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큰스님 … 공생으로서 공식을 하고 있고,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만날 찧고 까불고 찧고 까불고, 예전에 선지식들이 “야, 구더기 놀듯 하는구나.” 이랬듯이, 우리가 그렇게 놀아서 되겠습니까? 부처님이 삼천 년 전에 이 좌석에서 이렇게 했듯이 바로 오늘이 삼천 년 전 그날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항상 부처님은 계신 거지 오시는 것도 없고 가시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또 누가 질문할 분 없습니까? 여러분이 가정에서 살아나가면서 실험을 통해서 공부한 얘기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해 주시는 것도 바로 보살행입니다.

사회자 질문하실 분 안 계십니까?

질문자1(여) 애기 아빠가 삼재가 들어 있다고 그러면서 삼 년 동안 뭐가 있대요. 그 안에 뭘 해도 안 되고. 우리 애기가 이렇게 되고 있으니깐 주위에서 그래요, 이사를 가라고. 그래서 이사를 가려고 그러는데요, 시골에 우리 땅도 좀 있고 또 애기 앞으로 보상금이 나오는 것도 좀 있고 그래서 보태 가지고 집을 살까 그런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애기 아빠가 삼재가 들어서 집을 살 운도 안 된대요. 그리고 제가 그 집에 지금 살면서 수술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술을 하면 제가 위험한 것도 있다 해서 괜히 마음이 답답해요.

그러니까 여기 절에만 자꾸 오고 싶고, 제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뜻도 잘 모르지만 답답하면 여기 와서 말씀 듣고 그러니까 마음이 좀 안정이 되고 그럽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어머님이 그런 말씀을 어디서 듣고 오니까 그냥 답답하네요. 제 생각에는 집을 살까 했었거든요. 집도 살 운이 안 된다 하니깐 그렇게 되면 이사를 가도 또 세를 살아야 돼요. 우리 애기에게 나온 그 보상금은 될 수 있으면 땅에나 집에다 좀 묻고 싶었는데…. 보태도 그 돈 갖고 집은 못 사니까 시골에 있는 논밭을 좀 팔아서 할까 했지만 부모님 말씀이 그러니깐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말씀을 전합니다. 좋은 말씀 있으면 해 주세요.

큰스님 지금 보살님이 말씀하시는 거를 여러분이 다 들었지만 하치않은 말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느 가정에서든지 횡횡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높은 말을 하는 것보다도 이런 구질구질한 생활에서 돌아가는 말들을 타파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활에서 삼재가 들어서 집도 못 사고, 벌이할 운도 못 되고 또 이사 갈 운도 안 되고 이렇게 한다면 아니, 부처님 법이 그렇게 죽으라고 하는 겁니까? 그 말을 곧이듣는, 속는 당신도 그르지만 그렇게 일러 주는 그분도 그릅니다. 그런데 그분도 모르니까 그러겠지 알면 그럴 리가 없죠. 당신도 모르니까 또 그걸 곧이듣고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하는 거지, 알면 그거 들으러 갈 것도 없고 또 듣고 그것을 고민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모르기 때문에 그걸 듣고서 고민을 하는 겁니다. 보살님, 들어 보십시오. 보살님뿐만 아니라 여기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내 내면세계의 참나인 주인공을 믿고 물러서지 않고
거기다 모든 것을 몰락 맡겨 놓을 수만 있다면
바로 그 가운데서 내 참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사 가려면 그냥 가는 것이 법이요, 내가 집을 살 처지가 된다면 집을 그냥 사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게 부처님 법입니다. 여러분의 법이 부처님 법이에요. 그거를 부처님께서는 진실하게 가르쳐 주셨는데 무슨 이사를 가면 나쁘다 좋다, 내년이 나쁘고 올이 좋고 또 삼재가 들었고…. 삼재가 도대체 뭐 말라빠져 죽은 게 삼재입니까? 그거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사람들이 삼재라고 만들어 놨기 때문에, 삼재가 들면 그렇게 나쁘다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한생각 먹기가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십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올해 삼재가 들어서 누구든지 죽는다고 그러는데 몸이 지금 아픕니다. 내가 그래도 몸이 건강했는데 삼재가 들었다고 그러는 해에 아, 그거 보고 와서 얼마 안 돼서부터 병이 들어서 이렇게 아프니 이걸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이랬습니다. 그래서 백 일을 기도를 드리고 또 백 일을 드리고 또 백 일을 드려야만이 삼재를 면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을 하자 난 이렇게 했습니다. 내가 그분이 잘못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다고 하는 것도 모르니깐 그러겠지.’ 하고 역시 그 보살님한테 그랬습니다. “백 일씩 세 번 드리는 것도 삼 일이면 세 백 일이 돼.” 그러니까 사람이 생각하기에 달린 거지 삼천 년을 천 년으로 해도 되고 천 년을 하루로 해도 된다 이거야, 응? 그래서 ‘한 울 천’ 했다 이거야. ‘한 울’이면 하늘과 땅, 인간을 그냥 합해서 ‘천’으로 했다 이거야. 그럼 천이 하나다 이거야. 일심이다 이거야. ‘한 울’이 이렇게 한데 모아서 ‘천’ 했으니까 그게 하나로도 돌아간다, 일심으로 돌아간다 이 소리나 똑같은 얘깁니다.

