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공포극복

요즈음 코로나 사태로 온 나라가 긴장 상태군요. 위생 관리에 철저해야 할 때입니다. 명상의 의학적 효과는 면역력을 키웁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대부분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솔 등)이 과다 분비되어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걸리기 쉬운 반면, 명상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T임파구가 증가되는 등 면역력을 증가시키지요. 이런 상황에서 명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많습니다.

호흡 통해 마음 관조
사회적 공포 직관해
질환 극복 지혜 얻어

오늘 아침 어떻게 일어나셨나요? 그냥 눈을 뜨셨다구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었다구요. 눈뜨기 전 꿈을 생각하고 있었나요. 꿈꾸다가 깼나요?

예. 모두 좋습니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살펴보아야 할 게 있습니다. 잠에서 깸, 호흡을 살펴봄, 몸을 살펴봄(상쾌함 또는 찌부둥함), 기분을 느껴 봄(기분이 좋음 좋지 않음 기분이 좋지도 싫지도 않음), 눈을 뜸, 일어나야겠다는 마음(의도)과 함께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남,

일어나는 과정도 옆으로 돌아 손을 짚음, 몸을 일으킴, 일어나 앉음,

일어서서 걸을 때도 걸으려 함, 한 발 한 발 바닥에 닿는 느낌을 느끼며 걷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하나 하나의 행동을 하면 훌륭한 명상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한 입 넣고 몇 번 씹는지 헤아리고 죽이 되어 삼키는 과정을 지켜본다면 식사 명상이 됩니다. 이렇게 하루를 수시로 몸과 마음의 과정을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면 일상 명상이 됩니다.

5-2 깨어있음은 빛 속에 있음이고 깨어있지 못함은 어둠 속에 잠겨 있음입니다.

명상의 제일 요목은 깨어있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지불식간에 행동하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상념하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며 사는 부분이 90%를 넘는다고 합니다.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지요. 내 몸, 내 마음이라 믿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어찌 90%만 되겠습니까? 우리의 일과는 거의 밖을 바라보거나 자동적으로 재잘거리는 상념 속에서 지냅니다. 바른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도록 이끕니다. 깨어있지 못한 삶은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걷는 것과 같지요. 장애물에 부딪치거나 구덩이(함정)에 빠지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날카로운 물건에 찔려 상처받을 위험이 높습니다.

깨어있음은 자신의 행동(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을 자각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행동의 의미까지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밖으로만 향하던 주의를 돌리어 자신을 돌아봄(회광반조)은 명상의 핵심입니다.

5-3 호흡과 걸음에 주의를 기울여 자신을 관찰의 대상으로 올려놓는 순간 그동안 어둠에 잠겼던 나의 전모가 희뿌옇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순간순간 역동적으로 변하는 마음의 상태, 그 변화과정을 잠시라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선 호흡부터 들여다 보고, 몸의 감각을 느껴보고, 기분과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생각을 알아차리는 작업은, 마치 어린 아기를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살피는 엄마처럼,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내팽개쳐둔 자신을 돌봄, 지금 바로 이 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은 명상의 핵심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음이고 이래야 된다 저래서는 안된다 조작하지 않음이며 잘났다 못났다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수용하고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거칠면 거친 대로 가쁘면 가쁜 대로 그냥 놔두고 지켜봄이 중요합니다.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감정 상태도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냥 바라보는 것이지요.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호흡은 어느새 자리를 잡게 되고 생각도 억지로 없애려들지 않아도 꼬리를 접게 됩니다. 격앙된 감정이나 침체된 감정도 바로 진정되지 않지만 그 또한 따뜻하게 품어 오래오래 지켜보면 앙앙 울어대던 어린 아이가 잠드는 것처럼 고요해지기 시작합니다

명상의 요체는 있는 그대로 바라봄(여실지견)입니다.

깨어있음은 알아차림을 낳고

알아차림은 올바른 이해를 낳고

올바른 이해는 지혜를 낳고

올바른 지혜는 궁극적 행복과 자유를 낳습니다

5-4 오늘은 고요하게 앉는 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과정을 온 마음 다하여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것은 몸에 배기 전에는 쉽지 않습니다만, 의도와 함께 호흡을 주시하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것은 짬짬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세수를 하기 전후 잠깐 틈(2-3분)을 내어 앉아 보겠습니다. (아침에 바쁘다구요? 자기 전도 좋습니다, 웃음)

앉는 법은 우선 반듯이 허리를 펴고 앉는 게 중요합니다. 발은 평좌나 반가부좌 가운데 편한 자셀 취하시고, 처음은 힘드시면 의자나 소파에 앉아서 하셔도 됩니다. 손바닥을 펴서 두 손을 모아 자연스레 배 아래로 내려 놓으십시오. 두 엄지가 마주 닿도록 세우시는 게 좋습니다. 두손 모음이 편치 않다면 양 무릎위에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놓습니다. 목은 반듯이 세우되 턱을 지긋이 당겨 시선이 바닥 50cm 정도 앞을 내려보도록 합니다. 눈의 긴장을 풀고 살며시 내려 감습니다. 이 때 알아차리기를 하면서 서서히 눈꺼풀을 내려놓으세요. 눈 감으면 바로 존다구요? 괜찮습니다(웃음). 눈을 감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시선을 50cm 앞에 내리깔면 눈을 반쯤 감게 되군요.

