 마음 출가하면 집집이 절이라. 집집이 절이면 집집이 중이라고도 할 수 있어. 가정생활 하는 것을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정생활 하는 것이 참말로 불법의 도리예요. 몰라서 그렇지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부처님은 왜 출가했느냐? 그건 사람들 교화시키려고. 일단 교화시키는 방편으로. 부처님도 시절인연을 안 따를 수 없어요.”

백봉은 출가 제의를 받았지만 심사숙고 끝에 결국 출가하지 않았다. 당시 승려사회의 문제와 거사불교의 진흥을 위해 출가하지 않았다.

인천과 서울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던 백봉은 1970년 충남 유성에 보림선원을 열어 대학생과 수좌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1972년 부산으로 선원을 옮긴 후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1985년 8월 2일, 백봉은 좌탈했다. 그는 사는 동안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백봉 선시집〉, 〈절대성과 상대성〉 등의 저서를 남겼다.

책의 저자는 백봉 거사의 제자 최운초이다. 저자는 스승을 미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스승이 남의 책을 베낀 이야기 등 제자로서 공개하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사실대로 썼다.

책은 민중을 사랑했던 한 사회운동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해 무시당하고 탄압받는 조선 민중을 보며 일제에 대항했고,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가로, 정치인으로 민중을 일깨우고 민중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했으며, 대오 후에는 아집과 욕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미망에서 벗어나는 데 헌신했던 선각자의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일반 대중에게 책은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봉은 평소 “마음공부를 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화두를 들고 선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백봉의 화두공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며, 화두공부에 진전이 없어 공부에 대한 의욕이 작아지고 있는 대중이나 새롭게 마음공부를 시작하려는 대중에게는 수행안내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본래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대중에게는 백봉의 치열했던 노력과 자비심에 공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백봉이 생전에 보인 신기한 일들을 책에서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백봉의 지인들은 모두 아는 그의 전생이야기도 다루지 않았다. 스승의 일대기가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사실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거를 보일 수 없는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불법은 사실을 사실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며, 그것이 스승을 제대로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희미해져가는 스승의 행적을 정성스럽게 더듬어갔다. 300시간이 넘는 스승의 설법을 몇 번씩 들어가며 설법 속에 들어있는 스승의 행적을 찾아 모았고, 100명이 넘는 그의 제자와 가족들과 일일이 인터뷰했다.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포함한 여러 신문에서 스승의 행적을 찾았고, 스승의 행적과 닿아있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쫓았다. 또한 백봉의 삶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장소와 기록을 모두 살폈다. 저자는 그렇게 8년간의 조사를 마치고 2년에 걸쳐 원고를 마쳤다.

저자 최운초는 스물아홉에 백봉 거사를 만나 불교에 입문했고, 이듬해 선원에 입주해 백봉으로부터 사사했다. 서울대에서 우주항공공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영컨설턴트로 일했으며 〈성과주의의 혁신〉 〈이너게임〉 〈공겁인1,2〉 등의 저서와 8권의 역서를 출간했다.

1970년대 보림선원을 열어 거사불교와 선풍을 크게 일으켰던 백봉 김기추.
저자 최운초는 스물아홉에 백봉을 만나 불교에 입문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