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불길 속서 연꽃 피우다

22세 진사 급제하나 좌천돼
지방 전전… 선사들과 인연
당대 100여 명 선사와 친분
선의 경지 문학으로 표현해

중국 쓰촨성 성도 두보초당에 모셔진 소동파 조각상의 모습.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이름은 식(軾)이며,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린다. 동생 소철(蘇轍)과 비교해 대소(大蘇)라고도 불리며, 부친 소순(蘇洵) 또한 뛰어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당송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이다. 동파는 시와 글씨, 그림 등 다수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으로 ‘적벽부(赤壁賦)’가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 문단에서 ‘큰 별’이라 칭할 정도였다. 그는 좌담을 즐겨하며 친근한 성격으로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다.

동파는 22세에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정치인이 되었다. 이때 급진 정책인 신법(新法)을 주장한 왕안석(1069~1076)과 반대파에 속했던 소동파는 지방관으로 좌천되어 항주 지방관이 되었다. 이외에도 동파는 정치적 당쟁에 휘말려 수여 번 좌천을 당했는데, 10여년 간 지방에서 보내면서 문학적으로도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계기였고, 불교를 접하며 진리에 심취했다. 특히 그는 거주하는 곳마다 선사들과 인연되어 선을 접했다.

동파 스스로도 ‘오월(吳越) 지역에는 명승(名僧)이 많은데, 전부가 나와 친한 이들’이라고 할 정도로 선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또한 그는 혜주(惠州)에 있을 때, 영가나한원의 선사 혜성(惠誠)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에게 선승 10명의 벗이 있는데, 도잠·유림·원조·수주·본각사의 일장로·초명·중수·수흠·사의·문복·가구·청순·법영 등’이라고 말했다.

동파는 10명의 선승들에 대해 “행동은 준엄하면서 화통하고 글은 곱고도 맑다. 지(志)와 행(行)이 수승하며, 교와 법에 두루 통해 있다. 문장과 시·가사에 능하여 모두가 붓을 들면 즉시 완성했는데, 한 글자도 다듬어 고치지 않을 정도였다. 문자와 언어에도 깊이 깨달아 이젠 붓으로 불사(佛事)를 하며, 더불어 노니는 사람은 모두 한때의 명인들”이라고 하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외에도 동파가 가까이 지냈던 선사가 100명이 넘었다.

소동파에 대해 중국 선사들 사이에 여담으로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동파거사는 운문종 오조 사계(五祖師戒, 운문문언의 손자뻘 제자)의 후신(後身)이라고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소동파가 그만큼 선과 밀접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동파는 신심이 지극하여 영서(嶺西)로 여행할 때, 아미타불을 그려 극락왕생의 증표로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동파 스스로도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고기를 먹고 독송을 하니, 어떤 이가 독송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내가 물로 양치질을 하자, 그는 다시 말했다. ‘어찌 물 한사발로 씻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부끄럽습니다. 바르게 신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동파지림(東坡志林)〉 권2 ‘송경첩(誦經帖)’

그러면 동파가 인연된 선사들과의 법거량을 보자. 동파가 형남(荊南) 지방에 머물 때, 옥천(玉泉) 호선사(皓禪師)의 기봉(機鋒)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다. 동파는 일부러 허름한 옷차림으로 선사를 찾아갔다.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성이 무엇입니까?”
“성은 칭(稱, 저울)이라 합니다. 천하의 장로들을 다는 저울입니다.”
선사는 크게 할(喝)을 하고 말했다.
“이 할은 몇 근인가?”-〈속전등록〉 권20

동파가 호선사의 할에 한마디 대답도 못하고, 선사에게 예를 표했다. 또 동파는 운문종 불인 요원(佛印了元, 1020~1086)과는 도와 시를 나누는 절친한 도반이었다. 동파가 황주(뼝州)로 옮겨가 살면서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에 머물던 불인 요원 선사를 만났다. 어느 날, 소동파가 선사의 방에 들어가니 의자가 한 개만 있었다. 선사가 말했다.

