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연기법은 세간의 법칙
불교 연기법은 세간의 법칙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1.1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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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염세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결국 그가 자주 갔던 식당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한 때 그가 식당에 갈 때마다 식사 전에 돈을 식탁 위에 놓은 다음에 식사가 끝나면 다시 그 돈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 일을 되풀이 했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자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웨이터가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었다. 쇼펜하우어는 식당 손님들이 말(馬)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 돈을 웨이터에게 팁으로 주려고 했는데 매번 손님들의 식사 대화에 말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어서 다시 그 돈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말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스포츠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이 모여서 자동차 이야기 하는게 가장 흔한 대화 주제에 몰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 이야기란 어쩌면 경마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스포츠에 관한 대화이다. 흔히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스포츠 이야기, 날씨 이야기가 가장 무난한 대화 주제이다. 말 이야기라면 경마를 대화의 주제로 삼을 수 있고 그건 스포츠다. 어떤 말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자동차 이야기에 해당한다. 남자의 로망은 자동차이고 여자의 로망은 명품 가방이라는 말도 있다.

불교는 평화·화합의 종교
하지만 정치 외면은 문제
세속 문제에 해답 내놔야

종교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더구나 잘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주제이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과학에 의해 판가름 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에 자칫 한쪽 생각을 고집하다보면 싸움이 난다. 가치관의 문제이고 관점의 차이에 좌우되는 쟁점의 성격을 가졌기에 정답이 없는 영역에 속한다. 불교 신도와 기독교 신자가 종교적 논쟁을 한다면 서로 가정하고 있는 전제가 다르기에 결코 편안한 대화가 될 리 없고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칫하면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이 높아질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와 자유한국당 지지자가 정치에 관한 대화를 한다면 곧 불편해지고 만다. 대부분 사람들은 종교와 정치 이야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즉 스포츠, 연예계 이야기, 날씨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을 하기 마련다. 그런 의미에서 가십거리가 대화로서는 제격이다.

종교가 같은 사람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봉은사 신도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혹은 소망교회를 다니는 신자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정치적 신념이 같다면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아마 다르다면 매우 불편해질 것이다. 종교가 같다고 해도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면 우리가 하는 정치적 대화는 크게 불편해질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종교가 다를 경우 서로 상대방 종교를 비방하는 일은 자제한다는 점이다.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공격을 일삼는 일부 눈쌀 찌뿌리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다른 종교적 견해에 대해서 어느 정도 묵인하고 상대방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가 있다.

하지만 정치의 경우는 다르다. 민주당 지지자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상대방의 신념과 견해에 대해 묵인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언성을 높이고 감정을 상하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언론 기사를 봐도 기독교가 불교를 공격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불교가 기독교를 공격하는 기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당의 견해가 자유한국당의 견해를 공격하는 기사, 자유한국당의 입장이 민주당의 입장을 공격하는 기사는 언론을 도배한다. 종교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종교이야기를 피하면서도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도발적으로 싸움을 거는 경우는 많다.

비록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국민의 경우 종교 이야기는 스스로 자제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자제하지 않는다. 그만큼 정치가 중요한지도 모른다. 종교는 이미 우리 삶에서 멀리 떠나버린 장식품에 불과하지 않을까? 종교가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종교 때문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불교의 역사에서 종교적 견해 때문에 전쟁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역사에서는 종교적 견해 때문에 많은 전쟁과 갈등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평화의 종교, 화해의 종교, 희망의 종교이다.

무엇이든 정치적 이슈가 되면 불편해지고 그만큼 중요해진다. 최근 대형 교회의 목사 세습 문제가 언론에 요란하게 보도되었다. 명성교회는 매우 성공한 교회인데 목사 세습에 대한 교단의 판단이 처음에는 법규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위반이라고 판정해 논란이 되었다. 목사 세습 문제가 워낙 민감하다보니 명성교회 신자들끼리 세습 문제는 대화를 피한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사실 몇 년 동안 다락방이나 소모임에서 가능하면 교회 현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터놓고 대화하지 못할 때가 많다”라는 명성 교회 교인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목사 세습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 교인들의 의견이 갈라지면 이미 그 문제는 종교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슈가 된다. 목사 세습으로 이익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이 정신적 이익 혹은 손실이건 재정적 이익 혹은 손실이건 정치적 이슈가 된다. 정치적 이슈가 되면 아무리 동일 교회 소속 신자라 할지라도 대화하기 불편하다.

얼마 전 봉은사 신도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봉은사는 비록 자유한국당 지지자가 많은 강남에 위치하고 있지만 신도가 많다보니 민주당 지지자도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놓고 민주당 지지자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시끌시끌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적어도 불교의 경우에는 종교보다 정치가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불교를 자극하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해 불교 신도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고 투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불교의 경우엔 종교는 정치보다 더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불교는 이미 삶의 장식품이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은 대화가 쉽지 않은 동물이다. 주변을 봐도 알 수 있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잘 되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잘되는 사례가 얼마나 될까? 마음 맞는 친구 한 두명 있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연구도 있다.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가까운 친구 한 두명 만 있어도 삶에서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되는데 한 두명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 대화가 얼마나 될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아예 대화가 상실된지 오래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와 자비의 종교라는 불교 사이에도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정치에 관해서 대화를 잘 할 수 있겠는가?

종교가 삶의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면 죽고 살기로 매달려야 할 신념은 아니다. 그러니 종교적 대화는 살짝 피해도 문제가 없다. 정치적 신념은 약간 다르다.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만, 역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모두 경제를 바꾸려면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이 정치 혐오증에 걸려 있지만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 방법이다.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닌가보다.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채널을 돌리고 음악이나 듣고 춤이나 보고 드라마를 시청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전환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직면한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지만 정치를 외면 할수록 정치는 국민을 떠나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다. 불교의 지혜가 세간을 비추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불교가 세상의 이치를 밝히지 못한다면 연기법은 무엇을 위한 연기법일까?

불교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지 못하고 삶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가장 중요한 징표가 있다. 불교가 경제와 정치라는 세속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현실이 바로 그 징표이다. 불교를 산중불교로 끌고 간다면 부처님 당시 도시에서 활발하게 중생의 삶속에 뛰어들었던 부처님의 뜻에 어긋난다. 경제와 정치를 외면하는 게 부처님의 뜻이라면 당연히 우리도 경제와 정치를 외면해야 한다. 허나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경제와 정치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출가자의 경우에는 일정한 제약을 두었지만 재가자의 경우에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하셨다.

부처님의 연기법은 세간의 법칙이기도 하다. 경제와 정치를 외면할 수록 불교는 현대인의 삶에서 멀어지고 부처님의 뜻에서도 멀어진다. 부처에게 돌아가자. 그래야 불교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불교 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현대인의 고통을 해결하는 불교교리의 현대화를 이루어야 불교가 세상을 비추는 지혜가 될 수 있다. 경제와 정치 문제부터 불교적 관점으로 보고 불교적으로 행동해야 부처님의 제자다. 부처에게 돌아가야 불교가 산다.

윤성식 명예교수는

고려대서 행정학을 전공한 윤 명예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학사, 버클리대학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영대학원 교수도 역임했으며 1992년부터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를 맡아왔다. 저서로는 〈불교자본주의〉, 〈부처님의 부자수업〉 등이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했던 윤 명예교수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검찰미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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