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의, 중국인 불교 이해 방식
격의, 중국인 불교 이해 방식
  • 현불뉴스
  • 승인 2020.02.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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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해의 길 33

13세기 초 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붓다의 가르침은 히말라야를 넘어 실크로드를 통해 저 멀리 중국과 티베트, 한국,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남방으로는 스리랑카, 태국 등지로 널리 퍼져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불교가 해외로 전파되는 데 아소카왕의 공이 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아들과 여동생을 스리랑카에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전법을 위해 많은 승려들을 이집트, 시리아, 마케도니아 등에 보내기도 하였다. 아소카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즉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왕이었다.

이처럼 불교는 여러 나라에 전파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고유 사상과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했다. 특히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지역일수록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결은 더욱 치열했다. 문화와 사상 역시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의 경쟁 속에서 화려한 꽃이 피기 마련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기 전에 이미 그곳은 공자와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묵자 등 뛰어난 사상가들을 배출한 지역이다. 흔히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불리는 사상체계가 불교가 전파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완성되어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불교라는 새로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중국인들은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 지역과는 달리 불교를 원형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화적 프라이드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얀 도화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로 색칠된 도화지 위에 불교라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고유사상인 유교와 도교의 시선으로 불교를 해석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불교 이해 방식을 격의(格義)라고 한다. 매우 낯선 불교의 뜻(義)을 자신들의 언어로 헤아리고자(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에 가서 처음으로 스파게티를 먹고 온 사람이 이 음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럴 때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스파게티는 ‘서양 국수’라고 말이다. 그러면 피자는 자연스럽게 ‘서양 빈대떡’이 된다. 비록 스파게티와 국수는 다른 음식이지만, 스파게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익숙한 국수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격의의 방식으로 낯선 인도의 문화를 이해하였다. 불교가 들어온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위진(魏晉)시대에 주로 유행하였다. 그들은 불교의 공(空)을 도가의 무(無)로, 열반(涅槃)을 무위(無爲)로 해석하였다. 비록 의미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고유 사상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유학에서는 불교의 5계(戒)를 5상(常)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즉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음주를 금하는 불교의 계율을 유교에서 중시하는 다섯 가지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으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율을 유교의 인(仁)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둘 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근저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계율과 유교의 덕목 가운데 일부 유사한 것이 있을 수 있으나 발생 배경이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마치 스파게티와 국수 모두 밀가루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두 음식이 다른 것과 같다. 피자와 빈대떡은 둥근 모양이 비슷할 수는 있어도 동일한 음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과 무, 5계와 5상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이러한 격의불교는 중국사상과의 융합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불교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하였다.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 어떤 사상도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이러한 성찰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된 불교를 중국에 전하려는 노력이 계속 되었다. 마침내 중국인들은 불교는 도교, 유교와 구별되는 고유의 사상체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국수는 국수였고 스파게티는 스파게티였던 것이다. 퓨전 스파게티, 즉 불교의 중국화는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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