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조계종 가사원, 가사 제작 과정 공개

스님과 재가자 소수정예 모여
연간 1500벌 이상 가사 제작
가사원 존재 모르는 불자 많아
윤달 든 올해 동참 늘어나길

가사원에서만 13년째 근무하는 조래창 재단사가 가사 테두리 재봉작업에 앞서 가위로 가사 크기를 재단하고 있다.

가사는 가장 수승한 법의(法衣). 일반적인 승복과는 달리 교단 설립부터 존재해온 승가의 상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인 아난존자와 함께 왕사성 남쪽으로 유행하며 논과 밭두렁이 가지런하게 정비된 것을 보고 법의를 만들도록 해 지금의 9가지 가사가 전해진다.

한국불교는 이런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래전부터 윤달이 든 해에 대대적인 가사불사를 해왔다. 올해 경자년 역시 윤4월이 들어 전국 사찰은 방생법회부터 기도정진까지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지만 가사불사 소식은 유독 뜸하다. ‘바느질 세 뜸만 떠도 공덕이 된다는 가사공덕은 옛말이 된 걸까? 어쩌면 이 시대, 가사의 중요성을 사부대중이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연간 1500벌의 가사를 생산하는 조계종 가사원을 직접 방문,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가사를 보며 그 가치를 되짚어봤다.

가사 1벌로 수행 생활 어려워
드르르륵드르르륵.’

가사 조각이 겹쳐지는 ‘조’ 부분을 재봉하는 강금임(57) 씨.

210일 서울 일원동 전국비구니회관 1층에 자리 잡은 가사원. 묵직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지런히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요란하다. 가사 원단이 수북이 쌓인 널찍한 공간에서 한쪽은 가위질이, 다른 한쪽은 재봉이 한창이다. 5명 남짓한 재가불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가사원은 지난 2006년 지금의 통일가사도입과 함께 설립됐다. 삼보륜이 직조된 괴색 통일가사는 승가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조계종 승려라는 소속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구족계 수계식이나 법계품서식에서 스님들에게 주어지는 가사 전부를 가사원이 도맡아 제작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가사원의 존재조차 모르는 불자들이 많다.

가사원이 설립된 지 벌써 14년이나 지났어요. 당연히 많은 분들이 가사원을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최근에야 느꼈죠. 가사원이 널리 알려져야 가사불사도 활성화될 텐데.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라서 우선 가사공양에 대한 내용을 담은 포스터와 리플렛을 전국 교구본사에 배포했습니다.”

가사원 운영국장 돈오 스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과거에는 스님에게 가사 한 벌 공양하는 일이 큰 공덕으로 여겨졌는데, 요즘 그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스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계식에서 스님들에게 주어지는 가사는 모두 중앙종무기관 예산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가사 1벌만으로는 수행 생활에 지장이 많다. 그래서 스님들은 적어도 2~3벌의 가사를 돌려가며 사용한다. 문제는 수계식 가사 외에 별도로 개인에게 필요한 가사는 사비를 들여 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여유분 없이 가사 1벌로 평생을 보내는 스님들도 많다.

사미·사미니가 사용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가사인 만의를 만드는 데는 10만원의 제작비가 소요된다. 그리고 법계별로 제작비가 조금씩 높아져 대종사·명사가 수하는 25조 가사를 만드는 데는 50만원이 필요하다. 2018년 조계종 승려 소임공제에서 연간 6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얻은 스님이 28%, 1800만원 미만은 71%인 점을 감안할 때 불자들의 가사공양은 스님들의 수행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가사는 6~7벌 내외. 가사 조수에 따라 소요시간 차이는 있지만 가장 많이 제작되는 21조 가사 기준으로 그렇다. 가사원은 올해 윤달이 들어 평년보다 많은 2000~2500벌의 가사 제작 계획을 세웠지만 가사공양 문의는 아직 많지 않다.

가사 제작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장의 가사조각은 한 번에 전동톱날로 재단한다.

지극정성으로 제작되는 가사
지금의 가사 제작과정은 1960~70년대 스님들이 바느질로 손수 가사를 지어 입던 시절보다 간소해졌지만 여전히 여러 단계를 거친다. 제일 먼저 섬유업체에서 삼보륜이 직조된 통원단을 가사원에 보내면, 가사원에서 본격적인 재단 작업이 시작된다. 가사를 수할 스님의 키와 몸무게, 가사 조수에 맞춰 원단을 자르고, 각각의 조각을 재봉으로 이어 붙여 밭 전()’자 모양을 만든다. 가사를 수하는 스님과 이를 보는 중생이 모두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재봉이 끝나면 가사를 편히 접을 수 있도록 다림질하고, 테두리 작업과 가사를 고정하는 연봉·고리를 만든 뒤 명찰을 붙여 풀을 먹인다. 글이나 말로 하는 설명은 간단해 보이지만 현장서 마주한 제작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13년째 가사원서 붙박이로 근무하는 조래창(62) 재단사가 쉴 새 없이 가위질하며 말을 건넸다.

가사는 일반승복과 달리 조수가 많아서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여기(가사제작)에만 집중해야 되거든요. 최고의 법의를 제작한다는 자부심 없이는 못 만들죠.”

순간 13년간 한 자리에서 법의를 만들어왔다는 그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가사를 만들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그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어려움 없이 항상 재미있게 일한다고 대답했다. 가위질에 고정된 그의 눈길을 따라 거침없이 잘려나가는 가사 원단이 대답을 증명하는 듯하다.

가사를 고정하는 연봉을 만드는 모습.

현재 가사원에는 운영국장 돈오 스님을 비롯해 사무간사, 조래창 재단사, 이연순·백영미(다리미), 강금임·강희례(재봉) 씨가 근무 중이다. 적게는 7~8, 많게는 10년 넘도록 함께 합을 맞춘 이들 손에서 연간 1500벌 이상의 가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을 인재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스님들 손으로 직접 가사를 짓던 아름다운 전통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가사 짓는 일에 더 이상 스님들이 관심 갖지 않으며 생긴 현상이다. 이런 위기감을 인식한 가사원은 앞으로 스님들을 위한 가사 제작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가사원 도편수인 무상 스님을 모시고 전통가사 만드는 방법을 교육하려 해요. 아무래도 가사는 옛날부터 스님들이 직접 만들었던 전통이 있으니까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을 세우진 않았지만 1~2년 단위로 스님들을 모집해서 교육할 생각입니다. 가사 제작에 대한 일반인들의 교육문의도 있었지만 스님들 전수부터 공개모집 형식으로 진행할 것 같아요.”

가사원 운영국장 돈오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종단 통일가사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역사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많은 불자들이 가사불사에 동참해 가사의 위상을 높이자는 호소도 느껴졌다.

스님들께서 간혹 가사 제작을 승복점에 맡기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종단에 가사원이 있고, 모든 스님들의 치수를 기록해 갖고 있기 때문에 가사불사만큼은 이곳에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고의 공양, 최고의 공덕에 사부대중이 한마음으로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취재를 마친 오후 5, 다시 커다란 문을 밀고 가사원 밖으로 나왔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내일 다시 솟아오르듯이 밤새 한숨 돌릴 재봉틀도 아침 해와 함께 부지런히 돌아갈 모양이다.

가사제작 문의 (02)3412-7867

사미·사미니계 수계식에서 수계자들에게 주어질 가사. 수계자의 키와 몸무게, 가사 기장 등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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