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과 業 생각하면 채식지향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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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호섭 기자
  • 승인 2020.01.06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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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채식은 방생이다

[황윤에게 듣다]
공장식 축산 현실과 기후위기 대안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 ‘자비사상’

과학자들 “기후위기 대안 채식, 육식은 건강 악화”
몸과 지구 살리는 식사법 사찰음식에 해답 있어

도살장의 벽이 투명한 유리라면 사람들은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1960년대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남긴 소신발언이다. 한때 취미가 낚시였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낚싯바늘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물고기를 보고 채식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채식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더딘 이유 중 하나는 고기의 이면을 대중이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같이 먹는 고기, 과연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2015년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로 공장식 밀집축산형 시설에서 살아가는 돼지와 생태형 산골 농장에서 살아가는 돼지의 삶을 따라가며, 육식위주의 식문화에 화두를 던진 황윤 감독을 1223일 만났다. 한 사람의 채식주의자, 그리고 불자로서 채식의 당위성을 알리는 그에게 채식이야기를 들었다.

황윤 감독은 2001년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의 삶을 담은 〈작별〉을 시작으로, 멸종위기에 내몰리는 야생동물 이야기 〈침묵의 숲(2005)〉, 야생동물 로드킬을 소재로 한 〈어느날 그 길에서〉 등 현대사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성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2010년 구제역 사태 이후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를 선보이며 육식위주 식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저서 〈사랑할까, 먹을까〉를 통해 식생활 전환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황윤 감독은 2001년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의 삶을 담은 〈작별〉을 시작으로, 멸종위기에 내몰리는 야생동물 이야기 〈침묵의 숲(2005)〉, 야생동물 로드킬을 소재로 한 〈어느날 그 길에서〉 등 현대사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성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2010년 구제역 사태 이후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를 선보이며 육식위주 식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저서 〈사랑할까, 먹을까〉를 통해 식생활 전환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밀집 시설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돼지를 실제로 본 적 있으세요?”

만난 지 불과 몇 분 지났을까. 황윤 감독의 짧은 질문에 기자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돼지를 본 적이 있나?’ 아무리 곱씹어도 돼지를 만난 기억이 없다. 황 감독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그렇게 시작됐다.

오래 전, 황 감독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음식메뉴는 돈가스였다.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들의 삶을 담은 <작별(2001)>과 길에서 로드킬로 죽어가는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그린 <어느날 그 길에서(2006)>를 제작할 때만 해도 직접 입으로 먹는 가축의 삶에는 관심이 없던 그였다. 이때는 종() 자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이 세상에서 가장 약자 같았다.

2009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황 감독. 차기작을 뒤로 하고 육아에 전념하던 2010년 말, 구제역이 터졌다.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대됐고, 돼지 330만 마리와 소 15만 마리가 땅속에 묻혔다. 소와 돼지의 비명소리가 황 감독의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돼지를 본 적이 없구나.’

구제역 살처분이 확산되던 때 제 아이가 한창 말을 배우고 있었어요. 어느 집에나 있는 동물그림 책을 보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 책 안에 있는 돼지들은 푸른 초원에 살고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궁금해졌어요. 이 그림책 속 돼지들처럼 실제 돼지들도 푸른 초원에 사는지. 그리곤 깨달았죠. 제가 평생 돼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렇게 황 감독은 차기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한데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돼지는 참 이상한 점이 많았다. 첫 번째, 돼지는 흔한 동물인 것 같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돼지를 보기 어렵다. 두 번째, 사람들은 돼지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돼지가 어떤 동물인지 잘 모른다. 사람들은 돼지가 더럽고 게으르고 식탐 많은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돼지들은 자는 곳과 배변하는 곳을 알아서 가리는 깔끔한 동물이고, 개 못지않게 아이큐가 높다. 그리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먹는다. 세 번째, 사람은 돼지를 먹으면서도 누군가 혐오스러운 사람에게 돼지 같다고 욕한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이라는 제도로 학대한다. 황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돼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는다.

당초 소를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쓰던 황 감독은 돼지의 이런 모순점들을 발견하면서 돼지가 흥미롭게 느껴졌고, 돼지를 주인공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한 번은 구제역 살처분으로 모든 돼지를 매장한 어느 축사를 조사했습니다. 그 안에 피부병약, 장 치료제, 호흡기 치료제, 심장 관련한 약, 호르몬제, 항생제 등 온갖 약병이 널브러져 있더군요. 그만큼 좋지 못한 환경에서 열악하게 사육됐다는 것이겠죠.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돼지를 사육하다 다 살처분 해놓고 또 다시 정부예산 지원을 받아 밀집 사육하는 이 시스템.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요? 밀집사육은 필연적으로 전염병을 부르고, 그때마다 살처분의 악몽이 반복되겠죠. 과도한 육식과 사육, 그로 인한 전염병과 살처분, 트라우마의 악순환.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와 같은 현실을 보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돼지를 직접 보지 못한 기자는 황 감독에게 공장식 시설에 사는 돼지의 삶을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황 감독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1000만이 넘는 국내 99.9%의 돼지들은 공장식 시설에서 사육됩니다. 새끼돼지들은 스트레스로 서로 무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와 송곳니가 잘리고, 수퇘지는 마취 없이 고환이 적출됩니다. 암퇘지들은 스톨이라는 감금 틀에 갇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새끼를 빼앗기고, 그러다 새끼 낳는 성적이 떨어지면 도살장으로 보내지죠.”