그러니 삼재는 삼재가 따로 있고 삼재가 없고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보살님, 죽지 않으면 되고 병 앓지 않으면 돼. 그리고 이사를 가도 내가 일요일 날 식구가 다 모여서 아주 순수하고 편안하게 먹을 거라도 지어 가지고 놀러 가는 것처럼 이사를 가거라. 허허허…. 아니, 왜 날짜를 정해 놓고 그날이 좋다고 해서 남자들은 하나도 없는 새에 고생을 하느냐? 내 마음의 부처가 모든 부처라면, 이 세상의 모든 일체 만생 만물이 다 내 한마음에 들어 있다면 구태여 어디 걸릴 게 있느냐? 그러니 내가 가는 날은 너무나 좋은 날이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 내가 오늘 가면 좋겠다 하면 그날이 좋은 날이다. 뭐든지 걸리지 말고 하세요.” 그렇게 했더니만 금방 그 소리 듣고요, 병도 사흘도 못 돼서 나았어요. 병도 나았거니와 그해에 얼마나 장사가 잘됐는지 말입니다, 삼재가 들어서 죽긴커녕 장사가 잘돼서 아주 고맙다고 시주를 하러 왔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바로 자기가 자기를 그 속에서 빼내는 겁니다. 그러니 보살님도 그 속에서 빨리 벗어나십시오. 마음이 벗어나면 육신도 편안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허이구, 살기도 바쁘게 벌어다가 애를 쓰고 그랬는데 그 보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질문자1(여) 우리 애기 아빠도 마음이 약해지고 또 저 역시 마음이 약해지다 보니깐 ‘아, 그럼 진작에 절이나 어디 나가서 저거 했으면 혹시 그런 거를 안 당했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사실 애기 아빠하고 전부 다 가서 한번 봤어요. 봤더니 그렇게 뭐, 삼재가 들어 있다고 그러고, 또 우리 어머니도 시골서 보니까 그런다고 하는데, 애기 아빠가 지금 약을 먹어도 안 듣고 그래 가지고 의료원 가니깐 전염성 노이로제라고 그러더라고요, 병 증상이. 우리 애기가 이렇게 되니까 약을 먹는 자기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고 그렇거든요. 근데 제가 저번에도 보름인지 뭔지 모르고….

큰스님 근데 그런 사람들이 참 사람 나쁘게 만드네, 그거. 그렇게 해 가지고 남 노이로제 걸리게 만들잖아!

질문자1(여)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기 전부터 오래됐어요. 귀에서 소리가 나고 머리가 아프고 그런 게. 그래 가지고 동네 약국에서 약을 먹어도 안 듣고 그래서 결국은 병원에까지 가서 약을 먹다가 우리 애가 그런 사고를 당했거든요. 그러니까 인제 자기 마음에서 병이 온다는 식으로 약을 먹어도 모르겠다 그거예요. 아무 약 반응이 없고.

