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종교와 정치의 분리

 

독일의 여성 총리인 메르켈 총리는 독일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인기가 높다. 메르켈 총리는 어느 정당 소속일까? 기독교 민주당 소속이다. 더 정확하게는 기독교 민주연합 소속이다. 기독교 민주연합은 개신교와 카톨릭 세력이 참여하고 있지만 종교적 색채는 약하다.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정당임은 틀림없으며 노선은 중도보수이다. 진보 정당과 경쟁하고 경제는 자유시장 경제 정책을 추구한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설립된 기독교 민주당 중 독일과 네덜란드의 기독교 민주당이 가장 성공했다.

교리집착 정치 본질 훼손
종교 이익집단화 가능해
각계 주장 포용, 불교방향

올해 4월에는 국회의원을 선발하는 총선이 치러진다. 기독교 정당은 한국에서도 과거에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최초로 시행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 정당의 성공적인 안착 가능성이 높다. 만약 기독교 정당이 몇 명이라도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정치에 참여한다면 불교도 이에 뒤질세라 정당을 결성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걸까?

경전은 출가자가 왕이나 국가에 접근하면 생길 수 있는 10가지 오해를 나열한다. 예를 들어 출가자가 왕을 만나거나 국사에 개입할 때 국가에 음모가 발생하면 출가자가 오해를 받는다. 대신이 반역을 일으킬 때 그 대신이 평소 출가자가 가까웠다면 불교가 반역을 지원했다고 오해 받는다. 국가의 재보가 분실되었을 때도 출가자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건 기분 나쁜 오해이다. 국왕의 자녀가 결혼하지 않았는데 임신했을 때 출가자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구절을 읽으면 출가자에 대한 모독으로 보인다. 국왕에게 무거운 병이 생겼을 때도 출가자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당시의 종교는 치료의 역할도 했나보다. 국왕과 대신의 사이가 나빠졌을 때 출가자가 개입했다는 오해를 받고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도 출가자가 오해를 받는다. 자선을 잘하던 국왕이 출가자를 만나고 부터 인색해진다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꼼짝없이 오해를 받는다. 정법으로 백성의 재보를 취하던 국왕이 출가자를 만난 뒤로 비법으로 취한다면 마찬가지로 오해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염병이 유행하게 되었을 때 출가자를 오해한다면 이것 또한 억울한 일이지만 능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경전의 이러한 구절을 보면 출가자는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하면 정치인과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독재정권이나 인권탄압에 대해서도 침묵해야할까? 부처님은 비록 출가자가 정치에 개입하면 오해를 초래한다고 경고하셨지만 이상적인 정치에 관하여 경전 곳곳에서 언급하셨다. 불교 교리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를 보고 아무리 출가자라 해도 오해가 두려워 침묵한다면 과연 부처님은 잘했다고 칭찬하실까? 출가자가 불교 정당을 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재가자의 경우는 어떨까?

이 세상 모든 현상은 연기적 현상이다. 종교와 정치도 사회적 현상으로 독자적 실체가 없이 서로 연기한다. 종교와 정치는 엄격하게 선을 긋기 어렵다. 정치 현상에 종교 현상이 있고, 종교 현상에 정치 현상이 있다. 종교와 정치에 명확한 선을 그으려는 시도는 인위적이고, 이 세상을 기계적으로 구성된 장난감 세계로 보는 선형적 관점이다.

