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불법(佛法)의 대의

임제가 법좌에 오르니 어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입니까?”

임제가 불자(拂子)를 세워 보였다. 물은 스님이 할(喝)을 하니 임제가 바로 때렸다. 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임제가 또 불자를 세웠더니 스님이 할을 했다. 임제가 또 할을 하니 스님이 머뭇거렸다. 임제가 바로 때렸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냐?”고 묻는 말은 〈임제록〉뿐만 아니라 다른 어록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불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 또는 ‘부처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같은 말이다.

서양의 어느 학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자기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선수행’이야말로 정체 파악을 위한 공부다.

질문을 받은 임제가 말을 하지 않고 불자(拂子)를 세워보였다. 불자란 ‘먼지털이’ 혹은 총채처럼 막대기 끝에 긴 털을 묶어 달아 놓은 기물이다. 원래는 모기나 파리 등 벌레를 쫓는 기구로 사용하던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번뇌를 털어 없앤다는 상징물이 되었다. 주장자와 마찬가지로 선사들이 법거량에 자주 사용하던 물건이다. 이것이 불법의 대의이니 보라는 듯이 물은 스님에게 세워 보였다는 말이다. 질문자가 할을 하고 임제도 할을 한다. 임제의 할에 물은 스님이 머뭇거리니 임제가 한 대 때리고 만다. 잠시 무언극이 연출되었다. 선문답(禪問答)은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초월하여 뜻과 뜻이 통해져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임제 당시 9세기 선사들의 법거량 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임제가 말했다.

“대중들이여, 무릇 법을 위하는 자는 몸과 목숨을 잃는 것을 피하지 않느니라. 나는 스무 살 때 황벽선사가 계신 곳에서 세 번 불법의 적적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몽둥이를 맞았는데 쑥대로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어. 지금도 다시 한 번 맞아봤으면 좋겠어. 누구 나를 위해서 좀 때려줄 사람 없는가?”

그때 한 스님이 나와서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임제가 방망이를 그 스님에게 주었다. 그 스님이 잡으려 하거늘 임제가 바로 때렸다. 임제가 대중을 향하여 공부인의 정신에 대하여 한마디 한다. 몸과 목숨을 버릴 각오로 공부에 임하라 하면서 자신이 스무 살 때 돌아간 스승 황벽의 처소에서 세 번 물었다가 세 번 맞았다는 옛이야기를 꺼내준다. 이를 요약 ‘삼도문법(三度問法) 삼도피타(三度被打)’라 하여 〈임제록〉의 대의처럼 드러내 놓기도 한다. 더 줄여서는 ‘삼도피타’라고만 말하기도 한다.

‘법을 물었다가 매를 맞았다’ 이 속에 불법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자신을 때려줄 사람 없느냐고 묻는다. 매를 맞고 싶다는 것 아닌가? 한 스님이 “제가 때리겠습니다”고 나선다. 임제가 몽둥이를 건네주려 하다가 받으려니 도리어 한 대 때려버린다. 여기서도 알 수 없는 선극(禪劇) 화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른바 선문답의 말이나 동작은 말의 논리를 떠난 불가사의한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