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中道 정부’ 필요
작지만 큰 ‘中道 정부’ 필요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2.0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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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왜 정부를 필요로 할까?

비가 오는 날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사물놀이패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 꾕과리를 치며 연습을 한다고 가정하자. 교수와 학생이 사물놀이패에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사물놀이패는 비가 오기 때문에 건물 안에서 연습하고 싶어 한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를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시장에서 해결하는 방법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해결하는 방법부터 먼저 살펴보자.

시장에 맡긴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개 돈을 주고 받는 교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 교수와 학생은 조용함을 원한다. 사물놀이패는 연습을 원한다. 만약 교수와 학생이 돈을 거두어 사물놀이패에 주고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하자. 사물놀이패가 돈의 액수에 만족하면 연습을 중단하고 교수와 학생은 조용히 수업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쉽게 거둘 수 있을까? 누구나 돈을 내면 좋은데 어떤 학생은 모금을 거부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다른 학생들이 돈을 더 많이 내어 사물놀이패가 원하는 액수를 만들었다고 하자. 사물놀이패가 연습을 중단하면 돈을 낸 학생도 돈을 내지 않은 학생도 조용히 수업 받을 수 있다. 돈을 내지 않은 학생은 조용한 수업에 ‘무임승차’하는 셈이다.

시장 성공이 곧 정부 성공
시장·정부 대립인식 배제
‘중도’로 상호 보완력 확대

다시 어느 비오는 날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하자. 이번에는 돈 내지 않겠다는 학생이 증가할 수 있다. 돈 내지 않고도 조용히 수업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내지 않겠다는 학생이 증가하면 사물놀이패가 원하는 액수를 만들 수 없고 결국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자유에 맡겼더니 무임승차로 인하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경제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무임승차로 인한 시장의 실패이다. 즉 시장에 맡겨두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에 정부가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서 공공재를 공급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시장에 개입할까?

대한민국은 공공의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면 경범죄로 처벌한다. 사인간의 분쟁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시끄럽게 하여 수업을 방해하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 미국은 대학 캠퍼스 내에 대학 경찰이 있어 이런 경우 신속하게 출동해서 해결한다. 시장에 맡겨두면 조용한 수업이 불가능하기에 정부가 개입하여 조용한 수업을 보장한다. 이것이 정부가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하나의 사례다.

요즘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하여 온 국민의 불만이 매우 높다. 흔히 언론에 자주 이야기되는 주장은 ‘시장에 맡겨라’이다. 시장에 맡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시장에 맡긴다는 말은 돈을 주고 받는 거래에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보다 넓게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맡기자는 뜻이다. 서로 각자 알아서 주고 받으며 원하는 것을 갖도록 허용하자는 말이다. 정부가 모든 사항을 규율하는 것보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영국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식민지를 개척했을 때 초기 이주민은 정부가 없는 시대를 살았다. 영국 정부가 식민통치를 하기 전에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야 말로 농업, 상업, 목축에 종사하는 자유민들이 자유롭게 살았다. 과연 이들 정착지에 범죄가 있고 살기 힘들었을까? 뜻밖에도 이들은 매우 평화롭게 갈등없이 잘 살았다고 한다. 무정부주의자가 이 사례를 근거로 정부가 필요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보자. 만약 악인 몇 명이 식민지 초기 정착촌에 들어와 횡포를 부린다면 나머지 이주민들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힘을 합쳐서 이들 악인을 몰아낼까? 어쩌면 초기 정착촌은 워낙 가난했기에 악인이 모여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작은 규모이므로 서로 얼굴을 알고 보편적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왕따 당한다. 따라서 법이 없고 공권력이 없어도 저절로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공동체가 붕괴되고 안면 몰수하는 행위도 점점 증가한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몰인정하고 이기적인 각종 행위를 겪으며 산다.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용납되지 않지만 공동체가 파괴된 도시에서는 서슴치 않고 이러한 행위를 한다. 오늘날 법과 정부가 없이 대도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스스로 사이 좋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니 법과 정부가 필요없다며 아득한 과거의 원시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찬성하겠는가.

