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결사, 한국불교 중흥 첫 걸음”

대부분 선원, 고요한 곳에 입지해
공사장 한복판 천막서 정진 ‘파격’

“위례신도시 수행처를 부다가야로”
‘중생과 함께’서 불교 미래 발견한
9명 스님 ‘결사’ 서원에 주목해야

상월선원 외호 대중으로 나선 서울 조계사 사부대중이 선원을 찾아 천막결사 원만 회향을 기원하고 있다.

최근 천막으로 엮은 상월선원(霜月禪院)의 동안거가 세간의 화두로 주목받고 있다. 천막으로 지어진 임시 가건물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화제이지만, 이번 상월선원 동안거가 유독 세간의 시선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입재로부터 두 달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동안거가 진행되는 방식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한국불교에서의 안거는 수좌들이 큰스님이 계시는 선원을 찾아 선방에 방부를 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 선원의 대부분은 수좌 스님들이 안거 동안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여건을 제공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때문에 대부분의 선원은 고요한 곳 곧 아란냐(Araya)라 부르기에 적합하면서, 동시에 온도의 변화가 심하지 않는 곳을 입지로 삼는다. 수행을 장애하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상월선원 동안거는 이 같은 안거의 일반적인 요건을 벗어난 상황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을뿐더러 파격적이다. 우선 상월선원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장소 자체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 바로 옆이어서 공사장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콘크리트 바닥만 설치하고 그 위에 비닐 천막으로 비바람을 가린 정도이기 때문에 낮밤의 극심한 일교차를 견뎌야 한다. 여기에 안거 기간인 3개월 동안 샤워도 금지하고 단 한 벌의 옷만을 가지고 견딘다는 것은 더욱 고통을 가중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여러 모로 최악의 환경조건을 감수한 동안거이기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요인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파격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둘째로 상월선원 동안거 천막결사에 동참한 스님들의 면면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상월선원 동안거를 주도하고 동참한 스님들의 면면은 ‘굳이 왜?’라고 하는 의문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어느 선원에서라도 기꺼이 방부를 받을 스님들인데다 굳이 가장 열악한 조건을 찾아서 동안거를 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기도 어려운 스님들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불자들의 고민은 ‘그렇다면 왜?’, ‘왜 저 스님들이?’라고 하는 것에 쏠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 주목의 시선을 이끌어내게 하는 동인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 역시 고민은 ‘왜?’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 ‘왜 아홉 명의 스님들은 이 같은 파격에 해당하는 동안거 행보를 택하신 것일까?’

필자는 그 실마리의 하나를 ‘결사(結社)’라는 명칭에서 찾는다. 동안거가 아닌 동안거를 계기로 하는 결사(結社)라고 한다면, 선원의 이름 ‘상월(霜月)’ 곧 ‘차가운 서리가 내린 새벽의 달빛’은 그 결사에 참여하는 수행자들의 서슬 퍼런 정진 의지와 그들이 세운 서원의 굳건함을 되새기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곧 동안거가 아니라 결사라고 읽으면, 그 세간이 주목하는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가 닿게 될 것이다. 이미 선원의 이름에서부터 결사(結社)에 다른 용맹정진, 새롭게 나아가야 할 한국불교의 앞날에 대한 결연한 다짐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안거처가 아니라 결사처를 택한 것이라 생각하면, 고요한 장소가 아니라 시끌벅적한 공사장 한 가운데이면서 내일 도심 한 가운데가 될 곳을 선택한 것이 납득이 간다. 더불어 온갖 열악한 조건에 대한 감내는 자연스럽게 그 결사체 곧 서원공동체의 원력이 향해야 할 바, 한국불교가 내일 그리고 지금 걸어가야 할 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홉 스님이 감당하는 열악한 조건은 그 자체로 온갖 열악한 조건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현실을 힘겹게 버텨내는 중생을 놓지 않고 함께 끌어안고 가겠다는 서원의 결기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월선원을 만난 우리의 고민은 그것이 결사(結社)라는 것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사는 필연적으로 그 결사에 동참한 스님들은 서원과 맞닿아 있다. 아홉 스님들이 결연히 내세운 서원은 다음과 같다.

“저희들은 이제 당신의 길을 걷겠노라고 다짐합니다. 부처님, 당신의 가르침이 필요한 곳, 당신의 가르침이 구현되어야 할 곳은 세상입니다. 당신이 고행을 버리고 은둔자들의 숲을 떠나 마을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셨듯이, 저희도 이제 위례신도시의 황량한 뜨락으로 찾아왔습니다. 저희에겐 이곳이 부다가야가 될 것입니다.”