이제 온 몸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긴장을 풉니다. 어깨와 목에 힘을 주어 위로 최대한 끌어올렸다가 턱 내려놓습니다. 고요히 앉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들어간 부위가 없나 살펴봅니다. 대개 목과 어깨, 턱, 등 부위에 긴장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긴장을 풀고 되도록 편히 앉되 허리는 구부리지 않도록 합니다. .

이제 심호흡을 3-4차례 해보십니다. 호흡으로 주의를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산란할 경우 1분 정도 심호흡을 해보세요. 내쉬는 숨에 몸의 긴장을 이완하는 것도 잊지 마셔요. 이제 자연스런 호흡으로 놔두시고 바라봅니다.

몸도 마음도 부드럽게, 편하게 그냥 바라보세요.

몸의 감각, 마음의 상태. 기분과 감정, 생각 등을 일어나는 그대로 실시간으로 바라보시되 고요히 예술품 감상하듯이 바라보십시오.

이제 고요히 머무르면서 몸이 바닥에 닿는 느낌에 주목하세요.

몸 주변의 공간도 느껴봅니다. 그 공간이 주변으로 무한히 펼쳐져 있음도 느껴보세요.

마칠 때는 마치겠다는 의도를 알아차린 후 서서히 자세를 풀고 일어납니다.

일어날 때도 어떤 동작으로 일어나게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5-5 명상법을 복습하셨으니 다시 마음을 들여다 볼 차례입니다. 지난 시간에 탓하는 마음을 살펴보았듯이 오늘은 눈치 보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눈치 보기,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이 적부터 생긴 우리의 해묵은 버릇입니다. 그런데 눈치 보기가 심하면 병이 됩니다. 대인 공포증 사회 공포증 적면 공포증 같은.

탓하기와 눈치 보기는 서로 닮은 형제 같습니다. 공통점은 무엇일까요?(잠시 숙고)

예, 모두 고통을 피하려는 자기 방어책이군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미리 걱정합니다.

사실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그 사람 몫인데도 내 것으로 삼아 걱정합니다. 이 걱정이 커지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듯이 병이 되고 말지요.

호랑이 이야기를 또 하나 해볼까요.

호랑이를 그리던 화가가 갑자기 뛰쳐 나오면서 도망갑니다. 친구가 왜 그러냐 묻자 뒤를 손가락질하며 호랑이가 쫓아온다는 겁니다. 친구가 뒤를 보니 쫓아오는 호랑이는 없고 호랑이 그림만 있습니다. 워낙 생생히 잘 그려 마치 살아있는 호랑이같았지요.

우리의 상상이 정도가 지나치면 현실이 됩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곤 하지요. 그러면 그 경험이 강화되어 나중엔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놀라고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며 그 상황을 피하려 도망칩니다.

이 배경에는 모두 관심받고자 인정받고자 사랑받고자 갈구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거부 당할까봐 부들부들 떠는 아이는 힘 센 가해자에게 매달리고 굴종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어 사랑을 잃을까 봐 대들지도 못합니다. 아니오(No)라고 자기 의사를 표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침묵으로 의사 표시를 해본다지만 상대는 오히려 힘없음을 확인하고 더욱 무안 주고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합니다. 결국 힘센 가해자의 무리로 속하거나 따돌림 당하여 고립되는 삶이 반복됩니다.

이런 애증의 지배-종속 관계는 집단에도 국가간에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5-6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선 상처 받은 아이를 안아주어야겠군요.

눈치보고 있음을 먼저 바라보고 눈치보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살펴보고 그 아픔을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그 때 그 아이가 되어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그때는 표현못한 아픔을, 억울함을 분노를 표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숨 죽이고 참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합니다. 탓하고 눈치보며 자신을 보호하던 해묵은 습관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에고가 그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노라면 에고의 쓸모없는 애씀이 연민으로 다가옵니다. 더 이상 에고를 보호할 필요가 없으므로 에너지 소모도 없고 있는 그대로 좋고 꾸미지 않으니 자연으로 살고 자연과 하나 되고 이 세상 모두와 연결된 소통의 삶이 되는 거지요. 삶을 떠난 깨달음은 없습니다. 어떤 실패도 실패가 아니고 어떤 고통도 고통이 아닌 것은 무언가 깨우쳐주고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스승입니다. 고성제(苦聖諦)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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