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선이야기] 4. 송대 문인 황정견
[인물로 읽는 선이야기] 4. 송대 문인 황정견
  • 정운 스님/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20.02.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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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으로 고난 이긴 문인 禪者

소동파와 함께 宋代 대표 문인
선종사에선 ‘황산곡’으로 불려
“언어로 현혹” 선사 꾸짖음에
“음욕·육식·음주 않겠다” 발원
송대 문인 황정경의 진영. 그는 선종사에서는 황산곡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사와 꾸밈을 추구하고 깊이에 힘을 쏟아 ‘강서시파’의 조종(祖宗)으로 추대 받았다.
송대 문인 황정경의 진영. 그는 선종사에서는 황산곡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사와 꾸밈을 추구하고 깊이에 힘을 쏟아 ‘강서시파’의 조종(祖宗)으로 추대 받았다.

“내 살이나 중생의 살이나, 이름은 같지만 몸뚱이는 다르지 않네. 본래 똑같은 목숨으로서, 단지 몸뚱이의 모습만이 다를 뿐이네. 괴로움은 남의 몫이라 하고, 달고 기름진 것은 내가 필요로 하네. 염라대왕 판결을 시비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 죄를 판가름 하면 어떨까?”
- 〈남심극락사중수방생지소(南씉極樂寺重修放生池疏)〉

위의 시는 송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작품이다. 정견은 선자(禪者)이며, 문인으로서 선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시 속에 불자로서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녹여 있다.

황정견이 살았던 송대로 들어서면, 승려들도 사대부화된 면이 있고, 유교의 사대부들 또한 선사와 같이 수행하거나 불교 경전에 심취해 선시를 쓰는 이들이 많았다. 이전 당대(唐代) 선사들은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했던 반면, 송대 선사들은 사대부 친구들과 어울려 시와 사(詞)를 짓거나 거문고를 연주하며 담백함과 소탈함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승려로서 예술적인 취향을 보인 승려를 보면, 비연(秘演)·도잠(道潛)·각범(覺範)·각심(覺心)·계소(繼紹) 등이다. 혜천(慧泉)은 수많은 책을 읽어 해박한 지식이 있어 당시 사대부들이 스님을 찾아와 묻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를 ‘천만권(千萬卷)’이라고 불렀다. 청순(淸順)은 당시 유명한 시인으로 “성품이 맑고 고요하여 사람들과 함부로 사귀지 않았으며, 특별한 일이 없이 도시에 나가지 않았는데, 사대부들이 직접 찾아와 만났고, 때로는 식량을 보내 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중수(仲殊)는 소동파의 문인인데, 그의 시 가운데 ‘윤주북고루(潤州北固樓)’는 당시 사대부들이 노랫가락처럼 읊고 다녔다고 한다.  

그 반대인 경우, 즉 사대부로서 승려들과 어울리며 선을 하고 선시를 남기는 이들이 많았다. 남송의 대학자 주희도 〈대혜어록〉을 즐겨 읽었는데, “현재 선학(禪學)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깊은 곳에 이르러 보지 못할 것이다. 깊은 곳에 도달하고 나면 반드시 선에 나아간다.〈주자어류〉”는 말을 남겼다. 송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선자로는 양억·장방평·이준욱·주돈이·소동파·구양수·정이·황정견 등이다.

그러면 황정견의 선시와 구도 정신을 보자. 황정견은 강서성(江西省) 홍주(洪州, 현 修水) 사람이다. 그는 시골의 학자 집안 출신으로 부친도 진사에 급제했으며, 도서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해 주위 친척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 7세 때에 ‘목동시(牧童詩)’를 지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세속의 명리를 쫓는 것을 견제할 정도였다. 어린 나이부터 탈속(脫俗)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정견은 22세에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정견은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며 요직을 두루 겸했다. 그러다 그가 편수관으로 있을 때,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는 탄핵을 받아 쓰촨성(四川省) 부릉(륭陵)으로 유배를 갔다. 이후 56세 무렵, 중앙에 기용되었으나 다시 유배지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1105년 유배지에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견은 문인으로서 한 경지에 이르러 소동파와 더불어 양대라 하여 ‘소황(蘇黃)’이라 불리었다. 정견은 소동파의 제자이면서 절친한 벗이었다. 소동파의 문장이 자유롭고 정적인데 비해 정견은 고전 성어를 자유로이 구사하여 두보의 계승자라 일컬었다. 정견은 호를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했는데, 선종사에서는 황산곡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사와 꾸밈을 추구하고 깊이에 힘을 쏟아 ‘강서시파’의 조종(祖宗)으로 추대 받았다.

정견은 “문장을 지을 때는 남을 뒤따르는 것을 가장 꺼려야 하며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시와 서법, 두 방면 모두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해서 ‘시서쌍절(詩書雙絶)’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러면 정견의 구도를 보자.

