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이해의 길 37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년 배용균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 영화다. 뛰어난 작품성과 아름다운 화면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호평이 쏟아진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한국영화 100년사 10선(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한 동자승의 눈을 통해 삶과 죽음, 세속적 욕망과 깨달음의 세계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 제목이 선불교에서는 수행자를 향해 던지는 날 선 질문과 같다. 불교의 핵심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이 수행하면서 깨달은 소식이 있으면 내놓으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칫 본인의 밑천이 모두 드러날 수 있는 공격적인 질문이다. 선어록에는 질문을 받은 사람이 상대방을 몽둥이로 때리거나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들이 가끔 등장한다. 때로는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어떤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 선문답과 같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본래 이 질문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즉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달마조사가 서쪽인 인도에서 동쪽인 중국으로 선불교를 전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학의 황금시대〉의 저자인 오경웅(吳經熊)은 서론에서 “선불교는 인도적인 아버지와 중국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닮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선불교에서 중국 도가사상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도가를 통한 격의(格義)의 방법을 사용했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달마가 중국에 왔을 때는 천태와 화엄 등의 교학불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종파 간에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었다. 교학이나 각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은 붓다의 깨침을 설명하는 체계로써 의미를 가진다. 즉, 깨침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 〈화엄경〉이나 〈법화경〉 등의 표현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종파 간의 경쟁이 도를 넘으면서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깨침인 달을 보아야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標月之指)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달마의 눈에 비친 중국불교의 실상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마는 먼저 수단에 집착하고 있는 교학불교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것이 유명한 선의 사구게(四句偈) 가운데 전반부 내용이다. 교(敎) 이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는데(敎外別傳), 그것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不立文字)는 것이다. 불교의 진리, 붓다의 깨침은 언어로 표현된 교학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그러니까 마음과 마음으로 전승되었다는 뜻이다. 파격도 이런 파격이 있을 수 없다. 이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에 집착하고 있던 교학불교를 향한 사자후였다.

달마는 당시의 불교계를 향해 비판과 더불어 대안도 제시하였다. 그것이 사구게의 후반부인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直指人心),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는 내용이다.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에서 시선을 떼고 직접 달을 보라는 뜻이다. 새로운 불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선불교의 입장에서 달을 가리키는 수단은 손가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막대기나 붓, 빗자루 등 수없이 많다.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손가락에 머무는 한 달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수단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달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달을 보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버리는 것이 선의 정신이다. 이 과격함 속에 담긴 ‘무엇이 중헌디?’라는 본질적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선(禪)은 불교의 생명과도 같은 문제의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 행해졌던 불교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찰이나 불상, 경전 등과 같은 격식(格) 바깥(外)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실천적인 선불교가 좀 더 동쪽으로 이동해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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