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본부를 찾지 않기 때문에 극난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갖은 각색으로 옮겨 가면서 나투어 가는데 마음 씀씀이를 내놓으라고 하신다면 아마 누구라도 못 내놓으실 겁니다. 내놓으실 수 없겠죠? 내놓을 수 없으면서도 다양하고 소소영영하게 씀씀이를 쓴다는 거, 그거 여러분 잘 아시죠? 우리 이 몸뚱이 하나하나가 혹성이라고 생각할 때, 이것이 혹성인데다가 기계적으로 돼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로 오는지 가는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거죠.

자갈밭이 닥친다, 가시밭길이 닥친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본부를 찾는 법입니다.


인간의 그 모든 기계적인 체가 생길 때에 바른팔에서 왼다리로, 왼팔에서 바른다리로 이렇게 꼬여서 삼등분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김생김이, 기계의 조직이 이렇게 세밀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왼쪽에서 바른쪽으로, 바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렇게 삼등분이 돼 있다는 그 사실도, 또는 상반신, 중반신, 하반신으로 친다면, 우리 몸뚱이도 한 혹성의 기계적인 자동 전자기나 다름없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무전통신기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이 머리에도, 즉 말하자면 “오관을 통해서”라고 얘기를 항상 했죠. 그런데 감각이니 지각이니 하는 문제도 바로 우리 두뇌에 기계적으로 돼 있다는 얘깁니다. 또는 무전통신기도 바로 양면에 맞달려 있다 이겁니다. 기계같이 그렇게 돼 있고 천체망원경도 바로 뒤쪽으로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탐지기나 컴퓨터나 역시 다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오관을 통해서 하달을 하는 게 아니라 본부로 전합니다. 일단은 본부로 전해서, 스스로서 자동적으로 전해서 본부에서 책정을 해야만이 바로 하달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치에서 우리가 하고 안 하고, 또 좋다 나쁘다 하는 그 책정을 결정짓는 데에서 오는 거고, 정맥 동맥이 스스로 돌아가는 자동 펌프는 그대로 연방 초(秒)에, 즉 어디고 하달이 되지 않는 데가 없고 전달이 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본래 우리가 살긴 살되 가정에서 무슨 ‘이런 일을 해야겠다, 이런 일은 한 달에 얼마씩 이렇게 든다, 이건 이렇게 해야겠다, 또 남편과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이렇게 이렇게 결정을 짓고 나가야겠다, 이래야 산다, 또는 이런 일을 해야 할 텐데, 이거는 어떻게 해야 옳을까’ 하고 서로 얘기하다 책정이 돼야만이 그것이 하달이 되는 겁니다, 모두가. 그리고 순수하게 이렇게 그냥 살아나갈 때는 그냥 자동기가 돌아가죠, 전달이 되고. 그래서 항상 그런 책정을 하고 안 하고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돼 있는 이 문제들을 지금 볼 때에, 아까도 오관을 통해서 그렇게 연락이 되고 그렇게 초에 한 번, 맥박 뛰는 데에, 한 번씩 딱 하는 데에 벌써 다 돈 거예요, 손끝 발끝까지. 그 얼마나 빠릅니까?

여러분이 그 묘한 물건을, 기계적인 묘한 물건을 여러분이 지니고 바로 그 장소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모르는 거죠. 그렇게 빠르고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그렇게 손끝 발끝을 하나 남김없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조직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몸의 조직체가 얼마나 생명들이 많고 얼마나 공장장들이 많은가? 만약에 세포의 조직 공장장이 있다면 근육 공장장이 있어요. 이 공장장으로 하여금 모든 하달이 되고 모든 전달이 되고 이렇게 되는 거죠. 아주 기묘하게요. 그리고 간장장, 쓸개장, 이자장, 소장, 대장, 직장 또는 콩팥장, 방광장, 이 등뼈의 우측장 또는 좌측장, 이 두뇌장…. 이 모두의 관할을 가지고 있는 이 장들이 밑에 하달을 해서 모두에게 전달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연쇄적으로 이렇게 자꾸 받아서 돌아가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수효가 얼마일까요? 아마도 이렇게 위에서 장으로 직장까지 내려가게끔 그 모든 운영을 하는 데는 이 생명체들이 근육, 세포, 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모두 작용을 해 주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물건들이 잘 소화를 시키고 잘 나올 수 있는 그런 문제가 돼 있음으로써 똥도 버릴 수가 없죠. 똥에도 생명이 있고 똥에도 세균이 있어서 이익을 발부해 주고 또 해로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익만 준다고 해서는 아니 되죠. 그러면 이것이 오관을 통해서 모두 들이고 내고 본부로 전해지되, 본부에서는 움쭉 안 해도 자동 전자기처럼 그냥 그 한생각이 바로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러면 기계적인 어떠한 물질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그렇게 묘하게 기계적으로 돼 있는 이 한 점의 기계가,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뜻은 무엇이냐? 묘하게 그렇게 생겼는데도 “아무것도 아니니라.” 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본부의 그 한 점의 마음이, 부동한 그 한 점이, 한 점이라고 세울 것도 없는 그 부동한 한 점이 모든 것을 책정하고…. 그런데 그 부동한 한 점이 여기에 나한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여러분에게 각각 다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그러면 인간에게만 그렇게 주어져 있느냐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큰 회사도 있고 작은 회사도 있고 방계 회사도 있고 뭐, 별의별 회사가 다 있습니다. 집안에서 쪼끄맣게 공장 하는 회사도 있고 물건을 해서 수출하는 회사도 있고, 여러 가지 회사가 있는 거를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내 몸뚱이 안에도 수많은 회사가 있다는 거.