인간의 다툼은 무엇 때문에 생길까? 이익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데 이익 중에서 재물로 인한 이익이 갈등을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오래 근무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재산이 많은 노인이 사망하면 거의 대부분 자식 사이에 유산 다툼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란 겪어보아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돈 문제를 놓고 겪어보면 사람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돈 문제로 겪어봤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불교는 인간 세상의 초기에는 정부가 없고 자유롭게 살았다고 보고 있다. 경전에 설해진 이상사회는 소유의 개념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사유재산 제도로 인한 갈등이 생기면서 무기를 만들고 약탈이 생기며 빈궁이 있었다고 경전은 설한다.

<장아함경>을 보면 부처님은 울단왈 사람이 염부제 사람보다 낫다고 말하시면서 ‘나의 소유라는 것이 없다’고 설하셨다. <장아함경>은 “각각 밭을 나누고 경계를 달리 해 저와 나가 있음을 계산했다”고 설명하면서 그 이전에는 사유재산이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빈부격차는 원시시대에 토지의 배분을 둘러싼 불평등이 기원이라는 학문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이러한 학설은 경전의 설명과 서로 부합한다. <장아함경>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전지(田地)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다툼이 생겼다. 이에 백성들은 자기를 방위하기 위해 드디어 칼과 활 따위의 무기를 만들어 서로 해치고 침로하고 약탈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비로소 빈궁이 있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탄생했다는 경전의 설명은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탄생했다는 신고전파 경제학과 맥을 같이 한다. <장아함경>은 사유재산으로 인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탄생하는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제 차라리 한 사람을 세워 주인으로 삼아 이것을 다스리게 해야 하겠다. 보호해야할 자는 보호하고 꾸짖어야할 자는 꾸짖게 하자. 우리가 각각 쓰는 쌀을 줄여 그것을 그에게 대어 주어 모든 송사를 다스리게 하자.”

사유재산의 시발점은 시장자본주의 출발을 암시한다. 이상사회에서 소유의 개념이 없이 경제활동을 하다가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다툼이 생겼고 이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탄생했다는 관점이 불교의 견해이다. 불교가 보는 세계는 연기법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다. 수많은 요인과 조건이 어우러져 결과를 낳고 결과는 또 원인이 되고 원인은 또 결과가 된다. 이러한 연기의 세계에서는 요인과 조건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요인과 조건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발생한 결과도 임시일 뿐 수시로 변하니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공(空)하다. 따라서 수시로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정부보다는 자유롭게 변화하기 쉬운 시장이 더 낫다.

우리는 여기서 시장과 정부라는 이분법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비록 편의상 정부와 시장을 구분했지만 연기의 세계에서 모든 사물과 현상은 독자적 실체가 없기에 정부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정부, 시장, 시민사회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한다. 정부, 시장, 시민사회는 독자적 실체가 있는게 아니고 서로 연기하여 임시로 존재하므로 정부에 시장과 시민사회의 요소가 있고, 시장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요소가 있으며 시민사회에 정부와 시장의 요소가 있다. 시장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요소를 외면해서도 안되고 외면 할 수도 없고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도 시장의 요소를 외면해서도 안되고 외면할 수도 없다.

세계경제위기에 하버드 대학생들이 멘큐라는 교수의 경제학 수업을 거부했다. 멘큐의 경제학 교과서는 가장 많이 팔린 교과서이고,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국내 대학 경제학 수업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멘큐는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인데 학생들이 시장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실패에 분노하여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비록 우리가 가능하면 시장에 맡긴다는 원칙을 따른다해도 지나치게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지 시장의 자생적 해결역량까지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경전에 설해진 내용을 근거로 보면 불교는 가능하면 모든 일은 시장에게 맡기는게 좋다는 정치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시장이 실패할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시장도 실패하지만 정부도 실패한다. 국민이 시장실패에 실망하면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큰 정부로 발전한다. 국민이 정부실패에 실망하면 정부가 권한을 내 놓으면서 작은 정부로 회귀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작은정부, 큰정부, 작은정부, 큰정부를 거치며 시계추처럼 변화해왔다. 불교는 큰정부라는 극단도 작은정부라는 극단도 떠나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도란 중간규모의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규모가 중도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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