인간의 역사를 봐도 종교는 항상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종교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정치도 물론 종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세의 교황은 왕을 임명하고 왕을 폐위시키고 전쟁도 했다.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루었는데 교황이 황제의 관을 나폴레옹의 머리에 씌워주려고 하는 순간 나폴레옹은 교황의 손에 있던 황제의 관을 빼앗아 자기 머리에 직접 썼다. 교황보다 자기가 더 위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때로는 교황이 왕권보다 강했고, 때로는 왕권이 교황보다 강했다. 개신교가 등장하면서 개신교와 카톨릭은 정치에 깊숙히 관여한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카톨릭이었고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개신교였으므로 개신교와 카톨릭의 갈등은 바로 왕권의 갈등이었다. 결국 메리 여왕이 패배했지만 메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한 최초의 왕이 되었으니 카톨릭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미국에서 남부 침례교는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세력이고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아예 분리되지 않았다. 마호멧은 칼을 들고 정복하며 이슬람교를 전파했고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 종교는 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불교는 어떠한가? 부처님도 왕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불교 최초의 사원도 왕이 직접 지어주었다. 중국에서도 불교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사원경제가 너무나 비대하여 그 반작용으로 황제가 불교를 탄압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삼국 시대에 불교는 정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고려 시대에는 더욱 그 영향이 확대되어 결국 조선 시대에 불교탄압을 가져오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도 특히 전국시대에는 사찰이 무장하여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공격하기도 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정치 이상이 많이 서술되어 있다. 경전에 출가자가 왕이나 국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부처님의 정치 사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교 신도라면 사회에 유익한 부처님의 정치 사상이 현실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을 설립하고 직접 불교교리를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옳고 그름의 영역과 상대적 판단의 영역이 있다. 독재, 인권탄압은 옳고 그름의 영역에 속한다. 예를 들어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세습 독재정권을 이어간다거나 고문을 자행하는 경우는 옳고 그름에 관련된다. 흑인은 백인 전용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정책도 옳고 그름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러나 기업을 강하게 규제할 것인지 약하게 규제할 것인지는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다. 복지예산을 증액할 것인지, 산업단지 개발 예산을 증액할 것이지 또한 옳고 그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가치관과 정책의 효과성에 관한 주관적 의견이 개입되는 영역이다.

불교이건 기독교이건 종교를 막론하고 독재나 인권침해 등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는 출가자도 종교교리에 기반하여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을 강하게 규제할 것인지 약하게 규제할 것인지, 혹은 복지예산을 증액할 것인지 산업단지 개발 예산을 증액할 것인지에 관해서 종교가 교리를 내세워 찬성과 반대를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가치관과 개별정책의 효과성에 관한 주관적 주장에 불교교리가 동원되면 자칫 종교가 정치에 악용된다.

불교의 경제사상은 자유시장경제이지만 기업에 대한 강한 규제가 비불교적이고 약한 규제는 불교적이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곤란하다. 아무리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서 약한 규제가 자유시장경제라는 주장은 불교가 그토록 경계하는 극단적 획일적 사고이다. 경전은 복지 국가를 설하고 있지만 복지예산의 증액이 무조건 불교적인 정책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단지 개발을 통해서 경제가 발전하고 세금이 증가하면 복지가 더 증가한다고 믿는 학자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가 결국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어떤 불자는 복지예산 증액이 불교적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불자는 산업단지 개발 예산의 증액이 불교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이나 네델란드의 기독교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기독교 사상을 무리하게 정책에 반영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교 정당을 운영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정당을 설립한 후 불교교리를 내세워 치우친 주관적 주장을 고집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부처님이 출가자가 왕이나 국가를 가까이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하신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따라서 불교정당의 설립은 아주 예외적으로 매우 한정된 조건과 환경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 정치수준이나 사회적 여건이 불교 정당의 출범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인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불교정당을 설립하건 설립하지 않건 불교 신도인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가치관과 정책의 효과성에 관한 영역에서 불교교리를 내세워 독선적이고 닫힌 주장을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독재라든가 인권 침해 등 명백하게 옳고 그름과 관련되는 영역에서는 문제가 없다.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자신의 주장을 펴되 결국 국민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게 민주주의다.

첫째 출가자의 경우 불교정당을 설립하지 않는게 부처님의 뜻으로 보인다. 둘째 재가자가 불교정당을 추진할 때는 아주 제한된 조건과 환경 하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 설사 불교정당을 설립한다고 하더라도 명백하게 옳고 그름에 관련되는 문제가 아니면 불교교리를 내세워 치우치고 닫힌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출가자와 재가자는 모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으며 의무도 있다. 선거에 참여해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해야 바람직한 시민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모든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의사표시가 불교교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불자는 그렇게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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