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외환위기와 코로나

위기, 끝없는 위험으로 몰아갈지 기회로 만들지는 우리 몫.

변종 바이러스 코로나19로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피해가 크다. 외신은 우리나라 피해가 그토록 크게 두드러진 까닭이 높은 의료수준에 행정이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도두본다. 고마운 일이다. 어려운 가운데 마음 놓인다. 그렇다고 고통과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다. 여느 사람들도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바이러스가 옮을까 봐 걱정스러움을 넘어 생계가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 사태가 언제 가라앉을지 몰라 두렵다.

코로나 감염 대중 두려움
스스로를 죽이는 기제 돼
어떤 요소 재난 원인인지
살피고 작은 것에 기쁨을

병균만이 아니라 두려움도 전염 된다

법정 스님은 외환위기를 맞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은 무서운 대상보다는 마음 작용에 따라 일어난다,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면 무서움을 느낀다, 사람이 만든 도시는 갑자기 돌변해서 무섭다, 사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도 전염된다고 말씀한다.

“한 순례자가 순례길에서 흑사병(페스트)과 마주치자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흑사병은 바그다드로 5천 명을 죽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며칠 뒤 순례자는 되돌아오는 흑사병을 보고 따졌다. 너는 내게 5천 명을 죽이러 간다고 했는데, 어째서 애먼 사람을 3만 명이나 죽였느냐고. 흑사병은 ‘나는 내가 말한 대로 5천 명만 죽였소.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스스로가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스승은 이어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 초대를 받아 우리 앞에 온 것이지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잘못 길든 생활 습관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씀한다. 아울러 걱정에 빠진 사람은 근심거리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희망에 넘치고 신념에 찬 마음은 희망과 신념에 찬 우주 기운을 끌어들인다,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위기인 것은 맞지만, 위기가 끝은 아니잖아요.”

대구 시민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닥친 위기는 비껴갈 수 없다. 그러나 위기를 끝없는 위험으로 몰아넣을지 기회로 만들지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스승은 또 안으로 자율성을 잃으면 바깥에서 제재하는 것이 우주 흐름이다, 현실이 곧 우리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오늘과 같은 시련이 없다면 우리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할 때 우리와 후손들이 건전하게 살아가려면 마땅히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 말씀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가장 크게 잃은 것은 건강과 목숨 그리고 생계를 잇는 일이다. 숨을 거둔 분들에게 애도를, 건강을 잃은 분들에게는 빠른 회복을 빈다. 그리고 잃은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우리’를 이루는 마음이다. 두려움에 떠는 시민은 안중에도 없이 제 잇속만 챙기는 사재기로 하루에 1,000만 장이 넘게 만든다는 마스크가 동이나 돈을 들고도 살 수가 없다니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스승은 “한 마음 밝게 먹으면 밝은 세상이 열리고, 한 생각 어둡게 몰고 가면 끝없는 구렁으로 떨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고마운 ‘다리’도 놓여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함정’도 입을 벌리고 있다. 온갖 비극 씨앗은, 눈앞에 놓인 일에만 생각이 콕 박혀서 한 생각 어둡게 먹기 시작한 데서 싹 튼다. 속지 말 일”이라고 하셨다.

이 북새판에 얻은 것도 적지 않다. “도와달라”란 한 마디에 1,000명 가까운 의료진들이 달려가고, 손님이 없어 밥집에 쌓여가는 음식 재료를 팔아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며, 손님이 오지 않아 텅 빈 가게에 앉아 있는 사람들 처지를 헤아려 집세를 내려주는 이들도 있다. 메마른 줄 알았던 땅에 인정이 되살아난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이 풀이한 〈보왕삼매론〉에서 몇 꼭지 뽑아 간추린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은 물질과 정신이 모여 이룬 유기체이기에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앓을 때 병이 주는 뜻을 터득하라. 튼튼했을 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앓으면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웃에게 고마움도 느껴야 하고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인간관계는 어떠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고 앓으며 새로운 눈을 뜨라. 이 몸이 늘 튼튼하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은 주어진 건강을 쓸모없는 곳에 쏟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몸에 든 병은 약으로 다스릴 수 있으나 정신에 드는 병은 약으로써 다스리지 못한다. 보살은 자비심에서 앓지만, 중생은 업(습관) 탓에 앓는다. 업이란 하루하루 익히는 생활 양식이다. 생각이나 음식을 비롯한 버릇이 건강도 병도 만든다.”

