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 앞두고 정치판 요동
이합집산 속 창당에 ‘우후죽순’
한기총 회장 주도 정당도 나와

韓불교엔 ‘전륜성왕의 꿈’ 절실
‘민주적 정의공동체’ 구현 의미

부처님께서 전륜성왕이 됐다면
중도+정의 ‘中正정치’ 펼쳤을 것
불교적 정치 구현에 고민 필요해

코로나19’로 불리는 괴질이 창궐하고 있는 이 땅에 정치의 광풍이 휩쓸고 있다. 4월 총선에 대비하여 한국 정치판이 요동을 치고 있다. 이합집산의 혼돈 속에서 이런저런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어느 목사가 자유통일당이라는 정당을 주도적으로 창당하였다. 이를 어쩌랴. 그 창당 행사장은 마치 선교 부흥회를 방불케 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정치와 종교는 어떤 관계일까?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생생한 발자취를 찾을 수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정교분리는 내숭일 뿐이다. 불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고가 있다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로만 본 오해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근현대 한국불교의 정치적 여정은 아픔과 부끄러움의 역사였다. 조선시대와 일제의 긴 질곡에서 빠져 나온 한국불교는 1945년 해방공간에서부터 또 다른 늪 속에 빠졌고 전두환 군부정권에 의해 10.27법난이라는 치욕도 겪었다.

오늘날 한국불교에는 전륜성왕의 꿈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전륜성왕은 하나의 설화였지 꿈이 아니었다. 꿈은 바람이고 바람은 실천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불교에서 고대 인도에서 태동된 전륜성왕의 관념과 사상을 비중 있게 수용한 것은 바로 불교가 현세 지향적, 실천 지향적 성격이 강한 종교라는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전륜성왕의 꿈은 민주적 정의 공동체의 구현에 있고 그 길은 바로 하화중생의 길이다.

붓다도 전륜성왕의 꿈을 꾼 적이 있다. 잡아함의 <작왕경>의 내용을 소개한다.

내가 왕이 되어 남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빼앗김을 당하는 일도 없고, 남을 슬프게 할 일도 없고 스스로 슬플 일도 없도록 한결같이 법대로 행하고 법이 아닌 것은 행하지 않는 통치를 하면 어떨까?”

붓다가 이런 생각을 하자 악마가 기뻐하며 유혹하였지만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우기 어렵다며 그 유혹을 뿌리쳤다. 이 경전의 내용은 민주적인 정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붓다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더 근원적인 처방을 찾으신 것이리라.

그러나 붓다의 민주적인 정의 공동체에 관한 관심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칠불쇠법(七不衰法)’이다. 또한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 왕과 국가가 할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것을 여러 왕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정치권력의 타락과 통치자의 위험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국가와 통치자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붓다가 꿈꾼 전륜성왕의 권위와 존엄은 민주적인 정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정법정치에서 나온다 하겠다.

이제 한국불교가 이 땅에 전륜성왕이 출현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는데 원력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불교의 사부대중과 종단이 먼저 민주적인 정의 공동체를 실천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나침판을 세우고 역랑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먼저 꾸준한 제도 개혁과 종단의 민주화 역랑 강화,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자율적 실천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붓다가 전륜성왕이 되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떨까? 중도와 정의가 결합된 중정(中正)정치가 펼쳐졌을 것이다. 중정 정치의 꿈이 바로 불교정치철학의 핵심일 것이다. 이제 한국 불교가 한국 정치 발전과 성숙한 정치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구체적 과제에 대해 진지한 고뇌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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