우리가 지금 세계적으로 본대도 나라가 그렇게 있는가 하면 회사가 그렇게 있고 그런데, 연쇄적으로 크다 작다 이것뿐이지 그 구조는 똑같습니다. 또 한 점 마음의 부동한 그 자체, 하나도 없는 그 하나가 바로 우주를 삼킨다고 하는 그 뜻입니다. 그건 왜? 전체 그것은 같으니깐 말입니다, 크나 작으나. 작은 회사는 뭐, 이름이 다른가요? 예를 들어서 방편으로 이렇게 말을 한다면 큰 것도 회사고 작은 것도 회사다 이거야. 작은 나라도 나라는 나라고 큰 나라도 나라는 나라야. 그럼으로써 뭐든지, 미생물에서 점차적으로 진화돼서 나온 저런 생명들도 불성이 있는가 할 때 그것도 불성이 없는 게 없죠. 본래, 크나 작으나 생겼다 하면 불성이 있기 때문에 생긴 거니까.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근데 공장이 많습니다. 전체 본부에 대통령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있으면 대통령에 의해서 모든 부서에 하달이 되듯이 그렇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디 어느 공장에 불이 나서 죄 탄다 하면 본부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하지 않고 팔팔팔팔 뛴단 말입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못해. 거기서는 받질 못해, 전달을. 불이 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기 두뇌에 이 오관을 통해서 들기는 하는데 그게 직접 같이 돌아가질 않아.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이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거는 그대로 돌아가는데, 그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거를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것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것만 돌아간다 이겁니다. 그럼 불이 났으면 난 거야. 그 수습은 못 해. 그만큼 났으면, 타게 되면 타게 되는 거고 쪼금 타고 고만두게 되면 고만두는 거고, 그거는 거기에 의해서 그냥 해 나가는 거라, 공장장에 의해서. 본부를 거치지 않고 우리는 살거든. 본부를 거치지 않고들 모두 여러분은 산다 이겁니다. 본부의 결정도 없이 공장장 마음대로 한단 말입니다.

지금 그걸 비유해서 한번 볼까요? 공장 내에서 어떠한 수습을 하려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부를 통해서 정부에서 하달을 하게 되면 아주 금방 복구를 합니다. 또 금방 일들을 해내고, 전부 하달이 되고 말입니다. ‘영등포’ 하면 영등포로 말입니다. 이렇게 하달이 되는데, 여러분은 본부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극난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본부에서는 천체 모든 세계의 왕이, 이 몸뚱이가 세계라고 한다면 그 몸뚱이 세계의 왕이, 본부에다가 해서 본부에서 하달이 돼서 한다면 초도 안 걸려.

그런 놈의 거를 아이구! 여기 이 다리가 저리고 이게 마비가 되고 무슨 어디가, 간이 어떻고 무슨 소장이 어떻고 대장이 어떻고…. 아무리 그래 봤자야. 아니, 본부에다가 전달을 안 하고 어떻게 거길 다 해결을 하느냐 이거야.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나? 어떻게 해?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입장에 놓여 있는 거라. 내가 차라리 그 공장을 만들어 놓고 내가 해체하고 다른 공장을 또 만들고 이러는 것이 옮겨 가는 거라. 주인이, 본부가 없어지는 게 아냐. 그 생명들이 다 내 몸뚱이와 더불어 물질적인 것은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데 합쳐져서 본부에서 그냥 하나로 되는 거야. 그래서 하나로 됐다가 흩어져서 전부 공장을 세운다면 제가끔들 부서를 찾아 가지고 가는 거고.

