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病苦 치유”… 약사여래에 기원

중생 질병 치료하는 약사여래
12가지 대원엔 대비심이 담겨
돈황석굴 약사여래 도상 ‘最古’
韓 8세기부터 관련 성보 확인
코로나19, 佛心으로 극복 하길

돈황 막고굴 322굴에 그려진 ‘약사여래도’와 돈황 막고굴 제417굴 서벽 천정 하부에 그려진 ‘약사경변상도’의 모습.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병고를 치유해주는 여래이다.

천연두신이 부처님의 품에서는 아이를 보호하는 귀자모신이 되었듯이, 현재 우리를 위협하는 코로나19 역시 불자들이 불심으로 슬기롭게 떨쳐내기를 바라며 약사여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주변에 아픈 병자가 있거나 가족의 무병장수하기를 바랄 때 약사여래(藥師如來, bhaiajya-guru, 의왕불, 대의왕불, 의왕선서, 약사유리광불, 약사유리광여래 등)가 계시는 약사전(藥師殿)을 찾아 기도를 드린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서 약사부처님께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의 무병장수와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다. 

약사여래는 동방 정유리 세계의 교주로서 12가지의 뜻을 세우시고,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줄 뿐만 아니라 여러 고통에서도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행을 실천하신 부처님이시다. 약사여래의 12가지 큰 서원(大願)은 다음과 같다. 

① 광명조요(光明照曜):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가득하게 하려는 원 
② 신여유리(身如瑠璃):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자신의 몸을 유리와 같이 청정하게 하려는 원    ③ 수용무진(受用無盡): 중생으로 하여금 욕망에 만족하여 부족하지 않게 하려는 원 
④ 대승안립(大乘安立): 다른 도를 따르는 중생들을 대승으로 이끌어 안락하게 하려는 원     ⑤ 삼취구정(三聚具定):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한 업을 지어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게 하려는 원 
⑥ 제근구족(諸根具足): 불구인 중생들이 모두 완전한 신체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원 
⑦ 중환실제(衆患悉除):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려는 원 
⑧ 전녀성남(轉女成男): 모든 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남자가 되게 하려는 원 
⑨ 안립정견(安立正見): 마귀, 외도의 나쁜 소견을 없애고 부처님의 바른 지혜로 포섭하려는 원 
⑩ 계박해탈(繫縛解脫):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고난으로부터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 
⑪ 기근안락(饑饉安樂): 일체중생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려는 원 
⑫ 의복엄구(衣服嚴具):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훌륭한 옷을 갖게 하려는 원

속인인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덟 번째 원을 제외한 나머지 열 한 개의 원은 현세의 이익과 구복을 설하고 있어,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양한 바램을 이루어주실 수 있는 최고의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약사여래와 관련된 경전으로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현존하고 있으며, 네 종류의 한역본이 있다. 제일 먼저 한역된 동진(東晋, 317~420) 백시이밀다라(帛尸梨密多羅)가 번역한 〈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약사경〉으로 언급되는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은 수 달마급다(達磨纘多)가 616년에 동경의 상림원(上林園)에서 번역한 것으로 줄여서 〈약사본원경〉이라 하고 별칭으로 〈약사여래본원공덕경〉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당나라 때 현장(玄唆)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이 있다. 또한 당나라 때 의정(義淨)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 두 권은 경전의 앞부분에 여섯 부처를 언급하고, 뒷부분에 약사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칠불약사경〉이라고도 한다. 

이들 경전들의 공통된 내용은 약사여래의 본원과 그 공덕을 이야기한 것으로, 약사여래를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그 명호를 외우면 12대원을 달성하여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복을 받게 된다고 설한다.

