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이해의 길 31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 들어봤을 소리다. 이것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 불리는데, 글자 그대로 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다. 주로 경전을 독송할 때 이 주문을 읊조리면서 시작한다. 이런 진언이나 만다라(Mandala) 등을 통해 깨침의 세계를 드러내는 불교가 바로 밀교(密敎)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불교를 비밀스런(密) 가르침(敎)이라고 했을까?

밀교란 비밀불교의 준말인데, 언어나 문자와 같은 형태로 드러내는 현교(顯敎)와 대비되는 말이다. 붓다의 깨침은 언어의 길이 끊어진(言語道斷) 종교적 체험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것이 본래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언어를 통하지 않고 이를 전할 방법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붓다가 45년 동안 수많은 언어를 통해서 자신이 깨친 진리를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밀교에서는 이러한 언어적 설명 방식이 깨침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보다는 만다라, 진언과 같은 상징이나 소리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밀교는 대승불교 후기에 해당되는 7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사이에 유행한 사상이다. 주요 경전으로는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 등이 있다. 밀교의 수행 방식인 진언은 본래 불교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도 사회에서 유행하던 종교 의식이었다. 그들은 병에 걸리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주문을 외우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다. 바라문교의 경전인 〈베다〉나 〈우파니샤드〉 등에는 수많은 주문들이 등장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주술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붓다는 바라문교의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주술적이고 은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주술이나 비법을 행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당시 정신문화는 바라문들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붓다는 자신이 깨친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개방을 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개방성은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불교는 눈뜬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와서 직접 볼 수 있는 열린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 후기에 이르러 주술적인 방식이 불교계에도 수용된다. 당시 바라문교는 인도의 토착신앙을 포용하여 힌두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주술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는 그들의 요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대승에서는 교화의 방편으로 진언을 수용하여 불교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당시 주류였던 중관이나 유식이 너무 어려워서 대중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요인도 작용하였다. 그만큼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앙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밀교의 진언에는 산속에서 뱀을 만날 때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주술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본래 진언(眞言, Mantra)은 ‘심성’이란 의미의 ‘만(man)’과 ‘파내는 연장’을 뜻하는 ‘트라(tra)’가 합성된 말이다. 두 단어를 연결하면 진언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본래의 성품을 파내는 도구, 즉 참(眞) 소리(言)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의미를 새기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진언을 외우면 깨침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밀교에서 주목한 것은 경전에 설해진 가르침이 아니라 붓다의 깨침 그 자체였다. 깨친 눈으로 보면 한 송이 장미와 그 위에 날아든 벌과 나비 등 모든 존재가 법신(法身), 즉 진리 자체라고 한다. 밀교의 주불(主佛)인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처다. 우리가 사는 곳은 큰 태양(大日)과 같은 광명이 빛나는 부처들의 공간이자 진리가 현현(顯現)된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까 밀교에서는 진언이라는 붓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만다라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비밀스럽게 말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밀교에서 말하는 진짜 비밀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부처라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법당에서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옴 마니 반메 훔’ 등의 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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