그럼 이 몸뚱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번 그런 걸 거론해 봐요. 다른 데 황무지가 됐다, 물이 안 난다 그 모든 문제들이 어떠한 문젠가. 여기 처음에 이사 오니까 물이 여기 통 안 난대요. 물이 안 난다고 야단법석을 하고 집도 못 짓고 그래서 돈을 많이 들여서 관악산 그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크게 파 가지고선 이리로 조달을 하려니 무척 힘이 들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전부 상응할 수 있다면 정부의 하달을 받아서…,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왜 물이 없겠습니까? 여기에서도 가게 하고 저기에서도 가게 하고, 모두 줄이 있는데.

또 어디가 폐허가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런 대로 세계적으로 볼 때에 지금도 우리 인간들이 발 못 닿게 된 그런 지역이 많이 있지마는, 지금은 많이 닿지마는 그래도 닿지 못하는 데가 많죠. 개발하지 못한 데도 많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개발하고 이렇게 운동할 수 있는 거는 바로 이 본부의, 즉 움죽거리지 않는 부동한, 즉 말하자면 근육이라 그래도 좋고, 부동한 자세가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우리는 이렇게 운동을 하는 겁니다. 사람만 이런 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이렇게 광대하고 무변한 것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밥이나 해 놓고 떡이나 해 놓고 빌고 이러는 걸 종교로 안다면 이거는 너무나 잘못됐어. 이렇게 신선하고, 인간이 얼마나 고귀하고, 참모습이고, 하나하나 움죽거리는 대로 묘하고, 자동적인 기계면서도 그 기계를 움죽거리게 하는 그 자신의 성품이나 또는 자신의 본부가 있어서, 이 본부가 다 할 수 있는 그 부동한 자세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바로 성품이 모든 걸 운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이 몸에도 어떤 한 군데가 마비가 됐다, 또는 이 생명체들이 죽으니까 간이 굳어 간다…. 생명이 죽어 가면 이게 굳어 가거든. 황무지가 되는 거라. 폐허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걸 살릴 수가 없는 거지. 왜 살릴 수 없느냐. 본부에다가 안 했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 그냥 그걸 살리려니 힘들지. 회사가, 정부에 거론이 되지 않은 회사들은 한번 망하게 되면 망해, 그냥. 그런데 정부에서 하는 회사는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어. 이걸 이렇게 비유해야 여러분이 알겠습니까?

그래서 정부에서 하는 회사는 망하지 않듯이, 모든 일체 이 본부에서 하달을 해서 하는 일은 절대로 그게 마비가 되지 않아. 만약에 폐허가 될 지경이다 할지라도 다시 복구가 될 수 있어. 이건 자연의 법칙이면서도 묘한 자신의 근본적인 능력이야. 능력이 없으면 죽어! 어떠한 부분이든지,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무(無)의 상응력도 그렇고, 이 우주의 근본도 그렇고 모두가 내 힘이 없으면 죽어! 어떤 혹성이든지 마찰이 되고 끌리고 잡아먹히고 끌려가고, 이 지경이야. 지금 사람도 그렇지, 뭐. 자기 본부를 세우지 않고는 절대 그것은 승산이 없어. 이 몸은 무너지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무너지고 이게 허황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한쪽이 기울어지는 거라. 살고 죽고 하는 것이 둘이 아닌 데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자동적으로 모습을 바꿀 수가 있는, 죽는다 산다 이런 언어가 붙지 않는 자기의 참 본부. 참 본부에서 모든 걸 해 나가야 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바로 내 몸뚱이가 세계다 이거야. 그래서 세계의 자신, 자삼보(自三寶)! 삼보는 바로 본부에서 삼보를 운영하는 거야.

그런데 모든 게, 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을 그렇게 그르쳐 나간다 말이야. 우리가 기계적으로 생각을 한다고. 의학적으로 본다면 바른발이 아프면 바른발에다가 침을 놓거나 또 양의사도 바른발이 아프면 그 아픈 데를 수술하거나 또는 아픈 거기에 약을 쓰고 하죠. 근데 본디 정부에서 하는 일은 바른 다리가 아프면 왼다리를 쳐. 왼다리에서부터 조정을 해 나가. 왼다리가 아프면 바른다리에서부터 조정을 해 나가고.