어떤 요소가 이 재난을 불러왔는지 새겨봐야 한다는 말씀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다면 중생 앓이를 벗어나 보살 앓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집안이든 개개인이든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으면 잘난 체하고 남이 어려운 줄 모른다. 근심거리를 회피하지 말고 숙제로 생각하라. 어려움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말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창의력, 의지력을 찾으라는 소식으로 새길 수 있다면 살아갈 만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

걱정과 어려움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힘을 갖추라는 말씀 바탕에서 우리가 어떤 결을 이뤄갈 수 있을지 새겨볼 일이다.

일을 계획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이뤄지면 쉽게 무너진다. 부실 공사라는 게 뭔가? 제대로 하지 않아 너무 쉽게 이루었기에 쉽게 무너지는 거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어려운 일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때그때 면역을 갖추어야 한다. 일이 쉽게 되길 바라지 마라. 뜸을 들여야 한다. 많은 세월을 두고 기량이 커지고 그런 도량을 맡을 만한 자질이 갖춰진다. 아직은 내 그릇이 그런 도량을 당해낼 만한 마련이 되어 있지 않은데 무슨 일이 뜻대로 된다면 교만해지고 안이해진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기보다 차근차근 제대로 풀어나가며 어떤 일이라도 견디고 아우를 수 있는 품을 키워야 한다.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지 말라

“오늘날 우리는 그저 입만 벌리면 경제 타령이다. 그러나 우리 삶은 경제만이 다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에 넘치는 과소비를 하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찍이 우리 그릇은 만들어놓지 않고 자꾸 욕심껏 뭘 담기만 하려고 했던 과보다. 그래서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하셨다.”

스승은 오늘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 마음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이다,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 놓인 이해관계에 매달리지 말고 덕을 길러야 한다, 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꽃씨를 지니고 있다, 씨앗이 움트려면 흙 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극락도 지옥도 아닌 사바세계, 참고 견딜만한 세상이라는데 살아가는 묘미가 있다며 일깨운다.

제 잇속 차리려고 마스크를 사재기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흔드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기업 경영자와 나라 살림꾼, 정당 살림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참사가 벌어졌을 때 스승은 “수많은 생명을 싣고 나르는 이들은 운행 기술뿐 아니라 정신 훈련도 함께하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에 부닥칠지 알 수 없어 높은 주의력과 순간 대처능력이 몸에 그림자처럼 따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력을 기르는 데는 명상이 지름길이다.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이나 조직을 아우르는 책임자들에게는 명상 훈련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난기류로 공기가 희박해져 비행하던 항공기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순간 동요를 일으키는 에어 포켓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명상하라. 그 힘으로 삶을 다지라”하고 말씀했다.

아울러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고, 낡은 문이 닫히면 새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오늘 겪는 어려움을 재충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무한한 우리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며 북돋웠다.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우리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라고 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세상을 잃을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만다.

코로나가 저토록 퍼진 데에는 빨라진 속도와 우리가 그토록 키우려고 몸부림쳐온 경제 탓이 크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을 겪은 김에 편리함을 좇는 데서 벗어나 불편을 기꺼이 견디도록 탈바꿈해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경제를 키우려는 데서 벗어나 덜 쓰고 덜 버리며, 있는 것을 고쳐 쓰고 살려 쓰는 버릇을 들여가며 긴 호흡으로 느릿느릿 살아야 한다. 이것이 스승이 오래도록 외쳐온 작고 적은 것에 기꺼워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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