정견은 회당 조심(晦堂祖心, 1025~1100) 선사를 찾아갔다. 정견이 선사에게 물었다. “불법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나는 자네한테 하나도 숨기는 게 없네.”
정견이 선사의 말에 사족을 붙여가며 풀이하려고 하자, 조심 선사가 말했다. “그게 아니네. 조금 있다가 자네에게 설명해주겠네.”
잠시 후 선사는 정견에게 따라오라고 한 뒤 산길로 들어갔다. 한참을 걸은 뒤 멈춰 섰는데, 마침 물푸레나무 꽃이 만개해 향기가 계곡에 가득했다. 조심 선사가 정견에게 물었다.“물푸레나무 향기가 나지 않는가?”
“예, 납니다.”“나는 자네한테 조금도 숨기는 게 없네.” 그 순간, 정견은 도의 편재성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한다. -〈오등회원〉

곧, 선은 뜬구름 잡는 신통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깨닫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세계이다. 주무숙(周茂叔, 1017~1073)이 불인 요원선사에게 ‘도(道)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도 요원도 “눈앞에 보이는 푸른 산들이 제 모습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지 않은가”라고 답했다. 한편 오도시도 소동파(1037~1101)는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라고 하였고, 도오겐(道元, 1200~1253)은 “눈은 옆으로, 코는 세로로 달려 있다(眼橫鼻直)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정견에게 선의 스승으로는 조심이지만, 조심은 정견에게 글을 배웠다고 한다.

조심은 황룡파에 속하는데, 당시 황룡파는 사대부들과 왕래가 잦았다. 앞에서 언급한 소동파도 황룡파 동림 상총의 제자이다. 또한 정견은 사심 오신(死心悟新, 1043~1114)·영원 유청(靈源惟淸, ?~1117) 선사와도 도반처럼 지내며 선을 배웠다. 황정견이 회당 조심의 법맥을 받아 법맥도에도 등장한다. 다음 정견의 선 세계를 알 수 있는 시를 보자. 

“만리의 푸른 하늘에 구름이 일고 비가 온다. 인적 없는 텅 빈 산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華開)”

정견은 늘 하던 버릇대로 애정시(愛情詞)를 많이 지었다. 그러다 어느 날, 원통 법수(圓通法秀) 선사를 만났다. 법수 선사는 성품이 냉엄하고 직설적인 분이다. 선사가 정견을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는 대장부로서 어찌하여 좋은 글 솜씨를 겨우 이렇게 쓰는가?” 정견이 웃으며 말했다.  “저까지 말 뱃속에 집어 넣으시려구요?” - 〈수월재지월록〉

정견이 이렇게 말을 한데는 사연이 있다. 말을 잘 그리는 이백시(李伯時)란 사람이 있었다. 법수 선사가 그에게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삶의 원리를 설명하고 “말을 주제로 그리다보면, 말 뱃속에 들어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라고 꾸짖은 일이 있었다. 이백시는 이후부터 관음보살상을 그렸다. 정견이 이를 염두에 두고, 선사의 힐난을 농담으로 받아친 것이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당신은 달콤한 언어로 세상 사람들을 음욕이 일어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말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요. 그대가 지옥에 떨어질까? 염려됩니다.”

그 말에 정견은 술을 끊고, 육식을 즐기지 않았으며, 여인들을 멀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발원문을 지었다. 

“… 제가 이제 그 성품에 맞는 참된 말씀을 널리 찬양하고, 몸과 입과 뜻으로 헤아리고 관찰하면서 참회합니다. 저는 지난날 어리석음으로 인해 애욕을 품었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애욕의 갈증을 더했으며, 삿된 견해의 숲으로 들어가 해탈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부처님을 마주해 발원을 세우고, 서원합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음욕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 삼가 바라옵나니, 시방세계를 꿰뚫고 만 가지 덕으로 장엄하신 불보살님이여! 티끌처럼 수많은 세계에서 저를 위해 증명해 주소서. 만약 다음 생에 태어나 이 사실을 혹 잊어버리거든 부디 가피를 드리워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거두어 주소서. 허공 같은 법신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예배합니다.”

정견은 발원문을 작성한 이래로 평생 자신의 발원을 저버리지 않고, 아침에 나물죽 한 그릇과 점심에 나물밥 한 그릇만 먹으면서 참선하였다. 정견이 정치적으로 역경에 처했지만, 선수행으로 가난과 고난을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친구에게 이런 시를 보냈다.

“만사가 모두 한 가지 근본인데,/ 생각이 많으면 그것이 선의 병통이네./ 답답함 밀쳐내면 새 시가 떠오르고,/ 발자국 잊으면 토끼 다니는 길 드러나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니 진에(塵粒)와 환의 본성을 알겠네./ 몸 굽혀 그윽한 향기 맡으니,/ 마음이 저녁 경치와 함께 고요하네.” - 〈차운답빈노병기독유동원〉 二首之一

정견은 이런 시를 벗에게 보내며, 자총(自聰, 임제종 승려)과 해회 연이(海會演二) 선사에게 귀의할 것을 권하면서 “깊이 선열을 구하고, 생사의 근원처를 모두 보게 되면, 근심·음욕·분노 등이 마음에 발붙일 곳이 없으며, 병에 근본이 없거늘 어찌 그 지엽이 해를 끼칠 것인가”라고 하였다.

또 친구에게 답한 편지에 ‘백가지 병이 다 내 안에서 나오니, 깨닫고 보면 본래 누가 앓았던가’라는 내용을 보냈다. 이와 같이 정견은 사대부 출신이지만, 문필가로서 그의 글은 선사상에 영향을 받아 후대까지 불자로서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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