그것은 왜 그런가? 이것이 바른 데서부터 왼쪽으로 가 있고, 왼쪽에서부터 바른 데로 가 있으니까 그런 거야, 이 도리가. 이 세계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이거야. 부스럼이 난 거나 뼈가 부러졌다거나 그런다면 그 자리를 하지마는 그렇지 않은 관절이라든가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절대로 그것은 그렇게 한군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모든 것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내공 정부. 내공! 주인 정부! 허허허….

그러니까 몸에 비유를 한대도 이 공부를 안 해서는 안 되리만큼 철저하게 해야만이 된다는 그런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렇게 요 모습을 가지고 요기 있다가 요리로 갈 때에 요리로 간 거, 요 사람이 요리로 온 거는 아는데, 요기 가고 오고 요걸 모른다 말이야. 요 간 자리, 온 자리 이걸 모르는 거야. 요기서 요기 옮긴 것도 다른 모습으로 갖다가 탁 놓으면 모르는 거야. 똑 그 모습으로만 갖다 놔야 알지. 그런다면 여러분이 말이야, 즉 말하자면 당신 자식이나 또는 부모가 죽어서 여러분의 가정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바꿨기 때문에 모르는 거라. 여러분, 잘 아시겠어요?

그러니 언제 적의 부모고 언제 적의 자식이냐 이거야. 자식도 부모도 없는 자리라 이거야, 이건. 자식이라는 소리가 붙지도 않고 부모라는 소리가 붙지도 않아.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즉 중생이고, 중생이 즉 부처니라. 즉 색이자 공이고 공이자 즉 색이니라.” ‘즉’이라는 그 자체가 너무 철두철명한 거라. 왜 ‘즉’을 넣었을까 이거야.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라 이러지, 왜 ‘즉’ 소리가 들어갔느냐 이거야. 이 참 기묘하고 기묘한 도리.

여러분이 이렇게 앉았으니까 말이지 임신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도 그렇게 났으니까 말이지만, 내가 그전에도 정자와 난자가 한 번에 5억이나 들끓는다고 했죠? 왜 5억이라고 말을 했을까? 지금 의학적으로는 3천도 그냥 우수하게 되는데 왜 5억이라고 말을 했는가? 한 생명이 생긴다면, 물질이 생긴다면 그 물질 속에 그 생명이 얼마나 많기에 한 몸이 생기겠습니까? 아직 점령을 안 했다 하더라도 요러한 생명이 하나 생겼다 하면 벌써 구조는 다 있는 거라. 그러니 그렇게 하다가 한 마리가 딱 임신이 됐을 때는 그 여러 마리가 한 마리로서 전부 귀합이 되는 거야. 물질이 되는 게 아니라.

아까 얘기했듯이 모든 그 생명은 하나니까 거기로 다 해서 하나가 돼 버리는 거야. 하나가 돼 버리니까 그거는 물로 그냥, 즉 말하자면 없어지고 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그건 다 죽고 없어지고 한 마리만 된다 이러는데, 천만에! 5억 마리가 아니라, 만약에 개수로 따진다면 3천 마리라면 3천 마리가 한 마리가 돼 버리고 마는 거야. 그걸 알아야 돼. 가고 옴이 없이 그렇게 무궁무진하다는 그 뜻을 우리가 모르고는 본부 맛을 못 봐. 그런 데다가 애가 들어설 때에도, 들어서서 삼 개월이 된다면, 삼 개월 되기 전만 하더라도 엄마와 자식과 탯줄에 의해서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주고받고 주고받는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예가 있었죠. 임신을 하자마자 남편이 고만 교도소에 가게 됐답니다. 걔를 낳을 때까지 그 교도소를 다녔답니다. 거길 다니면서 본 거라는 건 그거밖에 본 게 없어. 열 달 내내! 만 아홉 달을 만기가 되도록 그것밖에 본 게 없어. 허구장창 나서면 사식 가지고 다니고 허구장창 옷 가지고 다니고 그것 걱정하고 그냥, 모두 온통 그것 걱정이라. 그러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걔가 어떻게…. (녹음 안됨) … 거기를 수백 번 수만 번 다녔다 할지라도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을 말이야. 몸뚱이가 아무리 다녀도 마음이 그렇게 말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그놈의 거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렇게 모든 게 보는 대로 그냥, 생각하는 대로 들어간 거야. 그 영향이 어디 가겠어요? 물질의 영향도 보급이 되는 거고, 마음의 영향도 바로 보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질없는 일들을 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 만신 집이나 뭐 이렇게 있는데 만신 집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만신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고 그런 거니까. 그러나 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녔으면 중학교 갈 줄 알고 고등학교 갈 줄 알고 대학 갈 줄 알고 대학원 갈 줄 알아야지, 그리고 사회에도 나설 줄 알아야 인간이 아닐까요? 그거나 마찬가지로 좀 더 우리가 알 양으로 노력을 해 봤더라면 그런 걸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나가다 보면 그 영향이 어디에 미치느냐 하면 애한테로 다 미치는 거야. 그래서 그 유전을 받아 가지고 무당 어머니면 무당이 또 난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게 유전이야.

