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라밀(波羅蜜)과 나룻배

먼지 탄 책꽂이를 눈으로 더듬다가, 책등의 위쪽이 일부 떨어져 나간, 청색조의 양장본 책에 눈이 멈추었다. ‘~의 沈默’이 눈에 들어온다. ‘님의 沈默’에서 ‘님’ 글자 부분의 책등 껍질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책을 뽑아들고 끝 쪽의 판권장(版權張)을 살피니 ‘정가 330원’이고, 1950년 초판을 찍어, 1970년에 10판째인 발행본이었다.

대학생 때 자주 들고 다니며 읽은 탓에 모서리들이 많이 헤졌다. ‘타고르 시선’과 함께 애송하였던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펼친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한용운 선사의 ‘나룻배와 行人’이란 시의 전반부이다. ‘나룻배와 行人’은 바라밀(波羅蜜, Skt. p?ramit?)을 시어로 표현한 것이다.

바라밀은 보살 대행(大行, 큰 덕행)을 지칭한 것으로, ‘모양에 집착한 착한 일(有住相의 善行)’보다는 ‘집착이 없는 큰 덕행(德行)(無住相의 大行)’을 뜻한다. 바라밀은 능히 자기 스스로 불도(佛道)를 닦고 그 얻은 바에 따라 다시 다른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궁극에 다다른 것이니 ‘사구경(事究竟)’이라 뜻번역한다.

또 이 덕행에 힘입어, 생사의 고통이 있는 차안(此岸)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열반의 피안(彼岸)에 도달하므로 ‘도피안(到彼岸)’이라 뜻번역한다. 이 덕행으로 인해 능히 한없이 넓고도 먼 온갖 세속사(世俗事)에서 중생을 제도하니 ‘도무극(度無極)’ 또는 ‘도(度)’라 뜻번역하기도 한다.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p?ramit?를 음사(音寫)한 것으로, p?ramit?의 어원을 ‘p?ram(to cross over, to save)’으로 보면 ‘건넨다[도(度)]’가 되고, 어원을 ‘p?rama(supreme, excellent)’로 보면 , ‘무극(無極, 궁극, 최상)’이 되니, ‘도무극(度無極)’은 ‘건넨다’는 뜻과 ‘궁극’의 뜻을 합성한 뜻번역인 셈이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위에 언급한 시 ‘나룻배와 行人’의 후반부이다. 중생은 보살을 있게 하는 원천이다. 피안으로 건네줄 중생이 없다면 어찌 보살 대행이 있을 수 있으랴.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바라밀다를 바라밀다라 부르나이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까닭이 있으니, 첫째, 물들고 집착함[染着]이 없는 까닭이요, 둘째, 돌아보고 생각함[顧戀]이 없는 까닭이요, 셋째, 죄와 허물이 없는 까닭이요, 넷째,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 다섯째, 바르게 회향하는[正廻向] 까닭이니라.’”

[世尊何因?故。波羅蜜多?名波羅蜜多。佛告觀自在菩薩曰。善男子。五因?故。一者無染著故。二者無顧戀故。三者無罪過故。四者無分別故。五者正?向故。] <解深密經 T0676_.16.0705c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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