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교 민주주의

부처님은 출가자가 돈을 받아서도 안되고 만져서도 안되고 심지어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도 안된다고 엄격하게 규율하셨다. 여기서 돈이란 금, 은 같은 보석도 포함한다. 부처님은 재가자의 경우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지만 출가자에게는 이처럼 매우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셨다. 돈, 금, 은 등은 재물 중에서도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금과 은은 화폐나 마찬가지 기능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돈에 대한 금지조항이라 볼 수 있다. 화폐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극대화된다. 다른 재물과 다르다.

재물에 대한 금지 조항
교단 초기분열 초래해
만장일치 어려움 반증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음식, 옷 등 생활 필수품을 제공하므로 출가자는 돈이나 금, 은 등이 필요하지 않다. 경전에는 돈, 금, 은이 길에 떨어져 있으면 출가자가 주워서는 안되고 ‘정인’이라는 재가자를 시켜 줍도록 설해져 있다. 정인은 사찰의 업무를 수행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종무소 직원과 유사하다. 정인은 돈, 금, 은을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출가자는 돈, 금, 은 등을 만져서도 받아서도 안된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100년쯤 지났을 때까지도 교단은 하나였다. 교단 내에는 진보적 생각을 가진 출가자와 보수적 생각을 가진 출가자가 있었다. 특히 바이살리라는 대도시에서 활동했던 진보적인 출가자 집단은 불교가 새로운 사조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진보적인 출가자와 보수적인 출가자의 견해는 필연적으로 충돌하였고 10개의 조항에 관한 다툼이 생겼다. 이중 가장 중요한 다툼이 금과 은에 대한 다툼이었다. 바이살리는 상공업이 발달한 당시의 대도시 중 하나였으므로 특히 돈에 대하여 진보적인 시각이 나올 수 있는 환경 하에 있었다. 진보적인 출가자는 부처님 뜻을 어기고 금과 은을 직접 받더라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의식(금은정)을 한 뒤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재가자로 부터 금과 은을 받았다.

보수적인 출가자는 금과 은을 받는 행위는 물에 씻건 씻지 않건 부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교단의 의견은 둘로 갈리게 되며 논란이 된 10개 조항 하나 하나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회합이 결성된다. 그 결과 한 조항을 제외하고는 9개 조항에서 부처님 뜻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더 많았다. 즉 금은정 조항도 부처님 뜻에 어긋난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하지만 진보적인 출가자들이 이에 승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회합을 열어 10개 조항이 부처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론 짓는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출가자는 주로 나이 든 수행자였으며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출가자는 주로 젊은 수행자였다고 한다.

불교는 원래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았던 인간이 사유재산이 생긴 후 다툼이 생겼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재물이야 말로 인간 다툼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부처님 사후 하나였던 불교교단이 둘로 분열되고 다시 수많은 지파로 분열된 사건의 단초도 금은정이라는 재물에 관련된 조항 때문이었다. 물론 북전 기록에 의하면 근본 분열의 이유가 아라한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남전 기록에 의하면 근본 분열의 가장 큰 쟁점은 금은정이라는 조항이었다. 재물이야 말로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를 해치고 형제 자매 사이를 멀게 하며 친구를 배반하게 만든다. 부처님이 경전에서 재물에 관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경전은 생로병사의 고통 중 죽음으로 인한 고통보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고 설하니 재물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야기한다. 자유롭게 살던 인간이 스스로 제약을 가하면서 왕을 세운 것도 재물 때문이요, 불교 교단이 둘로 분열된 것도 재물 때문이니 경제와 정치는 역시 분리될 수 없는가보다.

근본 분열의 과정에서 교단은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일종의 투표를 했다. 말하자면 다수결에 의해 10개 조항에 대한 개별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다수결에 승복하지 못한 진보적 출가자가 대중부를 결성하고 나머지 보수적 출가자는 상좌부를 결성하여 교단은 부처님 사후 100년만에 둘로 분열된다.

원래 승가의 의사결정은 갈마(哲磨)에서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 화합이라는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성립하지 않는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다. 승가의 중요 사항에 대해 부처님은 독재를 행사하지 않으셨고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친 합의에 따랐다. 물론 부처님의 리더십에 의해 교단이 운영되었지만 실질적인 수많은 내용은 승가의 만장일치 합의에 의했다. 오늘날 한국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중공사는 바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연유한다.

