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Focus] 법정 스님 향훈, 짙어진 10년

 

삶이란 무엇일까? 법정 스님은 이 시대의 화두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소유를 실천하며 대중에게 방향을 알린 진정한 수행자이자 시대의 참어른이었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의 삶을 통해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스님은 한 번도 종단 행정을 보거나 사찰의 소임을 살지 않고 홀로 조용하게 살다 갔다. 다른 성직자들이 높은 직책을 임명받거나 사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면 법정 스님은 올곧고 순수한 인격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드러나길 싫어해 깊은 산속에 숨어 지냈지만 오히려 그것이 스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점점 크게 만들었다.

산중에서 세상과 동떨어져 보였지만 스님은 세상과 항상 연결돼 있었다. 바로 글을 통해서다. 법정 스님은 비단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비유로 불교 교리를 삶의 철학으로 전파시켰다. 읽는 것만으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스님의 책은 늘 베스트셀러였다. 1976년 출간된 〈무소유〉는 180쇄가 넘게 찍힌 수필집이다.

스님은 문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교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다.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前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다.

맑고향기롭게서 이어온 가르침

법정 스님이 떠난 10년, 스님이 남긴 자취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먼저 스님이 활동했던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가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맑고향기롭게는 1993년 8월 법정 스님이 출가자로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겠다며 ‘맑고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모임’을 결성하며 탄생됐다. 1994년 3월 구룡사서 맑고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첫 대중강연 및 발족식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경남 등에서 회원을 모집해 범불교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다.

1995년 김영한 여사의 대원각 기부 시에도 본인의 명의가 아닌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으로 받아들인 일화가 유명하다. 법정 스님은 맑고향기롭게 창립 10주년을 맞아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한다”며 운동 방향을 정의했다.

이를 통해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는 ‘마음을 맑고향기롭게’ ‘세상을 맑고향기롭게’ ‘자연을 맑고향기롭게’의 세가지 방향으로 현재 사회 곳곳에서 성과주의적 활동보다 생활 속 실천운동을 펼치고 있다.

먼저 마음을 맑고향기롭게 활동은 월간 〈맑고향기롭게〉를 발행, 군법당과 병원, 교도소 등에 무료배포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길상사 주말선수련회를 통한 수행문화 진작과 강연회, 음악회 등도 지속 개최하고 있다.

세상을 맑고향기롭게 운동은 매년 4월 초 어려운 형편의 50명 내외 장학생을 선정해, 학비전액을 지원하는 ‘길상화 장학 사업’, 1999년부터 시작한 반찬나눔사업, 어르신 전화말벗활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1999년부터 시작한 반찬나눔사업은 현재 저소득층 500여 가구에 매주 밑반찬 2가지를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청소년봉사자와 독거어르신의 만남을 주선하고 월곡청소년센터, 진인노인요양원 등에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연을 맑고향기롭게 운동은 친환경 화장품만들기 강좌와 숲기행, 의류재활용봉사모임, 녹색나눔장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의류재활용 봉사는 못입는 옷을 이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활동을 펼친다.

맑고향기롭게 이사를 지낸 변택주 작가는 “스님이 세상에 남기신 건 바로 ‘사랑’이며 이는 바로 차별없는 자비”라고 말했다. 변 작가는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는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닌 바로 나눠쓰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기에 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돌아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법정 스님이 주석하던 송광사 불일암은 스님이 지내던 오두막과 텃밭 등이 온전히 보전돼 있으며, 길상사에는 매년 스님의 추모법회와 함께 스님의 향훈을 되새기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불일암을 지키고 있는 덕조 스님은 “청빈의 삶을 강조하신 스님께서는 가시며 승단의 장례가 간소화 되는 등 불교 내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사람들이 점점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듯해 안타까움이 많다. 10주기를 맞아 평소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함께 교감을 나누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재가불자가 본 법정 스님

인간 ‘법정’, 마음 따뜻한 분
이계진 前 국회의원

저는 30년전 가족과 송광사로 수련회를 갔는데 그때 법정 스님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당시 저는 아나운서로 이름이 좀 알려졌을 때인데 법정 스님께서 제게 ‘향적(香積)’이라는 법명도 내려주셨고 유발상좌가 됐습니다.

제가 한번은 스님께 ‘가진 게 많아 무소유 실천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자 스님은 ‘가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많이 벌고 많이 갖되 이를 나누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이 외부로 비치는 모습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분 같지만, 그 내면의 모습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엄격한 수행자의 이면에 사람에 대한 감성이 살아있는 분이셨습니다. 저희 내외가 불일암에 갔을 때 스님께서 직접 국수를 삶으시며 손으로 면을 헹구시던 모습이 기억 납니다.

한번은 스님께서는 기차를 혼자 타고 오시는데 창 밖에 한 마을 가옥 빨랫줄에 기저귀가 펄릭이는 것을 보고 보기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故김수환 추기경도 비슷한 일화를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분의 그런 말을 듣고 수행자들이 갖는 인간적인 모습, 우리 사회에 대한 따뜻한 향수로 느껴졌습니다.

아직까지도 법정 스님의 향기가 맑게 남아 있는 것은 스님이 가지신 이런 주변과 우리 사회에 대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님의 문학 ‘철저한 수행’ 바탕
정찬주 작가

법정 스님은 수많은 명저를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글을 볼 때는 문학인의 글이 아닌 수행자로서의 글을 봐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소통의 방법으로 글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스님께서 글을 쓰시게 된 계기는 해인사서 계실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보살이 ‘팔만대장경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자 스님은 장경각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보살이 ‘아 빨래판 같은 것’이라고 답했죠.

스님은 그때 느끼신 겁니다. ‘스님들에게는 대장경이 성보지만 모르는 대중의 눈에는 빨래판이구나’라고요. 그 이후 스님은 운허 스님이 계신 동국역경원으로 가 우리말대장경 편찬에 동참합니다.

결과적으로 스님의 글은 일반인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는 일종의 시대의 해방구가 됐습니다. 그 바탕에는 스님의 수행이 있습니다.

‘글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스님에 대입하면 딱 맞는 말입니다.

불일암에서 철저하게 개인생활을 지키신 그 바탕하에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 예각까지 겸하니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준 것입니다. 저는 후대에서 법정 스님의 글과 같이 오랫동안 남을 글이 나오려면 스님처럼 수행을 통해 일관된 하나의 사상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의 펜

각박해지는 현대사회
‘Post 법정’을 꿈꾼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스님들을 꼽는 경우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 2010년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불교분야 존경받는 인물로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원효대사와 청담 스님 등이 꼽혔다. 현재 살아계신 스님은 없었다.

최근에도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법정 스님이 가장 존경하는 불교계 인물로 꼽혔고, 성철 스님과 원효 스님이 그 뒤를 이었다.

그나마 생존한 스님 중 존경하는 스님을 꼽힌 이는 법륜 스님이었다. 정토회를 통한 사회참여와 즉문즉설로 국민멘토로 자리 잡으면서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물질과 자본의 논리에 얽매이면서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법정 스님의 입적 10주기를 맞아 스님이 평소에 전한 가르침을 통해 단순히 불교 교세 확장이 아닌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스님, 그리고 불자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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