근데 그때 보름날인데, 큰스님 얼굴이 어느 날 아침 새벽녘 꿈인지, 하여튼 얼굴이 환하게 보이더라고요, 제 꿈속에. 그래서 ‘내가 어제부터 절에 가고 싶었는데 오늘 꼭 가야겠다.’ 그랬는데 그날 아침에 비가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갈까 말까 하다가 ‘아휴, 가야지.’ 하고 왔더니 그날이 보름이었고 ‘내가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속에 있는 그 답답한 걸 전부 다 혼자 중얼거렸어요. 불법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는데, 제 마음의 답답한 걸 다 얘기했더니 그 당시서부터 마음이 좀 개운하고 애기 아빠 몸도…. 저는 약을 먹어서 듣는다는 것보다 제가 그렇게 빌었기 때문에 애기 아빠 몸도 좀 낫고 그런 것 같아요. 저녁으로 잠을 못 잤어요, 우리 세 식구가. 그런데 잠도 잘 오고 그래요.

큰스님 그거 참 좋은 일이군요.

질문자1(여) 그래서 오늘도 어머님 전화가 그저께 왔다고 애기 아빠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사실 안 들으면 약인데 들으니까 마음이 영 안 좋아요. 우리 애기가 그런 사고를 당했지, 또 어서 그 집에서 이사를 가라고 그러지. 이사 가야만이 제가 수술을 해도 괜찮지, 안 그러면 생명을 잃을 수가 있대요. 그래서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 집에서 산다 해서 그 의사가 나를 뭐, 생명을 어떻게 잘못되게 할 건 아닐 거고. 참 그게 의문스럽고 저는 뭐, 믿지는 않는데 사실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니깐 그게 좀 걸려서 마음이 답답하고 그래서 스님한테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상입니다.

큰스님 그러니까요, 여기 나오신 지 며칠 안 됐는데 밤에 잘 주무시고, 인제는 그 마음에서 벗어나서 그래도 잘 주무시고 편안하시다니까 너무나 감사하군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가고 그런다는 거는 끔찍한 일이고, 모든 것이 당신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 거니까 아예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십시오. 모든 거를….

질문자2(여) 큰스님께 그저 두서없는 질문을 하겠습니다. 전 다섯째 자식이 의심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절에 같이 나가자고 설득을 하는데도 잘 안 나오고 이래서 어제 저희 내외가 애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랬는데 오늘은 같이 나오자 해도 안 나오고 그 의심증을 또 품고 있어요. 그리고 밤으로 잠을 못 자고 그래서, 제가 혼자 다니면서도 자꾸 공을 들이고 밤잠이나 우선 잘 자게 해 달라고 했더니 잠은 좀 자요. 그래서 조금 나은 것 같다가도 자꾸 저런 소릴 하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 또 설득을 해서 자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합니다.

큰스님 그거야 날더러 물으실 게 아닙니다. 그거는 그 본인의 마음에 달린 거니까요. 그건 어머니가 그렇게 나한테 물으실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본인더러 마음을 잘 먹으라고 그러십시오.

질문자2(여) 그런 부탁은 백 번도 더 하지요, 허허허….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러면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도 여기 나오신 지 며칠 안 되신 것 같은데 그래도 잠이라도 잔다니 고맙고요. 하여튼 잠은 잘지언정, 만약에 병이 낫는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깨달을 수가 없으니까 그저 될 수 있으면 자주 나오라고 그러십시오.

남자분들이 한 번 더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질문자3(남) 저는 『도』라는 책을 보고 스님의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동물하고 얘기를 하고 바다의 물고기한테 전도를 했다는데 ‘한국에도 그런 분이 계시구나.’ 해서 이렇게 뵈러 왔습니다.

전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합니다. 방에서 공부를 하는데, 저의 며느리는 천주교엘 나가요. 마루에다가는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고 전 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제 며느리보고 “야, 대한민국 헌법에 자유가 있어. 신앙의 자유가 있고, 헌법상. 우리 집안에도 자유가 있어. 넌 너대로 성당에 나가고 난 나대로 내 공부를 한다.” 그러고, 아침저녁 집에서 저는 시간이 있는 대로 금강경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이렇게 속으로 하면 흥이 안 나서 음성을 높여 가면서 공부를 해 나가거든요. 그런데 또 며느리가 그걸 들으면 좋은가 나쁜가 하고 한쪽으로 마음이 좀 두근두근거리면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게 영적인 면에서 어떠한 충돌이 있어 가지고서 혹여나 가정불화가 생기면 어떡할까.’ 그런 느낌이 혹 날 적이 있거든요. 그런 생각이 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걸….

