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삼구(三句)와 삼요(三要)

법좌에 오르니 어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 1구입니까?”

임제가 말했다.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으면 붉은 점획이 숨어버리니 주인과 손님이 나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제 2구입니까?”

임제가 말했다.

“묘해(妙解)가 어찌 무착(無着)의 물음을 용납하리오. 하지만 방편으로는 어찌 번뇌의 흐름을 끊은 근기를 외면하리오.”

“어떤 것이 제 3구입니까?”

임제가 말했다.

“무대 위에 노는 꼭두각시를 보아라.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이 모두 무대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이 하는 짓이니라.”

삼구(三句)는 선종에서 선의 요체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써온 용어다. 임제뿐만 아니라 여러 선사들이 선(禪) 수행에서 넘어야 할 관문처럼 이 삼구를 제시한 이들이 많았다. 각 선사들이 자신의 종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라 할 수 있는데, 1구소식이 으뜸이고 2구는 1구에 못 미치는 경지이고 3구는 아직 선수행의 올바른 길에 들어서지 못한 단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구(句)라는 말은 간화선 수행에서 많이 써온 말로 사구(死句)니 활구(活句)니 하는 말로 쓰다가 1구니 2구니 3구니 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이 밖에도 향상일구(向上一句)라는 말도 특별히 써왔다. 말에 죽은 말이 있고 살아 있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말이 언어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죽은 말(死句), 말이 언어적인 개념을 뛰어넘은 것을 활구(活句)라 하였다. 동산수초(洞山守初ㆍ910~990)선사가 “말 중에 말이 있으면 죽은 말이요, 말 중에 말이 없으면 살아 있는 말”(語中有語 名爲死句 語中無語 名爲活句)”이라 하였다.

어느 스님이 임제에게 3구의 소식을 차례로 물었다. 선 수행에 있어서 가장 으뜸가는 제1의 경지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 말이다.

대답이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으면 도장에 새겨진 글에 묻은 인주의 붉은 획이 숨어버려 찍혀진 자국이 안 나타난다는 말이다. 주인과 손님, 다시 말해 주객이 나눠지지 않는, 말 이전, 혹은 한 생각 이전의 소식이 일구라는 것이다. 삼요(三要)란 임제가 학인을 시험할 때 제시해 쓰던 특수용어로 삼현(三玄)과 짝을 이루어 임제의 종지를 선양하던 수단이 되었던 말이다.

제 2구의 대답은 문수보살과 무착선사의 일화를 의지해 말하고 있다. 무착선사가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갔을 때 오대산 입구에서 한 초라한 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일화다.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방에서 옵니다.”

“남방의 불법은 어떤가?”

“말세의 비구들이 계율이나 조금 지키며 삽니다.”

“대중들은 얼마나 되는가?”

“혹 3백 명씩, 혹 5백 명씩 모여 삽니다.”

무착이 문수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불법이 어떻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느니라.”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니라.”

문수가 무착에게 묻고 답한 것을 방편으로 무착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비록 문수가 근본지의 역할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후득지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3구의 이야기는 인형극 같은 것을 할 때 뒤에서 숨어 밀었다 당기는 사람에 의해 꼭두각시가 움직여지는 것처럼 3구에 경계에 떨어진 사람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이 삼구의 이야기를 각각 조사선, 여래선, 의리선의 경지라고 보기도 하고 1구, 2구를 경절문(경절문(徑截門), 원돈문(圓頓門)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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