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수상] 나눔은 ‘인간의 길’
[신년수상] 나눔은 ‘인간의 길’
  • 정찬주 소설가
  • 승인 2020.01.01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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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랍 만난 인도 巨富 스리니바산 회장
요익중생 프로젝트로 사회적 나눔 실천
자비 구체화한 나눔, 본래인간 되는 길
경자년 내 첫 화두는 ‘베풀고 나누는 삶’
그림 최주현
그림 최주현

창호가 새벽빛으로 푸르게 물결치고 있다. 아래 절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산방은 절 위 계곡에 있으므로 조그만 소리도 크게 공명이 되어 올라온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러 산길을 나선 모양이다. 나는 해돋이를 보러 굳이 산정으로 가지 않는다. 내 산방 건너편 산자락에 오르면 계당산 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당산은 내가 은거하듯 살고 있는 화순군과 보성군을 경계 짓는 꽤 높은 산이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인생을 사유하게 하는 산이다. 계당산 허공의 빗방울은 화순군에서 불어가는 바람을 만나면 보성강으로 갔다가 섬진강이 된다. 반대로 그 빗방울이 보성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면 화순의 지석강을 흐르다가 영산강에 섞인다. 어느 바람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빗방울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크건 작건 달라진다고 본다.

며칠 전,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 초대를 받아 읍내에 나갔다. 한 달 전부터 내 책의 애독자인 지인이 간곡하게 부탁해서 참석한 자리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어색한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식사하기 전 모두가 와인술잔을 든 채 갑자기 나더러 덕담 한 마디해달라는 요청에 적잖이 당황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세월은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세월이 간다고 여기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고, 세월이 온다고 느끼면 가슴이 설레게 될 것입니다. 2020년 경자년은 여러분 모두가 가슴 설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덕담을 했는데 모두가 만나서 반갑다, 영광이다는 식이어서 특별하게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나름대로 독서경험을 말할 때는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한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때 이순신의 난중일기, 또 한 사람은 대학 2학년 때 법정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을 읽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70대 중반의 한 분은 내가 5.18광주항쟁 이야기를 G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다고 하자, 자신은 그 무렵 광주에 있으면서 직접 목격했으니 증언해줄 수 있다고 제의했다.

만남이 중요하고 사람이 소중한 것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듯하다. 중학교 2학년 때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었는데 다 잊다시피 했지만 한 구절만은 5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말뚝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는 일이다.’

지난 125일 부산 안국선원에서 만난 인도 첸나이 TVS그룹 베뉴 스리니바산 회장과의 만남도 오래도록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에서 세 번째 부자라고 하니 지금까지 내가 만난 기업가 중에서 최고의 거부(巨富)였다. 스리니바산 회장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까닭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머니 스승은 달라이라마와 함께 티베트를 넘어온 삼동린포체였다. 브라만으로서 힌두 신자인 스리니바산 역시 삼동린포체의 법문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힌두 사두와 삼동린포체나 수불 스님이 울타리가 되어 삿된 기운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고백했다.

몇 년 전 수불 스님을 범어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음속에 햇살 같은 평화로운 빛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그런 영적인 체험을 한 뒤 수불 스님이 범어사 선방을 들어갔다가 나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처음에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3년 뒤에야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부처(心佛)를 찾으라는 것인 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스리니바산은 카르마(Karma, )를 많이 이야기했다. 수불 스님을 만난 것도 카르마요, 기업이 흥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것도 카르마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침저녁으로 무념무주(無念無住)의 명상을 한다는 그가 수행자로 여겨졌다.

특히 기업경영 목적이 기업의 사회화에 있다고 하므로 부럽기조차 했다. 불가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의 회사는 모든 이웃을 이롭게 하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는 자신이 벌이고 있는 요익중생 프로젝트를 전생에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인도의 130개 힌두사원을 보수 수리했고, 제일 큰 두 개의 사원은 세계문화유산이 됐단다. 가난한 인도인 380만 명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생계를 해결해 주고 있는데 목표는 500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무슬림, 기독교 신자, 힌디, 불교신자가 있지만 자신은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말했다. 부처님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인간은 본래 평등한 존재가 아니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를 만나고 아내와 함께 내 산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눔을 깊이 생각했다. 자비와 사랑을 구체화한 베풂과 나눔이 본래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상대를 존중하는 베풂과 나눔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자기 구원이라는 자각이 사무쳤다.

개인적으로는 참사람이 되는 자기구원의 길이고, 사회적으로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21세기 혹은 미래의 삶에 대한 최상의 대안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물질을 많이 가진 자만이 베풀고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가난한 사람도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베풀고 나눔이 가능할 것 같았다. 친절한 말씨, 다정한 눈매, 정다운 얼굴, 배려하는 태도 등도 열린 마음의 나눔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작가인 나는 내 산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주로 내 저서를 선물하고 있다. 내가 사는 산중마을의 농사꾼 이장에게 고생한다며 내 소설책을 주었더니 중학생 시절 학급문고의 이광수와 황순원의 소설을 다 읽었다며 너무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베풀고 나누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몫이 있을 것 같다.

어느 새 창호에 날빛이 투과하고 있다. 이제 나도 해맞이를 하러 아내와 함께 건너편 산자락으로 나갈 시간이다. 경자년 나의 첫 화두는 베풀고 나누는 삶이다. 늦은 자각이지만 남은 여생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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