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풍경들] 1. 실크로드- 시안서 마이지산 석굴까지
[길 위의 풍경들] 1. 실크로드- 시안서 마이지산 석굴까지
  •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 승인 2020.01.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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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감실 부처님들… 여기가 ‘佛國土’

보리단 쌓아놓은 듯한 마이지산
낭떠러지마다 크고 작은 감실
안에는 불보살상과 벽화들 남아
석굴 조성 佛者에 경외와 찬탄을
마이지산 석술서 만난 고색창연한 보살상과 석굴 동쪽 삼존불과 전경. 모두 진광 스님이 순례 중 그린 그림들이다.
마이지산 석술서 만난 고색창연한 보살상과 석굴 동쪽 삼존불과 전경. 모두 진광 스님이 순례 중 그린 그림들이다.

출가 후 내 오랜 소망 중의 하나는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따라서 실크로드와 천산산맥, 그리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천축(天竺)으로 구법여행을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시 페르시아 왕조의 이란까지 가보는 것이었다.

2014년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설정 스님과 함께하는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를 가졌다. 이번 여행의 부제는 서산대사의 선시 중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발자국은, 훗날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라는 구절이다. 그 옛날 천축구법승과 대당유학승의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다. 아니 그들을 뛰어넘어 새 길과 희망, 깨달음과 함께하는 것이다.

지도법사 설정 스님과 前 포교원장 혜총 스님을 비롯한 100여 명의 스님들이 이번 순례에 수희동참했다. 그동안 그토록 한번 가 보고자 염원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인지라 모두들 감격한 듯한 모습들이다. 이렇듯 마음에 꿈을 품은 그 순간부터 순례는 시작된다. 혼자 꾸는 꿈은 한낱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는 법이다.

장안(長安, 현재 시안)은 당나라의 수도로 ‘팍스 차이나’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다. 모든 문물과 상품은 이곳을 출발해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그곳들의 종교와 교역물들은 거꾸로 이 길을 거쳐 장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단언컨대 장안이란 도시는 당시 세계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수도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장안성 앞에는 대상들이 실크로드를 향해 떠나가는 모습이 장엄하게 조각되어 있다.

우선 시안(西安)을 떠나 부처님 지골사리가 봉안된 법문사(法門寺)로 향했다. 마침 한 달에 몇 번 지상으로 올라와 친견할 수 있는 날인지라 감격과 환희로 사리를 친견했다. 그리고 원래 사리가 봉안되었던 팔각구층전탑 안으로 들어가 참례할 수가 있었다. 정확한 연대가 밝혀진 그야말로 국보(國寶)와 같은지라 실로 희유하고 수승한 인연공덕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에 문화대혁명 당시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이 불지사리를 훔쳐서라도 우리나라에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다. 마치 어느 신라승이 육조혜능의 머리를 가져다 쌍계사에 봉안하였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민해방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별 수 없는 노릇이다.

텐수이(天水)에는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인 마이지산(麥積山) 석굴이 있다. 마이지산은 말 그대로 보리단을 쌓아 놓은 듯한 모양에 곳곳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 흡사 개미집을 보는 듯 하다. 낭떠러지에 봉안한 불상은 대부분 소조불이다. 낭떠러지에 연결된 194개의 크고 작은 굴과 감실에는 북위시대부터 당나라 양식의 불상까지 모두 7,200여개의 불상과 벽화가 남아있다고 한다.

북송시대의 설화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만개나 되는 감실과 천개나 되는 방이 있는데, 비록 사람의 힘으로 이뤘다하나 신의 솜씨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기록이 그저 과장된 찬사가 아님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왕이나 권력자가 아닌 무수한 스님들과 불자들의 피땀 어린 신심과 염원이 만들어 낸 작은 불국(佛國)이자 정토(淨土)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오지에 어찌 이런 경이로운 대작불사를 이루었겠는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 깎아 지르는 마애삼존불 앞에 우두커니 선채, 온 몸과 마음을 모아 지심정례 예경을 올린다. 마치 금방이라도 돌에서 뛰쳐나와 너른 품에 우리 모두를 안아주실 듯  하다. 오늘은 또 누가 올런지 지그시 바라보시다가 마침내 그가 오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실 듯한 부처님이다. 대자대비한 부처님 품에 안겨 단 한 순간이라도 영원을 꿈꾸며 그렇게 함께하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이곳을 거쳐 간 어느 구법승처럼 단 하룻밤이라도 이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새벽의 여명과 정오의 작열하는 태양빛을, 석양과 노을에 물든 저녁풍경,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향연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아니 한 철, 혹은 한 생을 바쳐 이곳에서 수행정진하며 살다가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다. 이 석굴을 만든 모든 이들에게 경외와 찬탄을 바친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 법이니 이제 돌아서서,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 문득 고개 돌리니 부처님께서도 말없이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다. 우리 모두가 이 길 위에서 좋아지기를(途中善爲) 바라는 어버이의 마음이시다. 아니 선재동자의 구법을 돕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리라.

선시에 이르길 “졸졸졸 흐르는 샘물, 산속의 모든 이가 함께 마시네. 여보게, 각자 표주박 하나씩 들고 오셔서, 달덩이 하나씩 건져 가시게나(無窮山下泉 應供山中侶 各持一瓢來 總得全月去)”라고 하였다. 순례 대중 스님들의 가슴에도 저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부처님 마음을 닮은 달덩이 하나씩 가슴에 담아간다. 나 또한 비록 이곳을 떠나가지만, 내 마음 한 조각 붉은 마음을 이곳의 허공과 바람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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