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 일러준 잊지 못할 스승
‘인생의 길’ 일러준 잊지 못할 스승
  • 현불뉴스
  • 승인 2020.02.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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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암 스님을 생각하며

내가 처녀시절 때, 아버지께서는 “지금 우리 불교계의 어른이신 윤고암 스님은 참으로 자비보살이시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1967년 11월, 나는 부산불교청년회가 해인사로 수련대회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불심이 깊은 아버지였지만 보수적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허락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련대회에 참석하고 싶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께 멀리 사는 친구 집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몇날 며칠을 졸라 겨우 허락을 받았다.

우리 일행은 해인사 홍제암에 짐을 풀고 머물게 되었고, 용탑선원에 계셨던 고암 스님과 퇴설당의 성철 스님을 비롯해 지월, 일타, 지관, 법정, 보성 스님을 차례로 찾아가 친견했다. 인사도 드리고 법문도 들을 수 있었다. 법랍에 상관없이 스님들만 보면 좋을 때였다. 불교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마냥 신기하고 새롭던, 그야말로 단단한 초발심으로 살았던 시절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와 도반들은 우리가 얼마나 큰 복을 누렸는지 알았다. 좀처럼 가까이서 뵐 수 없는 선지식들을 우리는 그렇게 가까이서 뵈었던 것이다.

그때는 고암 스님께서 종정으로 취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박3일의 짧은 수련대회 기간 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경험과 법문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내겐 신심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 보았던 새벽예불의 장엄하고 신성함과 당시 한 시대의 선지식이었던 이른바 ‘큰스님’들과 한 자리에서 차담을 나눌 수 있었던 일은 그야말로 영광스럽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수련대회가 끝나고 수계식을 앞둔 우리 회원들은 고암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싶었지만 스님은 한사코 당신보다 더 훌륭한 스님들이 계시다며 마다하셨고, 우리는 떼를 써서 고암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받은 법명이 대원성이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푸근하고 인자한 스님의 모습과 미소, 그리고 스님의 법문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불교신문에서 내 이름과 법명을 보신 것이다. 나의 거짓말은 들통이 났고 나는 나의 행동에 실망한 아버지로부터 큰 꾸중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아버지도 평소 존경하고 있던 스님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나는 고암 스님께서 받아주신 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해인사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는 길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하루 종일 버스를 타야했다. 날이 어두워 도착한 우리 부부는 아래 마을 청운장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새벽 6시쯤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아셨는지 고암 스님이 우리가 묵고 있는 곳으로 전화를 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는 “용탑선원에 불공 준비를 다해두었으니 10시까지 올라오라”고 했다. 시간에 맞추어 올라갔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찰밥공양과 과일, 꽃 등 스님이 공양 준비를 너무도 잘해 주셔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우리 부부에게 그 날 스님의 따뜻함은 잊을 수 없는 큰 위로와 응원이었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는 스님이 아들 이름까지 지어 보내셨다. 이후로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아이들의 안부를 늘 챙겨주셨다.

어느 겨울, 눈이 많이 내린 새벽이었다. 스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도반과 함께 뵙겠다고 했더니 길이 좋지 않으니 다음날 오라고 했다. 나와 도반은 스님이 너무나 뵙고 싶어 그 옛날처럼 떼를 썼지만 스님은 네 번이나 전화를 걸어 “오지 말라”고 하셨다. 아쉬웠지만 스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스님을 뵈러갔다. 스님이 치과 치료를 받고 계실 때라 깨죽을 끓여갔는데 스님은 부처님께 먼저 올리고 우리를 위해 불공을 올리며 축원도 해주셨다.

언젠가 대원성이라는 법명이 내게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님께 다른 이름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스님은 “아니야 그 이름이 좋은 거야”하시며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 빙그레 미소를 머금던 스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그 이후로 내가 내 마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대원성(大圓性)’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곤 한다. 스님이 내게 주신 것은 법명 세 글자가 아니었다. 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이다.

고암 스님(오른쪽)과 대원성 보살.
고암 스님(오른쪽)과 대원성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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