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운허 스님

 

서신 1

뜻 밖에 보내준 털옷과 목도리 잘 받았습니다. 겨울에 춥지 않게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불교의 깨묵 책 50권 보내니 회원들 나누어 보십시오. 글씨는 앞으로 1개월 내에 써 보내겠습니다. 불법을 잘 익히고 수련하기 빕니다. - 1978년 1월 10일. 운허 합장.

연꽃모임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을 때였다. 뜨개질을 잘 하는 회원 몇 사람이 의논하여 각자 한 사람씩 큰스님 외투를 뜨기로 했다. 회원들은 좋은 실로 외투와 목도리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나와 회원들은 해인사의 고암 스님, 통도사의 경봉 스님, 봉선사의 운허 스님, 신흥사의 탄허 스님 그리고 일타, 지관, 법정 스님께 외투와 목도리를 선물했다. 그때 운허 스님이 선물을 받고 나서 보낸 서신이다.

 

 

서신 2

惠書(혜서) 받고 회답이 늦었습니다. 나는 1월초부터 신병이 생겨서 지금도 快差(쾌차)하지 못합니다. 글씨를 써 보내려 하였으나 右手(우수)가 痲규(마비)되어 붓을 잡지 못합니다. 사진 2개를 보냅니다. 녹음테이프는 내 대는 없습니다. 우수 마비가 쾌차하면 글씨를 써 보내겠습니다. - 78년 4월 9일 운허 합장.

스님의 글씨를 받고 싶다고 편지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스님께서 오른 쪽 손에 마비가 와서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스님께서 미안한 마음을 서신으로 보내셨다.

 

 

서신 3

편지와 사진 잘 받았습니다. 전번에 가져다주신 목한은 품이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늘 곁에 두고 봅니다. 책 4권 따로 보냅니다. 부처님 광명중에서 평안하시기 빕니다. - 78년 11월 27일 운허 합장.

1978년 11월 초, 회원 법해월과 운허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 갔었다. 가는 길에 스님께 드리려고 예쁜 함지박을 사가지고 갔다. 스님과 기념사진도 찍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도 스님께 가끔 안부 편지를 올렸다.

스님께는 답장하는 일이 일이 될 것 같아 답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는 도반들과 함께 보라며 자비도량 참법 책을 보내주셨다. 답장을 하면 내가 또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답장대신 책을 보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거의 손편지를 주고받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손편지로 많은 소식을 주고받았다. 이메일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세상을 바꾸었지만 조금 더디고 손이 가야했던 손편지에서는 이메일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편지지와 편지봉투, 편지지와 편지봉투는 시시각각 바래지지만 그 속에 적힌 글자들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짙어가서 꺼내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편지를 보낸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육성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뵐 수 없는 선지식의 묵은 서신을 꺼내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따뜻하고 감사한 시간이다. 법문이다.

운허 스님(앞줄 중앙)과 대원성보살(앞줄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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