이런 시스템에 더 이상을 힘을 보태고 싶지 않은 황 감독은 채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동물권 침해가 벌어져도 사람들은 실상을 잘 알지 못한다.

깔끔하게 포장돼 판매대에 놓인 고기를 보며 축산현장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죠. 철저히 가려져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폴 매카트니가 했던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도살장의 벽은 더 이상 불투명하지 않아요. 인터넷과 유튜브라는 창이 있거든요. 고깃집과 정육점에는 소, 돼지, 닭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프라이팬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죠? 육식에 대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에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상한 그림인가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장면. 공장식 양돈농장에서 스톨(감금틀)에 갇혀 사는 암퇘지들. 사진제공=시네마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장면. 공장식 양돈농장에서 스톨(감금틀)에 갇혀 사는 암퇘지들. 사진제공=시네마달

지구가 병들고 있다
황 감독은 이처럼 자비와 연민에서 채식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채식을 알리고 있다.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서구식 음식섭취가 지구온난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 “채식은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의 과학자들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 총량의 18%를 차지한다는 2006년 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도 있었다. 당시 자동차·비행기 등 모든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걸 합쳐야 13.5%였다.

지금 지구온도는 산업혁명 이전과 대비했을 때 1도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기후가 이상해지고 있죠. 과학자들은 앞으로 인간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약 8년 정도 남았다고 봅니다. 이후에는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고 해도 지구가 스스로 더워져 찜통 불가마상태가 돼 식량재배가 어려워지고 극도의 사회혼란이 오며 재앙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인류는 말 그대로 멸종위기상태에 처해 있어요. 그래서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세계의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기후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유럽에서 채식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황 감독의 꿈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과연 지구가 그때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기후 재앙으로 인한 멸종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화두를 풀고자 황 감독은 매일매일 식생활 전환의 필요성을 곳곳에 알리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희생을 딛고 생산되는 육류와 유제품. 인간의 몸에는 유익할까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붉은 고기는 2군 발암물질, 소시지, , 베이컨 등 가공육은 1군 발암물질에 속한다2015년 발표했습니다. 육류가 제초제, 담배, 석면과 동급으로 위험하다는 연구결과였지요. 반면, 채소, 과일, 현미 등으로 이뤄진 자연 식물식(Plant-based diet)’은 암세포를 자라지 않게 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 건강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이미 수많은 전문 연구기관에서 밝혀져 있습니다. 자연 식물식이 뭐냐고요? 바로 사찰음식이죠. 그리고 우리가 대대손손 먹어온 텃밭 야채와 콩, 두부, 된장으로 이루어진 식단이죠. 이런 식사는 우리 몸을 살리고 동물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치유의 밥상입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장면. 생태형 산골농장의 아기돼지 돈수. 감금틀에 갇혀 사는 돼지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사진제공=시네마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장면. 생태형 산골농장의 아기돼지 돈수. 감금틀에 갇혀 사는 돼지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사진제공=시네마달

현대사회에서 육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채식은 독특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는 육식을 가부장제와 같은 하나의 강요된 이데올로기라고 규명하며 육식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식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거부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제 채식은 하나의 취향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가에 대한 선택이자 투표입니다. 한 사람의 비건보다 100명의 채식지향자가 세상을 더 크게 바꾼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급식부터 군대의 식단까지, 그리고 회식=고기라는 프레임을 바꿔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일상 속 많은 회식이 비건 파티이거나, 최소한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채식위주의 파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회식 문화, 우리 불자들이 일으키면 어떨까요.”

황 감독은 인터뷰 내내 불자들의 채식 동참을 호소했다.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계율이 불살생이고,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있다고 가르친 만큼 깨달음으로 가는 열쇠는 자비에 있음을 강조했다.

부처님 당시 식문화가 육식이었는지 채식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시대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떤 식생활을 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동물에게 가혹한 고통을 주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이제 인간의 건강은 물론 지구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식물은 생명 아니냐고요. 아니라고 주장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을 콩과 옥수수를 사료로 만들어 동물을 살찌우고, 그 동물을 먹으면 다른 20명이 굶는 것과 같습니다. 자비만 생각해도 우리는 육식을 줄여야 합니다.”

소고기 1을 얻기 위해선 10에 가까운 곡식과 물 15000L가 필요하다고 한다. 채식보다 훨씬 더 많은 식물을 없애는 일이다. 지난여름엔 아마존 열대우림이 잿더미가 됐다. 가축방목과 사료작물 재배를 위해 일으킨 인위적 산불이 대형화재로 번진 것이다. 식물에게 생명이 있다면 채식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적은 살생일 것이다. 한동안 카르마()’와 윤회를 강조한 황 감독은 연기법으로 채식의 가치를 설명했다.

부처님께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고 하셨듯이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한 그릇의 스테이크 안에 아마존의 눈물이, 가축의 눈물이, 아이들의 눈물이 있다는 걸 알면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이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을 것인가.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미국 서부 인디언 스쿼미시족 추장 시애틀(1786~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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