“오늘은 의자가 한 개밖에 없으니, 미안하지만 아무데나 앉으시지요.”
“의자가 없다면, 화상의 4대(四大) 육신을 선상(禪床)으로 빌려주시지요?”
“산승이 문제를 낼 터이니 알아맞히면 대관에게 선상(의자)이 되어 주고, 맞히지 못하면 대관께서 허리의 옥대를 끌러 주십시오.”
그러면서 동파는 옥대를 풀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네, 스님 그렇게 하지요.”
“대관이 산승의 4대 육신을 빌려 앉겠다고 했는데, 그 4대란 본래 공(空)한 것이요, 5온이란 있는 것도 아니거늘(非有) 대관은 공과 비유, 어디에 앉겠습니까?”
결국 소동파가 한 마디도 못하고, 선사에게 탁자 위의 옥대를 주면서 말했다.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미혹한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일체 사량분별을 쉬고 또 쉬십시오.”
-〈오등회원〉 권16

또 하루는 소동파가 요원 선사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좌선을 하는데, 동파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제가 좌선하는 자세가 어떻습니까?”
“부처님 같습니다.”
소동파는 선사의 말에 의기양양해졌다. 이번에는 선사가 동파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가 보기에 내 자세는 어떠한가?”
“스님께서 앉아 계신 자세는 마치 한 무더기 소의 똥 덩어리 같습니다.”
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동파거사에게 합장했다. 동파는 집에 돌아와 여동생에게 낮에 선사와 대화했던 내용을 들려주며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자기 자랑까지 늘어지게 하였다. 여동생이 가만히 다 듣고 나서 태연하게 말했다. 
“오늘 오라버니는 선사에게 비참하게 패하신 겁니다. 선사는 마음 속에 늘 부처 마음만 품고 있으니 오빠 같은 중생을 보더라도 부처님처럼 보는 겁니다. 반대로 오빠는 늘 마음 속에 탐욕스런 마음만 품고 있으니, 6근이 청정한 선사를 보더라도 똥 덩어리로 본 것이네요.”  - 〈오등회원〉 권16

소동파는 동림 상총(東林常總, 1025~1091)의 법맥을 받은 사람이다. 동림 상총은 임제종계 황룡파인 황룡 혜남(1002~1069)의 제자이다. 소동파와 상총과의 법거량을 보자. 소동파가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제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해결하고자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께서 이 미혹한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거사님은 이제까지 어느 스님을 만나셨습니까?”
“저는 여러 고을을 전전하며 스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아직도 공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상총이 말했다.
“거사님은 어찌 무정(無情) 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고, 유정(有情) 설법만을 청하십니까?”

소동파는 여러 선사들을 만났지만 ‘왜 무정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느냐?’는 상총의 말을 처음 들었다. 무정이란 초목(草木) 등 정신세계가 없는 중생을 말한다. 〈열반경〉에서는 “초목국토인 무정물도 다 성불한다(草木國土 悉皆成佛)”고 하였고, 〈아미타경〉에서는 “물새와 수목(樹木)은 설법에 익숙하다”고 하였다. 선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초목이 깨닫는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과 동화(同和)된 마음자리를 말한다. 동파는 의문을 품고 집으로 가는 길녘에 온 마음을 기울여 선사가 던진 말을 참구하다가 마침 폭포 앞을 지났다. 이때,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닫고, 다음 오도송을 읊었다.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의 경치 그대로가 부처님의 법신이로다.
어젯밤 팔만사천게 미묘한 법문을
후일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겠는가!? - 〈소식문집〉

동파는 선사의 말(화두) 씨름하던 중,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다. 이후에도 동파는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등 있는 그대로의 선적(禪的) 경지를 표현하였다. 깨달음의 경지는 신통을 부리거나 저 멀리에 있는 뜬 구름 잡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삶속에서, 삶의 모습 그대로를 여실히 보는 것이다. 〈보등록〉에서는 “산과 시냇물과 대지가 법왕의 몸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였다. 상총이 말한 것처럼 모든 만물이 우리에게 진리를 설해주건만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나 선사들의 깨달은 세계를 표현하는 문구를 ‘실상(實相)’이라고 하는데, 곧 연기설(緣起說)과 같은 의미이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이다. 동파는 인생에 있어 정치적인 불운을 겪었지만, 선사들과의 인연으로 수행의 높은 경지를 터득한 셈이다. 동파는 탐욕의 불길 속에서 연꽃을 키운 선지식이다. 동파의 쓸쓸함이 담긴 시 ‘우야숙정행원(雨夜宿淨行院)’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짚신은 명리(名利)의 세계를 밟지 않고,/ 한 잎사귀 가벼운 배, 망망한 물에 띄우네./ 침상 마주하고 듣는 숲속의 밤 빗소리/ 등불도 비추지 않는 쓸쓸한 고요함.”-〈소식시집〉 권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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