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혜(善慧)의 바라밀 수행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본생담 서론에 해당하는 <니다나카타(Nid?na-kath?, 因緣譚)> 중 ‘먼 인연담’에서, 연등불의 수기를 받은 선혜(善慧) 보살은 붓다가 되기 위한 기본법을 두루 찾다가, 옛 보살들이 제일 먼저 행한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현자 수메다(선혜)여! 만일 보리(菩提)를 얻고 싶으면, 첫째로 보시바라밀을 완성하라. ‘마치 물이 가득한 물병을 넘어뜨렸을 때 한 방울 물도 남기지 않고 다 쏟듯이’, 누가 네게 와서 무엇을 구하거든 그의 귀천(貴賤)을 따지지 말고 남김없이 보시하되 저 넘어진 물병처럼 하라. 모두 보시한 뒤에 보리수 아래에 앉으면, 반드시 붓다가 될 것이다.”

선혜는 붓다가 되는 기본법이 1)보시(布施; 재물과 진리를 베풀고, 안심시킴)바라밀만이 아닐 것이라 여기고, 계속 모색하다가 2)지계(持戒; 계율을 지킴), 3)출리(出離; 번뇌의 속박을 떠남), 4)지혜(智慧; 무명을 떠나 실상을 깨달음), 5)정진(精進; 게으름 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감), 6)인욕(忍辱; 찬탄과 멸시를 견딤), 7)진실(眞實; 진리로부터 이탈하지 않음), 8)결정(決定; 흔들리지 않음), 9)자(慈; 멀고 가까운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품), 10)사(捨; 고락에 평등한 마음)바라밀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10바라밀은 외부의 사방사유상하(四方四維上下)의 열 방향 어디에도 없고, 오직 마음속에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리고 심천(深淺)에 따른 세 가지 10바라밀이 있으니, 보통 바라밀, 근소(僅少) 바라밀, 최상(最上) 바라밀이 그것이다. 몸을 움직여 하는 것은 보통 바라밀이고, 소유물인 재물로 하는 것은 근소 바라밀이며, 생명을 바쳐 하는 것은 최상 바라밀이다.

선혜의 이러한 사유가 궁극에 이르자, 대지가 진동하여 람마바티(희락성)의 주민들은 서 있을 수 없어 기절하여 넘어졌다. 도공들이 만든 모든 그릇도 넘어지며 서로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주민들이 두려워하며 연등불전에 나아가, 대지가 진동하는 연유를 묻자, 연등불께서 말씀하셨다.

“안심하라. 이 대지의 진동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늘 ’오는 세상에 붓다가 될 것이다‘고 예언한 젊은이 선혜가 옛 선인들의 길을 따라 보리를 깨닫는 10바라밀을 남김없이 생각하자 그 때문에 이 땅과 십천(十千)의 인천(人天) 세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주민들은 연등불의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선혜에게 가서 꽃과 향을 올리며 예배하였고, 천인(天人)들도 꽃과 향을 올리며 “빨리 열가지 바라밀을 완성하여 최상의 보리를 증득하시라”고 찬탄하였다. 이에 선혜는 이런 칭찬을 받으면서 열 가지 바라밀을 행해 이루려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1)연등불이 무여열반에 드시자, 2)콘다냐붓다(Ko??añña, ?陳如佛),......19)비파씨붓다(Vipass?, 毘婆尸佛), 20)시키붓다(Sikh?, 尸棄佛), 21)베싸부붓다(Vessabh?, 毘舍浮佛), 22)카쿠산다붓다(Kakusandha, 拘留孫佛), 23),코나가마나붓다(Ko??gamana, 拘那含牟尼佛), 24)카샤파붓다(Kassapa, 迦葉佛) 등 24분의 붓다가 세상에 출현하셨다. 선혜는 전생(轉生)을 거듭하면서 이들 24붓다 아래에서 서원을 세우고 수기를 받고, 4아승지 10만겁 동안 보리(菩提)를 이루는 자량(資糧)인 10바라밀을 닦아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일생보처 보살로 도솔천을 거쳐 카필라성에 태어나고 25번째 고따마붓다(Gotama, 瞿曇)가 된 것이다.

이상에서 소승의 팔리 경장에서도 10바라밀이 붓다가 되는 보리자량(菩提資糧)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의 10바라밀 중 1)보시(布施바라밀, 2)지계(持戒)바라밀, 4)지혜(智慧)바라밀, 5)정진(精進)바라밀, 6)인욕(忍辱)바라밀의 다섯 가지는 대승의 6바라밀에서 선정(禪定)바라밀만 빠진 것이다. 그리고 3)출리(出離)바라밀, 7)진실(眞實)바라밀, 8)결정(決定)바라밀, 9)자(慈)바라밀, 10)사(捨)바라밀의 다섯 가지는 대승의 10바라밀에 없는 것이다. 그 중 9)자(慈)바라밀, 10)사(捨)바라밀은, 대승의 4무량심(無量心)의 자비희사(慈悲喜捨)중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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