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이해의 길 32

오래 전 대학에서 ‘종교의 이해’라는 과목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그 강좌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당시 종교별로 조를 짜서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하고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했는데, 불교에 관한 보고서를 보고 조금 놀랐다. 불교를 힌두교의 한 유파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불교 관련 글을 참조한 것 같았다. 불교가 정체성을 상실하고 힌두교에 흡수되어버린 아픈 역사의 흔적이 그렇게 남아있었다.

2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도 정신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불교는 13세기 초에 인도에서 소멸하게 된다. 불교는 인도에서 왜 사라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하고자 한다. 불교는 외적으로 이슬람의 무력에 파괴되었고, 내적으로는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힌두교에 무너졌다. 이 아픈 역사가 오늘의 한국불교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이슬람 세력은 10세기 말경부터 인도의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침입을 시작한다. 그리고 12세기 말에 이르면 인도는 북부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까지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불교 신앙의 공간인 수많은 사찰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1203년에는 당시 불교를 대표하는 비크라마시라(Vikramasila) 사원이 이슬람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그곳 승려들 또한 목숨을 잃게 된다. 이는 불교의 소멸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침략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소멸했다는 설명은 너무 단편적이다. 아무리 수많은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해도 불교의 가치를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응했더라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도의 전통과 문화였던 불교가 그리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법이다. 불교와 같은 시대에 발생했던 자이나교는 지금까지 면면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내적 요인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교는 내적으로 정체성을 지키고 못하고 힌두교에 흡수되면서 스스로 소멸의 길을 걸었다. 힌두교의 화신(化身, Avatar)사상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힌두교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지만, 인도인들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와 유지의 신 비슈누(Vishnu), 그리고 죽음의 신 시바(Shiva)를 가장 선호한다. 여기에는 창조가 있으면 종말이 있다는 서구의 직선적 사유가 아니라 창조와 유지, 소멸이 계속 반복되는 동양의 원형적 사유가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유지의 신 비슈누는 물고기나 거북이, 왕자 등 10가지 모습(身)으로 자신을 나타내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석가모니 붓다였다. 다시 말하면 당시 인도인들에게 역사적 붓다는 비슈누 신의 아바타(Avatar)였던 것이다. 이렇게 불교는 힌두교의 일부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체성이 상실된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그렇다면 불교가 정체성을 상실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대승불교가 포용성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승은 불교의 대중화라는 명분으로 비불교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수용하였다. 그렇다 해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대처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불교적 색채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예컨대 대승 후기에 등장한 밀교는 그 순수성을 상실하고 성적 행위를 수행에 활용하는 좌도밀교(左道密敎, Tantric Buddhism)로 변질되고 말았다.

불교 소멸의 역사는 한국불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회통이란 명분으로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 비불교적인 요소들을 많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찰은 점집이 아니라 절집이다. 자기중심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불교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포용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오늘의 우리를 성찰해야 한다. 이것이 아픈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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