만장일치는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사소한 문제나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만장일치가 쉽지만 중요한 문제, 이익이 많이 걸린 문제는 만장일치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를 구축했다. 어떻게 해서든 만장일치가 되도록 하려는 부처님의 노심초사가 엿보이는 제도이다.

만장일치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을 따르거나 다수의견이 소수의견을 수용해야 한다. 소수가 끝내 고집을 부릴 때 다수가 양보하지 않으면 만장일치는 불가능하다. 만약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면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가 된다. 소수가 다수를 따르지 않거나 다수가 소수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각각 조금씩 양보해야 만장일치가 된다. 이렇게 힘든 만장일치는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승가의 의사결정은 전원 참석, 만장 일치가 원칙이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 다수결에 의해 표결하도록 허용되었다. 그러나 승가의 분열이 예상되는 안건은 표결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금은정 논쟁은 표결해서는 안되는 안건이었다. 하지만 결국 표결로 갔다. 금은정에 관한 논쟁에서 만장일치를 도출했다면 교단은 분열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장일치는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과정이지만 화합을 위해서는 최고의 수단이다. 투표를 하면 대결이나 마찬가지다. 회의 석상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논쟁하다가 끝내 투표에 이르게 되면 전운이 가득하다. 투표 결과가 발표될 때 참석자의 표정을 보라. 이기는 사람의 의기양양과 기쁨, 지는 사람의 좌절과 분노가 교차하면서 결론 아닌 결론이 내려진다. 결론은 분열이라는 씨앗을 안고 임시봉합될 뿐이다. 다음 대결에서도 승리하자는 다짐과 다음 대결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가 이미 다가올 싸움을 예견한다.

‘사분율(四分律)’에 보면 부처님은 ‘만일 대중이 화합하거든 꼭 같이 나누어 주고, 화합하지 않거든 반만 주고, 더 화합하지 않거든 3분의 1만 주라.’라고 규정하셨다. 화합을 얼마나 중시하셨는지 알 수 있다. 불교의 연기법은 우리 모두가 독자적인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 의해 임시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구태여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는 설명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연기법에 의해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 곤충, 벌레, 심지어 세상의 물, 땅, 불, 바람과도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화합은 우리 모두의 이익이며 갈등은 우리 모두의 손해다. 우리는 불자가 아니어도 상생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사용한다. 상생이란 화합과 공존을 의미하며 합의야 말로 상생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장일치는 획일적인 결정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올만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의견이 대화를 거치면서 하나로 모아질 때 만장일치가 실현된다. 처음부터 항상 의견이 하나라면 획일적 사고와 집단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에는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합의에 도달한다면 획일적 사고도 아니고 집단 사고도 아니다.

정치학 교과서를 보면 바람직한 정치에 대한 내용이 가득하다. 불교의 정치사상이 오늘날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과 동일하다면 구태여 부처님의 정치사상을 논할 이득이 없다. 그렇다고 불교의 정치사상이 100%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과 정반대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같음에서 다름의 이익을 보고 다름에서 같음의 이익을 본다.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과 부합하는 불교의 정치사상에서 우리는 불교의 보편적 지혜를 보고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과 차별화가 되는 불교의 정치사상에서 우리는 차별화된 지혜를 본다. 불교의 정치사상을 통해서 누구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목표를 재확인한다. 불교의 정치사상을 통해서 불교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지혜를 확인한다.

어떤 정치학 교과서도 자유, 평등, 민주를 부인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도 자유, 평등, 민주를 이야기하고 자본주의 국가도 자유, 평등, 민주를 이야기한다. 선진국도 자유, 평등, 민주를 이야기하며 후진국도 자유, 평등, 민주를 부르짖는다. 독재자가 내세우는 가치도 자유, 평등, 민주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겉이 아닌 실질은 제 각각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불교도 자유, 평등, 민주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불교 민주주의는 합의 민주주의, 화합 민주주의다. 승자는 소수의 의견을 수용하고, 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끝내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면 양쪽 모두 조금씩 양보하는 민주주의가 불교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다.

현실정치에서 만장일치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사결정 방법이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2/3 찬성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만장일치는 아니다. 온 나라가 선거가 되면 분열의 몸살을 앓는다.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쪽은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그 여파가 크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과거의 승가처럼 만장일치로 리더를 선출할 수는 없다. 불교의 합의 민주주의, 화합 민주주의를 어떻게 현실에 지혜롭게 적용할 것인가는 뒤에 다시 논의해야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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