그것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지. 소소하게 우리 살아나가는 데도 그 영향이 애들한테 얼마나 미치느냐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먹는 대로 영양이, 의학적으로는 먹는 대로 영양이 애한테 간다. 약을 먹으면 약의 영양이 가고 이런 것만 알았지, 보이지 않는 기묘한 그 뜻은, 그 전달이 되는 거는 도대체 모르거든. 인연에 따라서 만나서 내가 임신을 했다면 자기의 그 영향대로 거기에 영향이 미치게 되거든. 그러니 내가 작으면 그 아이도 작지 어떡하겠습니까? 영향을 자꾸 받았으니까.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느니라.” 이런 말을 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비록 가난하고 쪼달리고 배우지 못하고 어떠한 영향을 받는다 할지라도 마음이야 가난해서 되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면 모든 일이 전체 가난하지 않아요. 하다못해 죽을 한 그릇 먹어도 허허 웃으면서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하고 아마 허허, 하늘을 보고 웃을 거야. 이 정도로 돼야지, 지금 우리가 공마당에, 어떠한 손바닥만 한 데 오물쪼물 모여서 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네 가정 내 가정 찾고 온통 야단들을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아주…. 이 지구 한 덩어릴 딱 놓고 따져 본대도 손바닥만도 못한 놈의 거를 가지고 온통 야단들이거든. 도무지 이게 될 노릇이냐 말이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애들이 배 속에서 받는 영향은 너무도 큰 거야. 그런 데다가 사회 상식이라든가 교양이라든가 이런 건 또 태어나서 받는단 말이야. 태어나 가지고도 받아, 그놈의 걸. 애 보는 데 별 욕 다 하고 별 싸움 다 하고, 그저 나가고 들어오고…. 벌어먹는 것도 중하지마는 벌어먹는 것도 사람이 본부가 있다면 본부에다 연방 전달을 해 가면서 상응한다면, 만약에 부부가 벌이를 하느라고 애들을 놔두고 다니더라도 그 애들이 천생 착해. 본부가 항상 지키고 본부가 항상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아들처럼 내버리고, 먹을 거나 주고 그저 조금 저거 하면 돈이나 주고 이러니까 애들이 외롭고 ‘야, 집에 들어가 봤자야 뭐, 그것도 없는데 친구한테나 가야지.’ 이럭하다 보면 망가지는 거야. 그러니까 벌어먹고 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남편들도, 젊은 사람들은 이거 꼭 들어 둬야 할 일이라고! ‘나는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이러니까 남편이라도 생각해 주겠지.’ 천만에! 자기의 욕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살려고 애를 써도 그것은 아랑곳없어. 그걸 알아야 돼. 그렇기 때문에 천 리라도 쫓아다니면서 살아.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느 가정에서든지 내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편의 손이 안 닿을 때에 일하는 건 괜찮아. 와서 가깝게 닿을 때는 언제나 내가 항상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돼야 돼. 동생이 돼 주고 딸이 돼 주고 때에 따라서는 할머니도 돼 줄 수 있어야 그 가정이 풍부하고 그 본부의 근본을 따라서 오직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 이거야. 또 남자는 언제나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행을 다하면서 결국은 아버지도 됐다가 친구도 됐다가, 또는 동생도 됐다가 아들도 될 수 있는 그런 이치가 있어야 그 집안은 화목하고 재미있는 집안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열심히 자기 주인공에 의해서 진실하게, 값싸게 찾지 말고 진실하고 무겁게…. 오뚜기가 무거워서 어디다 내던져도 우뚝우뚝 서듯이. 시장바닥에 내던져도 우뚝우뚝 서듯이.

여러분이 그렇게 자갈밭이 닥친다, 가시밭이 닥친다,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본부를 찾는 법입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86년 3월 12일 일반법회 법문 중 일부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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