큰스님 여느 절에서는 그런 질문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그게 질문이냐고 그러고선 주장자만 탕탕 치고선 그냥 높은 말씀 몇 마디 해 주시고 아마 일어나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높은 스님, 높은 부처가 되려고 이렇게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여러분 마음이 아주 가난하다면 나도 마음이 가난한 그 틈에 끼어서 서로 토론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 같으면 말입니다, 며느리가 천주교를 믿든지 내가 불교를 믿든지 그 마음으로서 듣기 좋게 “야, 우리 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한군데로 나가자.” 이렇게 위에서 존엄성 있게 말씀 한마디 웃으며 하시면서, 나쁘게는 하지 마시고 그렇게 한마디 당겨 놓고 마음으로 자기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십시오.

맡겨 놓으시고, 선생님 하시는 것도 경을 봐서 소상히 이걸 따지지 마시고, 경을 보되 그것을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주인공에 모든 것을 놓고 함이 없이, 책이 나를 보게 하지 마시고 내가 책을 보지 마시고 그냥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는 항상, 살아나가는 생활도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당신한테, 공한 당신한테 공한 이치를 다 놓으세요. 맡기세요. 그리고 믿으세요. 그런다면 그 며느리도 차차 한 번만 데리고 와서 서로 대화를 하게 되면 아주 참신한 사람이 될 겁니다. 며느리도 또 그렇게 미련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걸리지 마세요. 사람의 마음이 걸려서 걸리는 거지 진리는 걸림이 없는 겁니다.

질문자3(남) 그런데 스님, 금강경은 아침저녁 독송을 하거든요. 독송을 하는데, 이 공부가 통 여일히 되질 않는 거 같아요.

큰스님 그런데 이런 게 있습니다. 옛날 얘기 또 해야 되겠군요. 옛날에 어느 도량에서 학인들이 결제가 되면 한 절에 모여서 참선을 하든가 경을 읽고 해제가 되면 또 나가서 공부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 나가서 공부를 하다가 결제가 돼서 다들 들어왔는데, 그 절의 주지 스님께서 “너희들은 무슨 공부를 하고 들어왔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전부 무슨 경을 읽었다 무슨 경을 읽었다 하는데 한 분만은 “너는 무슨 공부를 했느냐?” 하니까 “저는 잠자고 밥 먹고 똥 싸고 있었습니다.” 하거든요. 그렇게 똥 싸고 밥 먹고 잠잤다고 하는 말에 “예, 이놈! 공부도 안 하고 그렇게 잠만 자고 똥만 싸고 그렇게 했으니 너는 부목이나 해라.” 하고 내쫓았습니다. 그래 부목을 하면서 나무를 들고 패서 스님 방에 불을 때느라고 그 앞을 자꾸 돌아다니거든요. 그럴 때에 스님께서 노래를 했답니다.

어쩌다가 벌이 말입니다, 벌 있죠? 벌이 어쩌다가 방에 들어가서, 그건 입산한 걸 말하는 겁니다. 어쩌다가 벌이 방에 들어가서 유리가 반사가 되는 거를 보고 그것이 문인 줄 알고 자꾸 입으로다가 거기를 쪼니까 고만 입이 뭉그러져 떨어졌거든요. 쪼다가 몸이 떨어지니까 입도 떨어지더라. 그게 아니라 말이 떨어지더라는 얘깁니다. 몸이 떨어지니깐 입도 떨어지고 입이 떨어지니깐 말이 떨어지더라는 얘깁니다. 그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몸으로, 사량으로 책을 보고 이론으로다가 이거를 알고 그런다면 이 몸이 없어지면 그것도 없어질 거 아닙니까?

그러나 내 참 내면세계의 참나를, 참나인 주인공을 믿고 물러서지 않고 거기다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만 있다면, 몰락 맡겨 놓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속에서, 그 가운데서 내 참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사량적인 마음으로 물질을 보고 그것을 글자 풀이를 하고 그러면서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은 진짜 금강경을 배우는 게 아닙니다. 누가 경을 읽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 경을 누가 읽나?’ 그것을 찬찬히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누가 읽고 있을까?’ 하고.

