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최주현

중국 고사에 나오는 백아와 종자기를 생각하게 된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종자기처럼 환자의 숨소리를 듣고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지음의 벗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호스피스 병동서 임종기도를 요청할 경우 환자가 의식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특별한 갈등 없이 임종 기도를 드리고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시킨 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 뇌졸중으로 3년간 투병하다 갑자기 폐렴으로 임종에 다다른 환자가 있어 임종 기도를 가게 되었다.

의사가 임종을 준비하라는 지시에 따라 친지들과 가족들은 모두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병실에 들어가 이전처럼 참회 기도와 임종 전 수계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그 아내와 딸에게 인사를 시킨 후 나 또한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가만히 환자의 눈을 마주했다. 환자는 호흡이 목에 걸려 힘들게 숨 쉬는 상태고, 눈은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봤는데 환자의 그 눈빛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스쳤다.

환자를 바라보는 내 옆에서 그의 아내가 “3~4일째 이렇게 밤낮으로 눈을 뜨고는 감지를 않아요. 잠도 안자고, 이렇게 눈 못감고 가실까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며 돌아왔고 절에 와서도 계속 환자의 눈빛이 나의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가족들은 발병 후 환자를 살리기 위해 2~3년간 노력했다. 딸은 직장까지 그만 두고 아버지 완쾌에 온전히 몰입했다. 이렇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가족 모두가 일념으로 노력했다. 갑자기 임종 기도와 가족들의 작별 인사 모습이 나 자신조차도 너무 낯설었다. 나는 순간 거사님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상태를 두고 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딸에게 전화해 아버지에게 지금 상황을 자세히 설명드리는 것이 어떨까라는 의견을 주었다. 딸은 나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며 그렇지 않아도 15일동안 아버지가 계속 아프시면서 중환자실에 계시다 일반 병실로 옮기는 과정서 제가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 아버지가 혼란스러우실 것 같아요라고 울먹였다.

다음날 새벽, 그 환자의 아내로부터 남편이 편안히 임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딸이 아버지 귀에 대고 그동안 중환자실을 오가며 위급했던 상황을 소상히 전했고, 의사의 조언으로 모든 일가친척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급했던 마음, 의료진들이 기도 삽입을 권할 때 아버지가 원치 않을 것 같아 하지 않은 일,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되길 바라는 것이 자신의 간절한 마음임을 오롯이 전하자 아버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르면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는 얘기를 전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준 딸의 지혜가 백아의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가 되어 세상을 향해 울리는 것 같았다. 딸이야말로 아버지에게 진정 지음(知音)’이라는 벗이 아니었을까?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