이처럼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현전하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약사여래를 그린 불화나 조각한 상을 찾을 수 없다. 현존 가장 이른 약사여래의 모습은 수대(隋代, 581~619)에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의 302굴과 305굴에 그려진 벽화로서, 왼손에 약이 담긴 그릇을 상징하는 약함을 들고 있다. 이후 초당(初唐, 618~712)시기 돈황 막고굴 322굴 입상의 약사여래는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오른손에는 육환의 석장을 들고 있다.

대략 7세기 서역의 관문인 돈황지역에 도해된 약사여래는 약함과 석장을 들고 있으며, 8세기에는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둥근 구슬인 보주(寶珠)를 들고 서 있는 약사여래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8세기 이후에는 입상의 약사여래와 함께 좌상의 약사여래도 많이 조성되었으며, 좌상의 약사여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나 시무외인(施無畏印), 설법인(說法印)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8세기 통일신라시기의 약사여래가 가장 이른 사례에 해당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약사금동불과 굴불사지의 석조약사여래처럼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경우와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출토의 금동사리함(863년, 경문왕3)의 약사여래처럼 약함이 지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 보면 7~8세기 한국과 중국의 약사여래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즉 이른 시기 서역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약사여래의 공통점은 약함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약함은 여러 부처님들 중에서 약사여래를 구분하는 뚜렷한 도상적 특징이 될 것이며, 학생들이 가장 자신있게 식별하는 수단이 된다. 

약사여래관련 어떤 경전에서도 약사여래가 약함을 지물로 갖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으나, 현존하는 불화나 조각을 통해서 볼 때 약사여래관련 경전이 한역되었을 초기부터 약함이 지물로 정해져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본다.

약사여래에 대한 민간의 신앙이나 세속화에 관해서 살펴보면 당 황실은 안사의 난(755년) 이후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 2~3일에 걸쳐서 약사도량을 열었다고 한다. 법회 때 기악과 경전으로 약사여래를 찬하며, 서역에서 유입되었다는 일곱 개의 수레바퀴가 쌓인 모양의 윤등(輪燈)에 등불을 밝혔다는 기록이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있다. 이후 음력 정월 대보름 상원절(上元節) 행사 때에 민간에서도 수레바퀴 모양의 등륜(혹은 윤등)에 불을 밝히고 구복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민간의 풍습은 약사여래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불교 행사가 일반에 전해져 세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돈황 벽화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수대 말기에 그려진 돈황 막고굴 417굴의 서벽 벽화는 〈약사여래염송의궤(藥師如來念誦儀軌)〉의 “만약 어떤 사람이 죄가 많거나 부녀자가 화를 복으로 바꾸길 원하면 가르침에 의거하여, 약사상 1구를 만들고, 약사경 1권을 베껴쓰며, 번 49개를 만들고, 7층 등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어 상 앞에 안치한다”는 내용을 도해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약사여래께 윤등과 번을 공양하는 벽화가 돈황 막고굴에서 다수 확인되어, 약사여래의 유행이 제를 행하는 절차와 법칙이 기록된 의궤까지 만들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중국과 한국의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쥐불놀이는 소나무나 쑥방망이에 불을 붙여 빙빙돌리다가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질러서 마른 풀을 태우는 놀이이다. 쥐불놀이는 농경사회에서 쥐를 쫓아내고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 등 모든 잡균들을 태워 없애며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행사이다. 수당대에 상월절에 〈약사경〉을 외우며 수레바퀴 모양의 윤등으로 정월 대보름행사를 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액을 멸하고 복을 구하는 쥐불놀이의 원형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최근 코로나19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약사여래본원경〉에 “기원하고 공양하면 모든 원이 다 이루어진다. 병든 사람이 살기를 구하면 죽을 지경에서도 다시 살아나고, 왕은 재난을 물리치고,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 이것을 믿으면 온갖 괴이한 신의 부적이 소멸되고, 아홉 가지의 횡사를 일으키려는 묘한 술법이 없어졌다”라는 구절을 읊어본다. 약사부처님의 말씀처럼 현재 우리가 처한 질병을 소멸해 주시길 아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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