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최주현

지금은 동안거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화두에 몰입하며 용맹정진하는 선방 스님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지난 하안거 때 나에게 큰 화두를 던져준 환자분이 떠오른다.

지난 여름이었다. 호스피스병동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 환자분 보호자가 나와 면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좋다고 승락하자 잠시 후 지하 2층 불교법당으로 키가 작은 60대 후반 여자 분이 들어왔다. 그리고 던진 첫 마디가 저는 불교가 정말 싫습니다였다.

저희 남편이 천도재를 지내고 싶어 하는데 그걸 좀 물으러 왔습니다. 게다가 죽은 후에는 꼭 절에 있는 납골당에 모셔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시댁이고 친정이고 모두 개신교 신자죠. 그래서 식구들은 펄펄 뛰고 절대 안 된다며 난리입니다.” 여인은 법당 부처님을 이따끔씩 흘깃 쳐다보기를 반복하며 저는 이제 불교도 싫고 기독교도 싫습니다라고 울먹였다. 그리고 그간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편은 신학대까지 나온 개신교 신자인데 7년 전 하던 사업이 기울자 갑자기 불교로 개종을 했단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되돌아오겠지 생각했는데 자신의 기대와 달리 남편은 신심 견고한 불교도로서, 임종을 앞둔 상황이 됐다.

말을 들으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천도재를 하라 해도 50방이요, 하지 말라 해도 50, 사찰서 운영하는 납골당에 모시라 해도 50방이요, 모시지 말라 해도 50방인 것이다.

호스피스병동을 찾아 환자를 직접 만났다. 그의 아내가 설명하자 환자는 승려인 나를 보고 반기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환자는 이미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노트에 간신히 글자를 써서 의사표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천도재를 지내고 싶다 하셨다고요?”하고 큰 소리로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재 지내주고 싶은 분이 있으세요?” 재차 물으니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종이에 사고난 사람이라고 써보였다. 환자의 다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환자는 지쳤는지 한참 숨을 고르더니, 다시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썼다. 부모님에게 이승에서 마지막 효도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에 나는 거사님 요즘 시기가 백중 천도 중인데요. 우리 법당에 위패 써서 백중 천도재 지내 드리면 어떨까요하고 물으니 환자가 고개를 끄떡이며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사고난 사람 영가부모님의 위패를 휴대폰에 사진으로 담아 보여주니 만족한 표정이다. 다행이었다. 한 방망이는 피한 것 같았다. 납골당 관련 나머지 한 방망이를 해결키 위해 다시 병실을 찾으니 환자는 이미 의식을 놓은 상태였다. 후일에 들으니 가족회의서 일반 사설 납골당에 모시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환자는 곧 임종했고 사고난 사람 영가 위패부모님 위패옆에 나란히 모셔 백중 천도재를 맞이했다. 나는 과연 두 개의 방망이를 지혜롭게 잘 피하고 병원법당 포교의 과업을 무사히 잘 마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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