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人- 동국대 제40대 이사장 법산 스님

지난해 6월 27일 이사장 선출
화합·배려로 이룬 ‘원팀-동국’
“구성원 모두가 가족이자 도반”

일산병원 증축에 결정적 역할
1천병상 확보로 의료 질 증대
상하이중의약大 교류 협정도

퇴임 후 금강경 10만독 매진
“동국대 홍보요원으로 살 것”

퇴임을 앞둔 동국대 이사장 법산 스님이 교정을 거닐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동국대 제 40대 이사장 법산 스님이 2월 17일 이사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법산 스님의 삶 속에서 ‘동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큰 지분을 갖는다. 15세에 남해 화방사서 출가한 스님은 마산대학(현 영남대) 재학 당시 서경수 동국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동국대에 입학해 수학했다. 이후 6년 간의 대만 유학 생활을 마친 스님은 1986년 동국대 선학과 조교수에 부임한 이래 2010년 정년퇴임까지 25년간 동국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로 선임돼 학교 발전에 기여했고, 지난해 6월 27일 제40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평생 수행자이자 ‘동국인’으로 살아온 법산 스님을 퇴임을 앞둔 지난 2월 3일 동국대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임기 매 순간이 행복하고 소중했다”는 법산 스님의 퇴임 소회부터 향후 계획까지를 들었다.
 
▲2월 17일로 이사 임기가 만료됩니다. 퇴임 소감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기에 연연치 않고 일합니다. 처음 이사장을 하라고 권유할 때에도 ‘내가 이사장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결국 주위에서 “안한다는 말만 하지 말라”고 해서 수락하고 제 40대 이사장에 선출됐죠.

이런 과정 때문인지 사실 퇴임 소감이라고 딱히 말할 것이 없습니다. 항상 현재 있는 그 자리가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이, 임기의 매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 거죠. 그래서 저에게 임기가 길고 짧은 것은 별로 상관없습니다.

지난해 12월 7일 정각원 원불봉안법회에서 의식을 하고 있는 법산 스님.

▲동국대 동문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법인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교수 시절 정각원장을 13년 맡았고 불교대학장을 세 번 했지만, 다른 보직은 추천이 와도 일체 맡지 않았어요. 모두가 제 일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수행자이자 학자, 교육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계종립 동국대의 건학이념을 학교 구성원들이게 잘 전하고 이를 통한 교육적 성과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장 소임을 맡고 나서도 이런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로지 동국대에 대한 애정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사장이 되고 보니 위치와 관점이 달라진 것은 있었지만, 기본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학교와 병원, 산하 학교·기관 등을 살폈고, 동국의 모든 구성원은 가족이자 도반이라는 마음으로 대했죠.

▲그래서인지 재직 중에 유독 구성원 간의 화합과 배려를 강조하셨던 걸로 아는데요. 
-제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일선에 당부한 것이 “업무는 분업화하되 정보는 공유하자”는 거였죠. 학교 행정이 커진 만큼 체계적인 분업화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업무를 분업화한다고 구성원간의 결속력이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다양한 업무를 하지만 ‘동국’은 ‘원팀(One Team)’이라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국의 구성원 중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손가락 5개 중 한 손가락 정도 필요없어 보인다고 잘라내면 그 사람은 평생 불구가 됩니다. 우리는 인드라망을 구성하는 세포와 같습니다. 그래서 설사 구성원 중 누군가가 뒤쳐진다면 부지런히 정진할 수 있도록 함께 독려해 줘야 하는 겁니다. 어떤 구성원도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화합과 배려이죠.

▲평소 승가 의료에 대해 관심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동국대 일산불교병원 증축에도 큰 역할을 하셨던 데요.
 -얼마 전 태국 치앙마이 대학을 방문했는데 의과대학 병원 운영 시스템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승가병동이 따로 마련돼 아픈 스님들이 체계적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더군요. 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신교나 가톨릭의 경우 수십 개 종합병원을 운영하는데 비해 불교계 종합병원은 한방병원을 제외하면 일산과 경주의 동국대병원 단 두 곳뿐인 것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동국대에 의과대학이 생긴지 30년이 넘었지만, 동국대 의료원 산하에 3차 진료 병원이 없다는 것은 늘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런 일환으로 지난 제326차 이사회를 통해 일산불교병원 증축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향후 250병상 규모의 건물이 증축되면 1,000병상 이상을 갖춘 일산 최대 규모이자 명실상부한 종합병원의 위상을 갖추게 됩니다. 1,000병상으로 확대될 경우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급성기·회복기 치료가 이뤄질 수 있고, 승가 의료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것입니다.

