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스님

 

         <고암 스님의 서신>

 

<서신1>

부처님께 귀의하옵고

노성원 거사님 이대원성 보살님,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을 맞이하여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청안하여 항시 부처님 믿는 생각 갈수록 더욱 견고하여 불교적인 생활로 자녀들을 잘 키워가며 올바르게 정진을 부지런하면 진불자(眞佛子)입니다. 많이 권유합니다.

먼저 봄에 최고의 보약을 20첩이나 짓고 많은 차비까지 가지고 두 아이를 데리고 부산역까지 나와서 오래 기다리다가 만났을 때 선물을 주셔서 잘 받아가지고 와서 보약을 다려 먹고 많은 기운이 생하여 음식도 잘 먹고 차비도 잘 쓰고 다니면서 마음에 고맙고 감사함을 금할 수 없어 오면서 부처님께 축원할 뿐입니다.

그런데 또 미역을 보내주시어 일부러 가지고 이곳에 와서 대중공양을 잘 하는 중입니다. 더욱 감사한 말씀은 다 할 수 없어서 그저 관세음보살께 비옵니다.

서로 멀리 있어도 우리 불자들은 언제나 마음이 통일되어 생각하는 것이니 다음은 무엇이나 물질로 보내줌을 폐지하십시오. 마음적 생각이라야 영구합니다.

거듭 말씀드림은 부처님 생각만 간절하십시오. 그리고 아이들 데리고 안녕히 계시기만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주소가 일정치 못하고 자주 왕래하오니 무슨 선물이나 보내지 마십시오. 재차 부탁드립니다.

1975년 5월 말일 설악산 윤고암 합장

이때 스님께서 아이들 한 번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온천장에 부산역까지 스님 뵈러 갔는데 그만 조금 늦어 5분 전에 기차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상좌스님과 우리를 만날 생각으로 어둠이 밀려오는데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새마을도 없었던 때였고 무궁화호 비둘기호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래 걸릴 때는 기차로 12시간이 넘도록 가야 서울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 한 번 놓치면 다음 차를 타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도 기다리고 계셨으니 죄송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스님께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아이들 보고 가니 다행이지” 하시며 힘든 내색하지 않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이 밀려오곤 합니다.

스님께서는 남에게 무엇이든 받는 것을 폐가 된다고, 또 빚이 된다는 생각으로 싫어하셨고 절도 늘 한 번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서신2>

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아명은 영준으로 함
노성원 이대원성에게

이 무더운 삼복 날씨에 두 분 몸 건강하시고 마음이 안정하시여 하시는 일이 원만히 번영되옵고 여식 근영이와 아들애기 모두 몸 충실히 잘 자라기만 비옵니다. 이곳은 두루 잘 있습니다. 금번에 보내신 미역은 잘 받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큰 절 선방 스님 강당 학인 모두 백여 명 대중에 원만히 공양을 올렸습니다. 무엇보다 옥동자 아들이 탄생하셨으니 참으로 반갑고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름을 잘 지었습니다. 잘 불러 주십시오. 음력 6월 말일 안으로 부산에 가려고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71. 8.1 고암 회답 해인사 용탑

둘째 아들이 71년 6월 18일 태어났을 때 스님께 보고하며 얘기 이름을 부탁했을 때 답신으로 온 편지입니다.

고암 스님(중앙)과 대원성보살(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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