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최주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자고 일어나는 속속 늘어서는 이 위기의 상황에 임상 현장인 병원은 더더욱 삼엄한 분위기가 감돈다. 우선 병원에 들어가려면 문진표를 작성해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을 확인받은 후에야 가능하다. 불교법당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미 2월 초부터 포교 환경이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20여 봉사자들도 일을 중단하고, 한명의 봉사자가 법당 문을 열고 닫는 일만 지속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발병 당시 서울의 한 시립병원 지도 법사로 활동할 때 만난 환자가 떠오른다. 환자들이 거의 퇴원해 병실이 많이 비었고 타종교 기도실도 문 닫고 휴관에 들어갔다. 나도 불교 법당 문을 당분간 닫을까 고민했다. 그 와중에 한 환자분이 불교 법당을 방문했다. 양쪽 다리관절 수술 후 얼마 안돼 메르스 사태가 터지다보니 퇴원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가족 방문이 불허돼 고립된 상황이지만 용기 내어 퇴원을 미루고 재활을 받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스님 병원 법당이 있어서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부처님 전을 향해 연신 합장 기도하며 천진불처럼 웃는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그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어 법당문을 계속 열었다. 환자는 매일 보행기에 의지한 채 법당에 내려와 부처님께 참배하고 한참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면서 심신의 상실감을 달랬다. 입맛이 떨어져 힘들 때 마침 공양물로 들어온 마른 김으로 입맛을 돌린 후 부처님 덕분에 살았어요라고 하던 말이 귀에 지금도 맴도는 듯하다.

이런 경험이 있던 터라 불교 법당 문을 닫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봉사자 한 분에게 불교 법당 문 여는 일을 부탁했다. 봉사자는 흔쾌히 승낙했다. 정초 기도가 끝나고 법당서 만난 봉사자는 고맙다는 나의 인사에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예전에 한 노보살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노보살은 한국전쟁이 터지고 절로 피난 했는데 그곳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처님께 마지를 올렸단다. 그 결과 모두가 무탈하게 그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고 했다. 봉사자는 그러면서 스님, 그 보살님이 생각나면서 저도 그런 행을 요즈음 흉내 내고 있습니다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관음의 미소였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병원 법당을 지키는 그 모습은 분명 관음의 모습이었다. 그의 말없는 행원에 그저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병상록양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백의관음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남순동자는 들은 바 없이 듣네.
화병의 푸른 버들 항상 여름이고 바위 앞 푸른 대나무 온통 봄빛이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