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타인 공경하는 ‘가도’ 문화

아웅산 수찌, 인권상 수상차 방한
미얀마 사람들이 줄지어 절 올려
국가고문 숭배한다는 오해 아쉬워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고유의 풍습

네덜란드 미얀마 유학생들이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에게 ‘Gado(가도)’를 표하는 모습. ‘가도’는 미얀마에서 스승이나 어른들에게 표하는 존경심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안타까운 사회문화 중 하나는 나이에 따른 차별이 심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꼰대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꼰대는 원래 가정에서 아버지 혹은 학교 선생님을 지칭하던 청소년들의 은어였다. 하지만 이것이 최근 들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꽉 막힌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고방식이 답답한 어른들을 부르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다.

아웅산 수찌에 절 올린 까닭은
한국의 이러한 사회흐름 속에 있다가 미얀마 사회에서 어른들과 젊은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예절문화를 보고 크게 놀랐다. 처음으로 미얀마의 예절문화를 보고 놀란 것은 2013년도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이 광주인권상을 받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다.

이때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은 서울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묵을 예정이었고, 한국지부 NLD 당원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을 호텔인근 도로에서부터 로비까지 줄지어 열렬히 환영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Me Su” 혹은 “Mother Su(어머니 수찌)”를 외치며 절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메쑤 짠마바세!(수찌 어머니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며 절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에서, 스님에게 절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님과 스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하는 만큼 존경하는 사람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절을 하는 문화가 있구나였다. 미얀마의 불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미얀마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위였다.

하지만 미얀마가 불교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것을 알지 못한 채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아웅산 수찌를 신격화하는 미얀마 사람들’ ‘아웅산 수찌는 또 다른 독재적 인물’ ‘아웅산 수찌를 부처님처럼 생각하는 미신적인 미얀마 사람들이라고 미얀마의 문화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미얀마의 문화적 현상을 바라볼 때는 반드시 미얀마는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나라라는 관점을 갖고 바라보아야 미얀마 사람들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스스로 가졌던 이런 생각이 미얀마에서 유학을 하면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미얀마 문화를 직접 체험할 때마다 느낀다. 특히 앞서 언급한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에게 절을 했던 미얀마 사람들의 행동은 미얀마 문화 중 ‘Ananto Ananta Ngar par(아난더 아난다 응아 바)’의 사상에 기초한 ‘Gado(가도)’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Ananto Ananta Ngar par’에서 ‘Ananto Ananta’는 빨리어, ‘Ngar par’는 미얀마어다.

한국말로 풀이하면 끝없고 끝없는 다섯 분이다. ‘다섯 분에는 삼보(三寶, ··)’부모님·선생님이 포함된다. , ‘끝없는 공덕과 은혜를 지닌 삼보와 부모님, 선생님의 공덕과 은혜를 미얀마에서는 ‘Ananto Ananta Ngar par’라고 한다. 또한 ‘Gado(가도)’‘(삼보를 예경하는 마음처럼) 경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미얀마에서 한 개인에게 삼보(三寶, ··)’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가족과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최우선이고 중요하다. 자신의 부모님을 매우 사랑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다. 먼 여행길을 떠나기 전 부모님께 가도를 하기 위해 큰절을 3번 올린다. 부모님 다음으로 중요한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미얀마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다.

선생님에게 예의 없게 행동하는 학생들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학생들은 학년이 끝날 때마다 스승 경배의 날을 마련하여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에 감사하는 선물과 함께 절을 올리는 행사를 한다. 나중에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각자의 직장이 들어가서도 본인의 은사였던 분에게는 시간을 내어 찾아간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현금을 마련하거나 선물을 사서, 시간이 지나서도 옛 가르침에 대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다.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이 미얀마 사원을 방문해 스님들에게 가도하고 있다.

경지 높은 예절문화에 감동
양곤대학교 박사과정의 유학기간은 총 5년이다. 1년은 수업을 듣고 나머지 4년은 논문을 쓰는 기간이다. 2019년에 1년간의 수업기간이 끝나고 각 수업마다 가도를 하기 위해 5천원 혹은 1만원 정도를 십시일반으로 모아 선생님들에게 드렸다. 한국에서는 사실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돈을 모아 드리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돈을 선생님에게 드린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핏 촌지나 뇌물처럼 여길 수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 친구들은 자신들을 1년 동안 성실하게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에게 혹은 선물을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얼마나 감사하고 존경하는지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는 돈이나 선물이라는 공양물로 대체하여 경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도문화 말고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점심시간에 가깝게 끝나는 수업을 맡은 교수님의 식사를 학생들이 준비해서 대접하는 것이었다. 산스크리트 문학 수업이 끝난 후 박사과정 동기 친구들이 분주하게 학생식당으로 뛰어가 교수님의 밥과 반찬들을 사와서 접시 하나하나에 옮긴 후 교수님에게 절을 한 뒤 식사 대접을 하는 모습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대학교에서는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긴 하지만 직접 늘 챙겨드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러한 문화가 가정과 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의 직장과 일반적인 사회 관계 그리고 정치에서도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생님이라는 의미가 반드시 학교 교사를 뜻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직장이라면 자신의 부서에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 그리고 회사의 회장에게는 자신의 선생님과 같은 존경심을 표현한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가 한 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미얀마 직원들이 단체로 자신의 방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해서 크게 놀랐지만 그 뜻을 알고 무척 감동받았다고.

사회는 어느 한 분야 또는 한 계층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어른과 젊은이들이 늘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Ananto Ananta Ngar par(아난더 아난다 응아 바)’의 사상에 기초한 ‘Gado(가도)’ 문화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어른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존경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늘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당연하다는 듯 젊은이들의 인사를 받지도 않는다. 미얀마 어른들은 젊은이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해서 아랫사람들을 막 대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만큼 아랫사람들에게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앞서 미얀마 사람들이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에게 절을 한 것은 국가고문을 맹신해서가 아니다.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을 “Me Su(어머니 수찌)”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공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미얀마 국민들의 어머니이자 어머니와 같은 공덕과 은혜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Me Su(어머니 수찌)”라고 부르는 것이다. 만약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에게 국민적인 신뢰가 깨지는 일이 발생하면 미얀마 국민들은 올바른 견해를 통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반드시 불교적인 관점에서 미얀마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을 바라보아야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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