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대품에 이 같이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60명의 제자들에게 전법선언을 하고, 우루벨라로 향하여 가는 도중에 우거진 숲속에서 앉아 쉬었다. 그때 부잣집 귀공자(貴公子)들이 숲속으로 아름다운 여인들을 동반하고 소풍을 왔다. 그런데 모두가 술에 진탕 취하여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한 기녀(妓女)가 재물과 보석을 털어 도망갔다. 잠에서 깬 귀공자들은 기녀를 찾아 숲 속을 헤매다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부처님을 만났다.

그들은 부처님께 다가와서 세존이시여, 도망치는 여자를 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자를 찾는 일이 중요한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한가?”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자아(自我)를 찾는 문제는 종교나 철학, 인문학에서 중심이 되는 키워드이다.

부처님은 절대자인 신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주장하는 신의론(神意論)을 부정하고,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공이 인간(중생)임을 주장하였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원인과 관계의 조건에 의해서 결과가 생성된다는 인과법칙과 연기법칙을 주장하였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 사람의 귀천과 존재의 가치가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였다.

술에 취해서 자신을 잃어버린 귀공자들의 이야기는 초기 불교 교단사에서 중요한 전법 일화이다. 한 순간 술에 취해 방탕했지만 본래 총명한 청년들은 부처님을 만나 여자를 찾는 일이 중하냐?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중하냐의 한마디 설법을 듣고 단박에 전미개오(轉迷開悟)하여 회심(回心)하였다. 쾌락의 극단을 추구하는 중독증은 나 자신은 물론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부처님은 시(게송)로 설법하였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쉼 없이 불타고 있는데 너희는 어둠속에 덮여 있구나.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느냐.” (법구경)

그들은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의 성자로 새로 태어났다. 극단의 쾌락주의를 반성하고, 중도의 균형적인 삶의 길을 깨달았다. 법사는 설법할 때는 먼저 청법 대상자의 나이, 성별, 직업 등과 어떤 성격의 법회인가를 알아서 청법 대중이 무슨 설법을 원하는지를 파악하여 거기에 알맞는 주제를 정하여 수준에 맞는 맞춤형 설법 즉, 대기설법(수기설법)을 해야 한다.

<카네기 자기관리론>에는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줘야 감동을 받는다고 하였다. 엉뚱하게 채식주의자에게 육식을 강요하는 육포(肉脯)설법을 한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설법은 부처님 말씀인 경전에 근거하여 설해야 신뢰가 있고 권위가 선다. 신변잡기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설법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게송이나 시를 낭송해주면 효과가 크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가 없다(오온개공, 무아설)’, ‘나의 본래마음인 자성을 찾으면 부처가 된다(견성성불)’, ‘중생(인간, )이 부처다’, ‘나의 괴로움을 없애는 지혜(사성제)’ 등의 가르침이고, 거기에 따른 수많은 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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