질문자3(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방에서 서로 토론하는 거보다 외려 좀 어색한 것 같죠, 처음이 돼서요. 내가 저 가운데로 갈까요, 요담에는요?

대중 가운데서 네.

큰스님 허허허…. 그럭해서 내가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서 여러분이 좋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이 죽는 길에도 나는 같이, 아니 둘이 아니니깐 그냥 여러분이 죽으면 나도 같이 있죠, 뭐. 허허허…. 몸이 죽고 사는 게 죽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렇게 하고요, 셋째 일요일 날은요, 아주 우리가 둥글게 앉아서, 가깝게 앉아서 진지한 토론을 서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자4(남) 근데 큰스님한테 질문을 하지 않고 보살님께서 얘기하신 거에 대해서 제 견해를 얘기해도 되는 거죠?

큰스님 그렇죠. 질문만이 아니에요. 질문만이 아니라 여기 와서 느끼고 자기가 살아나가는 얘기 해도 좋습니다.

질문자4(남) 조금 전에 여기 보살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고서 제가 조금 느낀 게 있어 가지고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삼재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는데 거기서 큰스님께서도 얘길 하셨고 제 나름대로 느꼈습니다마는 저도 어렸을 적에 사실 무당들이나 점 보는 데 출입을 좀 많이 했습니다. 나이 들어 결혼해서도 많이 다녔고요. 그런데 “삼재가 들면 운이 나빠서 죽는다.” 그러면 그렇게 믿었습니다, 저도요, 맨 처음에는.

그런데 사실은 이 공부를 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것이 좀 우습게 보이더라고요. 아주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데요, 제가 텔레비전에서 ‘전설의 고향’을 잘 봅니다. 그것이 다 부처님의 말씀이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은 제가 빼놓지 않고 보는데 제가 삼 년 고개를 봤어요. 삼 년 고개는, 삼 년 고개서 한 번 넘어지면 죽더라고요. 삼재가 들어서 죽으나 삼 년 고개서 넘어져 죽으나 마찬가지더라고요. 근데 거기서 한 열 번 구르니까 삼십 년을 살고 사십 번 구르니까 구르는 대로 살더라고요. 그거와 마찬가질 것 같아요. 전설의 고향에서 본 거를 말씀드리면 괜찮을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 허허. 그래서요, 그 삼 년 고개를 봤다니깐, 그 얘기를 하니깐 지금 얘기를 하는데요, 삼 년 고개서 넘어지면 삼 년만 살고 죽는다 이랬는데, 한 번 넘어지고 삼 년을 잘 산다 이랬으면 아마 잘 살았을 거예요. 근데 죽는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죽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삼 년을 한 번 넘어지고 ‘에라, 또 한 번 넘어지자. 또 한 번 넘어지자.’ 이럭하고선 구 년을 좀 잘 살고, 구 년이 아니라 참, ‘이 구정토에서 세세생생 내가 살 거다. 잘 살 거다. 죽는 것도 없이 사는 것도 없이 나는 영원히 살 거다.’ 이랬으면 영원할 것을 괜히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습니까? 아이,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여러분이 100% 그렇게 믿고 그렇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기 주인공, 자기 보배에게 고맙게 생각한다면 그 보배가 스스로서 활용이 되고 스스로서 온 누리…. (녹음 안됨) 이 삼천대천세계의 주인공들이에요. 여러분이 이렇게 세상을 만들어 놓고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데 무슨 소립니까? 아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글쎄? 일체 만물을 다 만들어 놓고 자기까지 형성시켜 가지고 자기 주인들이 지금 살고 있어요. 부처님들이 살고 계신데 어디를 감히…. 하하하.

요다음에 또 한번 그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서로 웃을 수 있고 재밌는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영원히 우리가 참…, 아프면 의사도 될 수 있고 뭐, 판사도 될 수 있고 자기가 자활할 수 있는, 생동력 있는 자유인이 됩시다.

※위 법문은 대행스님께서 1986년 1월 5일 일반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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