결사라고 하면, 흔히 우리는 산중 결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홉 스님들이 입재에 즈음하여 남긴 고불문은 산중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며, 도심 한 가운데를 ‘부다가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담고 있다.


불교의 역사에서 결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멀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결집, 대승불전의 출현, 중국 여산혜원의 백련사 등이 모두 결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것이며, 가깝게는 고려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와 요세 스님의 백련결사가 있고, 현대 한국불교의 큰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되는 봉암사결사도 있다.

이들 결사라고 칭해졌던 역사상의 모든 서원공동체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부처님이 가신 발자국을 따라 무소의 뿔처럼 용맹정진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은둔자들의 숲을 떠나 마을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셨던 부처님’의 모습에서 그 발자국을 찾는다. 그래서 ‘위례신도시의 황량한 뜨락으로 찾아왔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이 대목은 한국불교의 최근 600여 년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왜 집중되고 있는지에 대한 해명의 한 실마리를 엿보게도 한다.

억불숭유의 조선시대에 불교는 도심에서 저자거리에서 산간으로 내몰린 산중의 종교가 되었다. 아니 산중의 절간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이었다. 구한말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는 끊임없이 도시로의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조선의 억불정책이 남긴 산간 사찰이 일제강점기에는 본산이 되었고, 다시 대한민국에 이르러서는 교구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이른바 큰 절이고, 이를 중심으로 큰스님들이 활동해온 것이 지난 600년의 역사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괜찮았다. 일제강점기에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근대화·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급격한 도시화에 이르면,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사람 사는 곳의 절, 사람 몰린 곳의 절이 아니라 사람 없는 산간의 큰 절이 불교의 중심으로 남아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의 도시화, 불교의 대중화를 내건 많은 노력들이 낳은 성과들이 오늘날 우리 불교의 자산으로 그리고 숨통으로 남겨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불교의 중심이 도시가 아닌, 사람들 곧 중생 가운데가 아닌 산중 큰 절에 있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홉 명의 스님이 산중의 제대로 된 선원 선방이 아니라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아파트 공사장 한가운데 천막선방으로 향해 내딛은 그 발걸음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우리 불교가 외면했던 현실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번연히 알고 있었던 사실에서조차 우리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사실 우리 한국불교의 도시화 그리고 대중화는,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그 속에서 꽃피워내었던 찬란한 문화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미약하기 그지없다.

마땅히 감내해야 할 책임과 권리에서 한국불교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불교의 위기를 초래한 현실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 다시 불자(佛子)된 이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생 가까이서, 중생을 끌어안고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자각하게 하는 것, 거기에서 한국불교의 내일을 발견한 아홉 스님들의 서원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사(結社)는 ‘동일한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성취하는데 동참하는 것’ 혹은 ‘동일한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 모인 수행자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여느 동안거와 다르게 이번 상월선원의 동안거 천막결사에는 대중들의 관심도 발걸음도 분주하다. 어떤 이는 수행정진에만 방점을 찍기도 하지만, 불교 집안의 결사에 대중결사가 아닌 것이 또 어디에 있으며, 대중이 동참하지 않고서 결사의 원력을 성취한 경우 또한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동참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정진하고 함께 추운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대중들의 소식을 들으면, 시작이 아니라 이미 성취하고 있는 서원의 걸음짓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내일은 아니 이제 맞이하는 새해는 말 그대로, 우리 한국불교가 또 맞이하는 내일이나 새해가 아니라, 한국불교가 만들어가고 있는 내일이고 새해라는 생각이 기대감을 일깨운다.

석길암(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그리고 그 한껏 설레는 기대감과 벅적거림이, 한 겹 비닐천막 아래 콘크리트 찬 바닥에서 하루 30도의 일교차를 묵언정진으로 버텨내는 아홉 스님들의 결사에 기꺼이 동참하게 하는 밑천일 것이고,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연유일 것이다.

내일 그리고 새해는 상월선원 수행대중의 서릿발 같은 기상과 중생을 끌어안고자 하는 한량없는 자비심이 만들어내는 지금의 하루로 다가설 것임에 기대감이 일어선다.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서릿발 같은 자각과 경책이 오늘을 되새겨 나아가게 하는 내일의 밑천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달 후, 해제를 맞이하여 상월선원 천막 법당을 나서는 아홉 스님들의 첫 걸음이 한국불교의 내일을 만드는 큰 걸음이길 간절히 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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