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50ㆍBBS불교방송 라디오제작국장)

 

문태준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1996년 BBS불교방송 라디오제작국 PD로 입사했으며, 현재는 라디오제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천시 용화사서 첫 불연
고향 자연풍경서 詩 품어
1994년 중앙문예 시 등단

1996년 BBS불교방송 입사
2000년 첫 번째 시집 출간
두 번째 시집 <맨발> 주목

불교 공부로 詩 시계 넓혀
시집 7권, 산문 등 출간
禪적인 시 세계 모색 중

 

부처님의 말씀은 26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오래된 한 생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중생의 삶 속에 자리해 왔다. 그리고 중생의 삶과 더해진 그 한 생각이 다시 부처님의 그늘을 넓혀간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깊은 글을 쓰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보다 깊은 성찰을 발견하면서 대중은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그 일들이 부처님의 세상을 넓힌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시 한 편이 누군가의 마음을 넓히고, 부처님 말씀에서 비롯된 노래 한 편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꿈으로써 우리는 좀 더 넓어진 부처님의 그늘에서 살게 된다. 어느 시인은 부처님을 만나면서부터 자신의 시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 그늘에 들어와 시로 부처님의 그늘을 넓혀가고 있는 시인 문태준이다.

#부처님 그늘
김천에서 태어난 문태준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그는 직지사 말사인 용화사 부처님을 핸드폰 속에 모시고 산다.
“예닐곱 살 때부터 절에 다녔는데 그저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둘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이 저의 많은 길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때 그렇게 부처님을 아무 뜻 없이 만났던 일, 뜻 없이 절 마당을 걸었던 일, 스님의 뒷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던 일, 그런 시간들이 저를 또 다르게 키웠던 것 같아요.”
문태준은 정해진 길을 가듯 부처님 그늘로 걸어 들어갔다. 문태준은 그 시작이 유년시절 고향의 작은 절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뜻없던 일들이 불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아무런 뜻도 모른 채 걸어 들어간 길이 부처님의 그늘이었고, 그 그늘은 문태준의 길이 되었다.

#시를 만나다
문태준은 중ㆍ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다. 글짓기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가했다. 그리고 여러 번 수상했다. 문태준은 그쪽이었다. 문태준의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었다. 길은 정해졌다. 문태준은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시를 만난다. 문태준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신문기자를 그렸다. 하지만 문태준은 시 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와 가까워진다.
“2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시를 많이 읽었어요. ‘시인’을 그리기 시작했죠. 제가 살고 있는 농촌이라는 공간이 깊은 우물이라면 깊은 우물로부터 ‘시’라는 맑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안에도 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때부터 문태준은 시와 정면으로 앉는다.

#시인 문태준 그리고 육조단경
문태준은 복학 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4학년 때인 1994년 마침내 시인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다. 문태준은 ‘처서’ 외 9편의 시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한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형편은 그렇지 못했어요. 취업부터 해야 했어요.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에겐 좋은 인연이었어요.”
문태준은 1996년 BBS불교방송에 입사한다. 문태준에게는 두 번째 부처님 그늘이다. 부친의 권유로 진학이 아닌 취업을 결정한 문태준은 교내에 붙은 채용공고를 찾아 나섰다. 문태준이 처음 만난 채용공고는 ‘BBS불교방송 라디오 PD 모집’공고였다. 문태준은 필기시험에서 〈육조단경〉의 한 구절을 답으로 써냈다. 그리고 합격했다.
“대학교 수업에 〈육조단경〉이 있어서 한 학기를 들었는데 그때 기억이 남아 있었어요.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막연했지만 유년시절 고향에서 경험했던 뜻 없는 불교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향에서의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제 눈에 〈육조단경〉이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울러 게송이 담긴 〈육조단경〉이었다는 게 또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다른 경전이었다면 그때까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시인의 길을 걷기로 했던 문태준에게 〈육조단경〉에 담긴 게송은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인연으로 이어졌다.

#문태준의 시
2000년, 마침내 문태준은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을 발표한다. 문태준이 시인으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시집 〈맨발〉부터다.
문태준의 시는 고향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향의 자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먼 산으로부터 몰려오는 비, 골짜기를 넘어가는 눈보라, 아궁에서 꺼낸 따뜻한 잿더미로 죽은 염소를 덮어주시던 아버지의 손, 오고 가는 계절의 견고한 모습들, 물안개 핀 저수지의 풍경, 문태준은 고향의 자연에서 ‘공유’를 배웠다고 했다. ‘함께 쓰는 것’, ‘함께 사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로 비롯된 것들이 시로 건너갔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 〈중략〉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 〈후략〉”
시집 〈맨발〉에 실린 ‘맨발’의 일부다. 문태준의 시는 첫 시집을 발표하고 난 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집 〈맨발〉에서는 불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집을 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요. 그때마다 시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의 시부터 문장 속에 불교적인 언어와 생각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문태준은 BBS라디오제작국 PD로 일하면서 부처님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부처님 가까이 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태준의 시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언어와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세 번째 시집 〈가재미〉로 문태준은 더욱 많은 조명을 받는다.
“아마도 BBS PD로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시는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으로서의 문태준에게 BBS라는 일터는 중요한 ‘서론’이었으며, 그 속에서의 하루는 깊은 ‘본론’이었으며, 쌓여가는 세월은 단단한 ‘결론’이 되었다. 문태준은 그렇게 매일매일 부처님과 가까워졌다. 그렇게 부처님과 가까워지는 문태준이 시를 쓴다는 것은 부처님의 그늘을 넓히는 일이 되었다.

#선적인 영감들, 기웃거리지 않을 시간들
“최근에 쓰고 있는 시는 또 한 번 다른 무늬를 보이는 것 같아요. 서사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문득 일어나는 순간의 생각들, 깨침들, 문자 뒤에 있는 것들이 문장의 가운데에 서는 것 같아요.”
문태준은 그동안 불교를 넓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왔다. 이제 세월이라 부를 수 있는 문태준의 시간 속에는 선(禪)적인 영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 작가가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면서 많은 스님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또 한 번의 넓힘과 깊어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스님들과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깊은 정서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지식들의 선적인 시들이 고향의 비처럼, 산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시인 문태준은 선사들의 선시들 속에서 또 다른 ‘시’를 보기 시작했다. 시인의 눈에 보이는 새로운 시였다. 새로운 시를 이야기하는 시인의 눈은 벌써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두 번 다시 기웃거림 없이 오래 그리고 조용히 정진하고 싶다”
문태준이 말하는 앞으로의 계획이다. 문태준의 계획은 지난해 12월 입적한 적명 스님이 생전에 남긴 말씀이다. 유고집에 옮겨 모신 스님의 문장을 문태준이 다시 가슴에 옮겨 심었다. 이제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문태준, 그에게는 오래오래 조용히 걸어갈 일만 남았다. 그의 기웃거림 없는 시를 기다린다.

2009년 한·러 문학인의 만남에 참석한 문태준 시인(우측 3번째).

 

문태준의 시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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