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좌적명

불광 펴냄/1만 4천원

 

‘영원한 수좌’, 봉암사 적명 스님 유고집
30년 적명 스님 일기 중 70편만 엄선해
평소 강조한 짧은 감로 법문 함께 실어
<해인지>등 인터뷰와 추모글도 수록해

연말을 맞아 다소 들떠 있던 지난 2019년 12월 24일,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이 전해졌다. 출가 이후 반백 년 넘는 세월을 토굴과 선방서 지내며 오직 수행자의 본분에 매진한 스님의 입적 소식은 불교계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추모로 이어졌다.

“영원한 수좌”, 스님을 일컫는 대표적인 명사이다. 출가 60여 년 동안 선 수행에 몰두한 스님은 평생 선방 어른을 위한 특별 대우도 마다하며 ‘수좌’로 남을 것을 고집했다. 오직 수좌로서의 행과 후학 지도에만 힘을 쏟았다. 언론 인터뷰를 허락한 일도 거의 없었고, 일반 대중을 위한 법석에도 잘 앉지 않았다. 물론 남겨 놓은 저서도 없다. ‘중이 중다워지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 스님에게 인터뷰나 법문, 저서를 남기는 일은 수행자의 길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님의 공부와 가르침의 흔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했으면 하는 게 세인의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이 남긴 일기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일기는 오직 수행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어떤 사족도 달 수 없을 만큼 간결한 문장은 평소 스님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스님의 일기 몇 편과 짧은 법문을 묶은 이 책은 스님의 삶과 수행의 뜻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픈 염원이 모여 간행된 적명 스님의 ‘첫 책’이자 ‘유고집’이다. 문장마다 서려 있는 스님의 치열한 삶. 그것은 거울이 되어, 한 개인을 넘어 시대를 이끌며 세상을 비출 것이다.

1장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30여 년 간 스님이 남긴 일기 가운데 70편의 글을 엄선해 엮었다. 끊임없이 번민하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모습과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치열한 ‘수행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좋은 곳, 좋은 때, 좋은 인연들을 구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스님의 모습은 바로 우리 속세인들을 향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2장은 선방서 수행자들에게 종종 하셨던 짧은 법문을 모았다. 일반 대중은 흔히 접할 수 없던 감로 법문으로, 스님의 음성이 옆에서 들리는 듯 생생하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어떻게 다뤄야 하고, 수행은 왜 해야 하며, 욕망은 어떻게 다스려 하는지 등 오랜 수행을 통해 스님이 깨달은 불법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3장에는 1989년 월간 〈해인〉지에 소개된 방송작가 이윤수 씨와 적명 스님 간의 인터뷰, 그리고 지난 1월 3일 휴심정에 게재된 법인 스님의 추모글을 수록했다. 적명 스님과의 짧은 인연이지만, 당시의 일화에는 토굴서 혼자 지내며 정진을 거듭해 가는 소박한 미소의 수행자, 그리고 배움의 길 위에서는 아랫사람에게도 서슴지 않고 묻는 어른스님의 겸손한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이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심 내용은 단연 ‘스님의 일기’이다. 일기 속에서 편편이 발견되는 수좌 적명의 진면모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있는 것 어느 하나 / 허상 아님이 있던가? 조그만 들꽃에 팔려 / 벼랑을 구를까 두렵노라”

일평생 수좌의 길만을 걸어 온 스님의 일기에서 우리는 ‘조그만 들꽃에 팔려’ ‘벼랑을 구를’ 것을 염려하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대중 처소로 자리를 옮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후학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두려워하는 자, 끊임없는 변멸 가운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걱정하는 자를 만나기에 이르면 우리는 색안경을 벗고 진짜 ‘적명 스님’과 마주앉게 된다. ‘세사를 초월한 경계’에 선 도인 대신 ‘뇌고로운’ 현재를 끊임없이 번민하는 ‘인간 적명’이 눈앞에 서린다.

그 가운데 매일같이 자신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에도 의지의 칼날을 세우고, 빈틈 하나 허락하지 않는 자기 성찰의 문장에 이르면 스님을 왜 ‘진정한 수행자’이자 ‘사표’로 여기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가는 시간이여! /나를 버리지 말라/부질없는 티끌 속에/나를 던지지 말라. 던지지 말라”

‘수좌’. 적명 스님을 이토록 적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더 있을까? 오직 ‘깨달음’을 향한 일에 몰두해 온 스님에게 이것 외의 어떤 수식도,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스님 스스로 적어내려 간 지난 행적을 더듬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고승 혜홍 각범의 게송에 대해 스님이 일기에 적은 것처럼 ‘매우 용감하다’고…….

“하루 열두 번 참회해도 부족하고 백 번을 새롭게 다짐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수좌의 마음속에 안일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자긍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장의 얼음이어야 한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유고와 법문에는 세간을 꿰뚫는 푸른 눈의 납자도, 천진하고 인자한 미소로 대중을 맞이하던 스승도 있다. 스님의 글은 진정한 깨달음, 진정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우리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우리를 위해 남긴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보살의 길’이다. 스님이 법문 때마다 강조한 말이다.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평소 불이(不二), 중도(中道)를 강조한 스님 법문에서도 관련된 대목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깨달음의 내용은 사실 자비입니다. (…)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나와 남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수행의 최종 목적은 일체 중생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 줄면 그만큼 타인과 만 생명과도 하나가 되어 행복해집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으니, 남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스님이 말하는 ‘보살의 길’이자 ‘깨달음’이다. ‘보살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스님 말씀은 이러한 핵심을 꿰뚫는 가르침이다.

번민의 고통 속에서도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 스님의 치열함은 사부대중을 향한 보살심의 발현, 바로 그것이다. 스님은 “나 같은 사람이 공부를 지어 얻고 마음이 열려 해탈을 성취한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안심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오래 해도 안 되는 사람, 못 하는 사람, 번뇌와 집착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 이루는 일이라면 이 세상 누구라도 해서 안 될 사람 없음이 너무도 충분히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겸손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적명 스님은… 1939년 제주도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했다. 나주 다보사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1959년 해인사 자운 율사에게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 자운 율사에 의해 비구계를 수지했다.

26세에 토굴서 우연히 보조국사의 〈절요〉를 읽다가 “수행을 하려면 반드시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는 구절을 보고, 크게 느낀 바 있어 무자 화두를 참구했다. 28세에 해인사로 가서, 1967년 해인총림이 개설되고 성철 스님이 방장에 추대돼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가행정진한 이래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 선지식인 전강 스님, 경봉 스님, 구산 스님, 성철 스님, 서옹 스님, 향곡 스님 등 문하서 법을 묻고 정진했고, 〈능엄경〉 변마장의 내용이 낱낱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화두선에 더욱 매진했다. 해인총림 선원장, 영축총림 선원장, 고불총림 선원장, 수도암 선원장,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 등을 역임하고, 전국수좌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정월, 청정도량인 봉암사에 주석하며 후학에게 수행자의 본분을 보였다.

간화선 선풍을 진작하고자 국제선센터 건립을 발원해 2015년 선원수좌회와 공동으로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을 본격 추진하고, 수좌복지회를 만들 것을 제의, 성사시켰으며, 봉암사에 원로 수좌를 모시기 위해 원로 선원을 건립했다. 2018년 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고, 2019년 12월 24일에 입적하니, 세속 나이 81세, 법랍은 60세였다. <사진제공=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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