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최주현.

작가들의 묘비명은 그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합니다. 특히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보면 씩씩한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상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그의 책 <영혼의 자서전>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8월의 어느 날,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노란 번갯불의 섬광이 소리 없이 하늘을 가르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얼마 후 일 년 내내 먹을 건포도가 빗물에 실려 떠내려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려주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문간에 서서 양식이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어린 니코스는 아버지에게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죠. “시끄럽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니코스는 문간에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모습을 항상 기억했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라는 아버지 말씀은 위대한 교훈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니코스의 아버지는 문간에 서서 어떤 재난이 와도 굴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졌을 것입니다. 하늘이 우릴 버릴지라도 우리는 죽지 않아라고 하늘을 향해 독기어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고통과 재난도 우리를 없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의 종류는 경제적인 손실, 배반, 이별, 죽음, 사업실패, 실직, 실연 등 참으로 많습니다. 누구나 고통은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 그런 것입니다. 고통을 당했을 때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도 있고, 고통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통의 얼굴을 보지 않고 도망치려는 것은 자신의 삶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에게 등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하면서 고통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 정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고통 없는 삶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닥치는 시련과 고통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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