또한 학교 의료 연구 인프라 확대를 위해 지난 1월 6일 중국 상하이중의약대학과 교류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상하이중의약대학은 한·양방 협진 체계가 잘 구축돼 있더군요. 동국대도 한방병원이 있는 만큼 양·한방 협진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법산 스님이 1월 6일 상하이중의약대학과 교류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교수 재직을 포함해 약 30년 이상을 동국대 구성원으로 살아오셨는데,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신지요?
-교수 재직 중 가장 보람됐던 것은 학생들과 친구 같이 생활했던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을 연기적인 관념으로 대했습니다. ‘학생이 있으니 교수가 있고, 교수가 있으니 학생이 있다’는 상호 공존 관계라고 생각했죠. 교수가 갖고 있는 지식은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 학생은 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자신만의 파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좋은 파장은 만 가지 파장으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생이 지각 하면 너의 지각으로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너에게 집중될테고 그러면 이로 인해 내 강의도 끊기니 학우들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미안하다고 하면 학우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삼배를 올려라. 그것이 바로 참회라고 말해줍니다. 지각생이 참회의 삼배를 마치면 모든 수강생들에게 박수로 격려해 주라고 합니다. 이렇듯 지식과 함께 인성을 함양하는 참교육의 실천이 늘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금강경〉 10만독을 서원하셨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5만독 성만 기념법회를 봉행하시기도 하셨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금강경〉 10만독 서원을 세운 것이 2001년입니다. 10만독이라는 것이 하루에 1독씩 한다면 무려 274년이 걸리더군요.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매일 10독은 꼭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국대 모든 구성원이 〈금강경〉 독송을 생활화 했으면 합니다. 〈금강경〉은 ‘비우고 비우면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비움의 철학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아상·인상·중생상이라고 하는데 결국 아상을 내려놓는 것에서 모든 것이 이뤄집니다. 하심 하다보면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세상만사가 순리대로 흐르게 돼죠.

법산 스님이 지난해 9월 9일 혜광원 개원식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이사장직을 내려놓으시면서 학교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드시는지요.
-지난해에 신생아가 28만 명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이 19년 뒤에 대학에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지금 대학 입학 정원이 60만 명인데 당장 20년 뒤에는 절반도 못 미치는 인원이 학령인구인 것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학령인구가 7만 명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학제 조직 개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조정과 이에 따른 교직원들의 효율적 배치가 우선시 돼야 합니다.

또한 기본 재정 확충이 필요 합니다. ‘불교 종립대인 만큼 동국대 발전을 위한 후원 조직을 백분 활용해 교육불사 유치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는 차기 이사장 스님과 총장이 원력을 갖고 해 나가야 할 필수 과제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 저는 이제 학교를 떠납니다. 하지만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평생을 ‘수행자’로 ‘동국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항상 저는 ‘동국’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찰서 법문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또한 동국대를 홍보하는 ‘홍보요원’ 역할도 계속 할 것입니다. 동국의 발전이 곧 불교 발전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죠.

법산 스님은… 1945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5세에 남해 화방사에서 출가했다. 1967년 마산대학(현 경남대) 재학 당시 서경수 동국대 교수와 인연으로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했다. 학부 졸업 후 불교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에 매진했다. 1980년에는 대만 중국문화대학 철학연구소에 입학해 6년간 수학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86년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 조교수에 부임한 스님은 2010년 정년퇴임까지 25년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스님은 13년간 정각원장을 지냈고, 불교대학장을 3번이나 역임했다.학승으로서의 면모도 남달랐다. 보조사상연구원장, 한국선학회장, 인도철학회장, 한국정토학회장 등 주요 불교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하며 한국불교학계를 이끌었다. 퇴임 후에는 동국대 명예교수로 활동했고,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를 맡아 학교 발전에도 기여했다. 지난해 7월부터 동국대 제40대 이사장으로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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